지난해 10월 중고거래앱 ‘당근마켓’에 아이를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20대 비혼모가 이불에 싸인 갓난아기 사진 두 장과 함께 아이를 20만원에 팔겠다는 내용이었다. 큰 파문이 일었다. 혼자 아기를 키우기 힘든 환경임을 감안하더라도 사람에게 가격을 매겨 물건처럼 팔겠다고 한 행동에 누리꾼들은 크게 공분했다. “인신매매 범죄자다”, “가정교육이 왜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인간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봐선 안 된다는 원칙은 금기 중 하나다. 사람은 거래 대상이 아니고 그렇게 표현해서도 안 된다. 연예인들이 결혼한다고 해서 더 이상 그의 재능을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품절됐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명인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는 거의 매일같이 ‘품절녀’ ‘품절남’이란 표현을 쓴다. 포털사이트에 해당 단어를 검색하니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 유명인들의 결혼소식을 전하며 '품절남'이란 표현을 쓴 기사들
▲ 유명인들의 결혼소식을 전하며 '품절남'이란 표현을 쓴 기사들

 

위키백과 중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 목록’에는 ‘일반 인터넷 신조어’로 품절녀·품절남이 등록돼있다. “인기가 많지만 이미 결혼했거나 결혼할 예정인 사람”을 뜻한다고 했다. 연예인이나 그들 소속사에서 결혼 소식을 발표하면 기자들은 공식처럼 제목이나 기사 리드에 ‘품절녀·품절남이 됐다’, ‘품절녀·품절남 대열 합류’라고 썼다. 

이는 무려 10년 넘게 이어진 관행이다. 지난 2010년 1월14일 국민일보에 실린 “품절남, 재고녀”란 칼럼을 보면 “탤런트 결혼 소식을 보도할 때면 으레 ‘○○○, 품절남 대열 합류’라고 한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 품절 되기는커녕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진열장이나 창고에 얌전히 놓여 있는 스스로를 말할 때는 ‘재고남’ ‘재고녀’란 단어를 쓴다”고 설명했다. 

이어 “몇 세기 전만 해도 힘 있는 인간은 사회적 약자를 판매와 구매, 품절과 반품의 대상으로 거래했다”며 “일찍 제 갈 길 가버린 품절남녀, 도통 팔리지 않아 초조한 재고남녀, 한 번 갔다 오긴 했지만 그래도 가보기는 한 반품남녀, 재밌는 표현이지만 재밌어하기 전에 조금 더 사색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물건 다룰 때 쓰는 말을 사람에게 마구 쓰고 있다.  

▲ 유명인들의 결혼소식을 전하며 '품절녀'란 표현을 쓴 기사들
▲ 유명인들의 결혼소식을 전하며 '품절녀'란 표현을 쓴 기사들

 

그럼에도 여전히 연예인들의 결혼소식을 전하는 기사는 ‘품절녀 대열 합류’라고 전한다. 심지어 지난 1월17일 녹색경제신문 “해병대 지원한 샤이니 민호 나이, 이상형은 ‘품절녀’”란 기사는 샤이니 민호가 유부녀를 좋아하는 것처럼 제목을 뽑았다. ‘낚시형 기사’로 볼 수 있다. 

샤이니 민호가 해병대에 이제 막 지원한 것처럼 읽히지만 민호는 이미 군생활을 마치고 방송에 복귀했다. 또한 품절녀, 즉 유부녀를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사실 민호가 과거에 이상형을 배우 김태희라고 밝혔는데 김태희가 현재 유부녀라는 이유로 “이상형은 ‘품절녀’”라는 제목을 만든 것이다. 

당사자가 스스로 ‘품절녀’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품절녀’로 말한 것처럼 왜곡한 기사도 있었다. ‘“품절녀 됐어요”…정정아, 유재석·강하늘 축하 속 결혼(종합)’(2017년 8월27일, 엑스포츠뉴스)를 보면 마치 배우 정정아가 스스로 “품절녀 됐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제목을 지었다. 하지만 기사 본문에 배우 정정아의 발언 내용은 전혀 없다. 

‘‘뇌섹녀’ 지주연 “지난달 ‘품절녀’ 됐어요”’(2018년 3월6일, 헤럴드경제) 역시 배우 지주연이 “품절녀 됐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제목을 뽑았다. 기사 본문에는 지주연의 해당 발언이 없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10년 넘게 언론이 이 용어를 써왔다면 연예인들이 문제제기할 법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상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품절녀 됐어요 ♥”…이수지, 공개열애 9개월만 전격 결혼 발표 [종합]’(2018년 10월10일 TV리포트)이란 기사를 보면 개그우먼 이수지는 자신의 결혼소식을 SNS에 알리며 “저 이수지가 품절됐음을 알립니다”라고 썼다. 해당 매체 역시 “개그우먼 이수지가 품절녀가 된다”고 기사 첫 문장을 썼다. 

품절·재고·반품은 사람에게 쓰지 말아야 할 단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