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조셉 쿠퍼는 인류가 생존할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 비행에 나선다. 지구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반쯤 포기하면서도, 인류의 새로운 터전이 될 행성이 반드시 존재할 거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우주로 나섰다. ‘다음 세대에 이 병든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일념에서였다. 이는 영화에 등장한 모든 등장인물이 공유하고 있는 목표이기도 했다.

‘다음 세대를 구한다’는 메시지는 ‘인터스텔라’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에서 쓰이는 클리셰다. ‘투모로우’는 급격한 기후변화로부터, ‘미드나이트 스카이’에서는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대재앙으로부터 다음 세대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이들이 등장한다.

▲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언론이 망하는 이유는, ‘내가 은퇴할 때까지는 회사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서예요.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15년까지는 언론이 생존할 테니,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하는 거죠.” 모 일간지 기자가 인터뷰 도중 내게 한 말이었다. 영화 속에선 너무나 당연해서 설득도 필요 없는 클리셰, ‘다음 세대를 구한다’는 실제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았다. 사양 산업이 돼가는 언론판에 ‘우리는 망하는 중이다’란 위기감은 퍼져 있지만 언론사 내 의사결정 키를 쥔 이들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정년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다른 자리에서 만난 한 언론계 종사자는 “언론사 혁신 TF는 적어도 정년이 20년 이상 남은 사람만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적 의사결정으로 번번이 좌절되는 혁신 시도에 대한 토로였다.

언론이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마른 수건 짜기’식의 근시안적 경영이다. 언론사는 여전히 전망이 밝지 않은 지대와 광고에 대부분 수익을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않고, 줄어드는 광고수익을 기업 손목을 비틀어 받는 협찬으로 때우다 ‘조폭 비즈니스’란 오명을 얻기까지 했다.

주니어 세대 불만도 크다. 이제껏 이 정도로 성명서가 많이 나온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갖가지 이유로 현장 기자들이 성명을 내고 데스크와 경영진을 질타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더 나은 저널리즘, 더 나은 일터를 생각하지 않고 관행적 경영과 악습을 반복한 결과다.

▲ 일러스트=권범철 화백
▲ 일러스트=권범철 화백

그래도 수십 년간 명맥을 유지한 우리 언론의 수명이 곧바로 끝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언론판에 있는 이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건, 언론계에 만연한 ‘패배주의’ 때문이다. 무얼 해도 안 될 것이란 패배의식, 몸담은 업계는 성장하지 않고 추락하기만 할 것이란 비관주의적 태도 말이다. 이러한 곳에서 수십 년간 더 일해야 할 다음 세대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언론인을 꿈꾸는 예비언론인이 줄고, 타 직종으로 이직하는 젊은 언론인이 늘고 있는 건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을 테다. 언론엔 과연 다음 세대가 존재하는가.

‘인터스텔라’에서 조셉 쿠퍼는 딸과 인류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스스로 블랙홀 속으로 뛰어든다. 딸은 쿠퍼가 보내준 블랙홀 속 정보로 ‘중력 방정식’을 완성해 결국 인류를 우주 정거장으로 이주시키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 해피엔딩을 말해 뭐하냐는 이가 있을 수 있겠다. 현실에 적용하기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한 가지 분명한 건, 다음 세대를 위해 블랙홀로 뛰어든 쿠퍼의 결정이 없었다면 영화 속 해피엔딩 서사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결정, 그 하나가 해피엔딩 없는 우리 언론에 정말로 필요한 일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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