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월18일 국정농단 뇌물공여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이 부회장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양측 모두 재상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형이 확정됐습니다. 이 부회장의 재판 이후 수많은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재판 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1월19일부터 21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 일간지의 이 부회장 판결 관련 보도를 확인해 보도량과 논조, 보도 내용을 분석했습니다.

1. 보도량, 논조 분석

가장 먼저 확인한 내용은 보도량과 논조입니다. 보도량은 지면을 기준으로 했으며 논조는 재판결과에 대한 우호적 시각을 전달한 경우 ‘옹호’, 비판적 시각을 전달한 경우 ‘비판’, 두 가지 시각을 모두 전달한 경우 ‘중립’, 사실관계만 전달한 경우 ‘없음’으로 분류했습니다.

보도량 집중된 경제지, 재판 결과 ‘비판’에 치중

분석 결과 1월19일부터 21일까지 8개 신문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된 기사는 115건이었습니다. 매일경제가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경제 21건, 한겨레 14건,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 12건, 한국일보 11건, 중앙일보 9건의 순이었습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3일간 20건 이상의 보도를 배치했습니다. 6개 종합일간지가 모두 15건 미만으로 보도한 점과 비교했을 때 경제지가 이 부회장 재판 결과에 집중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논조 분석에서는 ‘비판’에 치우친 결과가 나왔습니다. 115건의 보도 중 ‘비판’ 논조는 58건으로 가장 많았고, ‘없음’이 43건, ‘옹호’와 ‘중립’이 7건 순이었습니다. ‘비판’ 논조 중 한겨레 <유레카-뇌물 1억이나 86억이나 마찬가지?>(1월20일)와 같이 형량이 낮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극소수였고, 대부분 징역 2년 6개월과 법정구속을 결정한 판결을 비판하는 보도였습니다. 결국 독자가 신문을 통해 이 부회장 재판 관련 보도를 접하게 될 경우 유죄와 실형이 부당하다는 논조의 보도를 접할 확률이 절반이 넘는 것입니다.

특히 경제전문지는 문제가 더 심각했습니다. 보도량이 가장 많은 매일경제는 재판 결과에 대한 ‘비판’ 논조 기사도 가장 많았습니다. 매일경제는 24건의 보도 중 19건이 ‘비판’ 논조였습니다. 수치로 환산하면 79.2%에 달합니다. 한국경제도 21건의 보도 중 14건이 ‘비판’ 논조로 66.7%를 기록했습니다. 매일경제, 한국경제를 비롯해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재판 결과에 대한 ‘옹호’ 혹은 ‘중립’ 논조가 없습니다. 4개 신문의 독자는 재판 결과에 대한 사실과 재판을 비판하는 논조 외에 다른 시각은 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1월19일부터 21일까지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관련 8개 신문 지면 보도 논조 분석. 그래프 및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월19일부터 21일까지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관련 8개 신문 지면 보도 논조 분석. 그래프 및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은 재벌 총수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8개 신문의 이재용 부회장 재판 관련 보도를 보면, 언론이 재벌 총수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4년여 간 재판을 통해 뇌물을 제공했음이 수차례 드러난 이 부회장 비판보다 이 부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결정한 재판부 비판이 주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재판결과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모두 보도된 매체 역시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뿐이었습니다. 균형감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신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지와 보수신문은 많은 보도량과 함께 재벌 입장을 반영한 기사를 쏟아냈고, 결국 독자들은 재판결과에 대한 다양한 시각조차 얻을 수 없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는 권력에게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전형적인 정경유착입니다. 이런 범죄에 대해 언론은 철저한 감시와 비판으로 권력과 재벌의 유착을 뿌리 뽑는데 일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지와 보수신문이 나서 정경유착을 옹호하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언론 비판을 시작으로 정경유착 문제가 해결되는 걸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2. 보도내용 분석

보도량과 논조에서 드러난 경제지와 보수신문의 재벌 친화적 보도 양상은 내용 분석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경제지와 보수신문은 이재용 부회장을 피해자로 묘사하거나 근거 없는 삼성 위기론을 또 꺼냈습니다.

‘86억 뇌물’ 이재용, 피해자라고?

한국경제는 이재용 부회장을 피해자로 묘사하는데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한국경제 <사설-외국 기업인도 한탄하는 한 기업인의 서글픈 현실>(1월21일)은 한국 사회에서 기업 총수는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쥐어박히는’ 처지”, “‘한풀이’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같은 날 <다산 칼럼-우리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나>(1월21일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는 “삼성 사건은 정경유착의 기존 관행에서도 많이 벗어난 것으로 느껴진다”며 “이 부회장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인상을 받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라고 주장했습니다. 86억의 뇌물을 제공한 이 부회장을 ‘피해자’로 묘사한 것입니다.

조선일보 <삼성측 “구속은 피할 줄 알았는데…”>(1월19일 김강한 기자)는 제목부터 삼성 측 입장을 부각했습니다. 보도 내용에서는 익명의 재계 관계자 말을 빌려 “현실적으로 청와대와 기업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라며 “대통령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한국경제와 조선일보의 보도만 본다면 기업인 이 부회장이 불리한 입장에서 재판을 치렀고,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이재용 측 대변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는 이재용 부회장이 ‘86억 뇌물’을 줬지만 ‘소극적 가담자’, 혹은 ‘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6억 8081만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하여 이를 뇌물로 제공하였고”, “범행을 은폐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위증까지 하였다”며 “단순한 수동적 공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이 부회장이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4년에 걸친 재판 기간 내내 이 부회장 측에서 지속해온 논리입니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는 유죄 판결이 나오자마자 이 부회장 측 논리로 재판부 판결을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

물론 재판부 판결에 대해 언론이 부당함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봐주기였다고 평가했습니다.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1월21일)에 출연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다”면서 “재벌 총수는 집행유예로 석방한다고 하는 관례를 깬 것”은 유의미하지만 “86억 뇌물을 확정해 놓고 실제 양형은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할 때 내렸던 2년 6개월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횡령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최소 형량 5년에서 판사 재량이 허용되는 최대치인 절반을 감경했고, 파기환송심은 이를 그대로 선고해 죄질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재판부 판결에 부당함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법리적 판단과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이 부회장 판결에 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과하다’가 46%였고, ‘적당하다’와 ‘가볍다’를 합쳐 46.6%였습니다. 단편적 여론조사로 여론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는 판결에 대한 다양한 의견 중 일부만 전달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처럼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취재원 주장만으로 구성된 기사는 ‘이재용 피해자론’을 만들기 위한 편파보도일 뿐입니다.

달 땐 삼키던 '준법감시위원회', 왜 문제 삼을까

이재용 부회장 재판을 앞두고 ‘준법감시위원회’가 양형에 반영될지 여부도 관심사였습니다. 재판부가 국내 형법체계에 맞지 않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무리하게 양형조건으로 내걸면서 ‘재벌 봐주기’ 논란이 일었고, 이를 감시할 전문심리위원을 두고도 공정성 시비가 일었습니다. 끝내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조건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조선일보 <이재용 3년만에 재수감… 선고 직후 “드릴 말씀이 없다”>(1월19일 조백건‧권순완 기자)는 파기환송심 재판장 정준영 판사가 “준법감시위 설치를 ‘주문’했다”며 “이 부회장으로선 거기에 사활을 걸어야 할 입장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날 <삼성측 “구속은 피할 줄 알았는데…”>(1월19일 김강한 기자)는 “재판부가 준법위 설치를 지시하면서 희망 고문을 했다”는 삼성 내부 목소리도 전했습니다.

매일경제 <준법위 제안한 정준영 판사…“실효성 없다”며 구속>(1월19일 정희영‧홍혜진‧이충우 기자)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재판 초기부터 이 부회장에게 ‘재발 방지’를 강조하며 이러한 노력을 양형사유로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조건으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정준영 판사가) 매일 보고서를 올리는 등 과제를 이행한 음주 뺑소니범을 집행유예로 감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의 보도는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과 했던 약속을 어기고 이 부회장이 억울하게 실형을 살게 되어 문제인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보수신문과 경제지, ‘삼성 옹호’ 앞장서다

재판부의 준법감시위원회 언급은 정확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정준영 판사는 지난해 1월 기존 재판부 입장을 뒤집어 준법감시위원회가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용된다면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특검은 재판부가 공소사실에 대한 법적 판단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감형사유를 만들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준법감시위원회가 감형사유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특검의 반발에도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점검할 전문심리위원단을 꾸리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도 재판부가 삼성과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의 추천을 허용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때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침묵하거나 삼성에 유리한 의견을 집중 전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1월 준법감시위원회 전문심리위원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법합병 의혹과 연루된 안진회계법인 변호를 맡은 김경수 변호사가 추천되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민언련 보고서 <‘조중동’ 또 삼성 봐주나, 준법감시위원회 공정성 논란 외면>(2020년 11월17일)을 보면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는 관련 보도를 내지 않았습니다. 1건의 기사를 실은 한국경제와 매일경제는 김경수 변호사 추천을 허용한 재판부 입장을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판결 전에는 준법감시위원회 양형요소 반영 등 논란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더니 판결에서 양형요소로 반영되지 않자 비판에 나섰습니다. 물론 상황이 변함에 따라 언론의 입장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상황의 변화 유무와 상관없이 삼성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적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아니라 재벌 옹호와 비호에 나선 듯한 모습입니다.

어김없이 등장한 “한국경제 무너진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경제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주장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재판 다음날 한겨레를 제외한 7개 언론은 “흔들린 코스피”, “삼천피마저 위태”, “삼성그룹주 시총 28조 증발”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이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점이 녹아든 보도입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다음날인 1월19일 한국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동아일보 등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주가하락 등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다음날인 1월19일 한국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동아일보 등은 이 부회장 구속으로 주가하락 등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진실에 부합하진 않습니다. 2017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이 부회장이 처음 구속된 시기 삼성전자 주가 상승률은 26.5%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 19.8%를 웃돌았습니다. 이 부회장 실형 선고 당일 삼성전자 주가는 3.4% 하락했지만 다음날 2.35% 반등했고,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이 부회장 구속보다는 코스피 상승과 하락세 영향이 컸습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총수 11명과 이들이 지배하는 35개 기업, 319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총수가 실형을 받았을 때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주가가 오히려 더 떨어졌습니다. 재벌 총수의 구속이 기업위기, 경제불황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언론의 예측은 수차례 근거가 없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재벌 총수의 구속이 실제 기업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더 관대한 처분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기업뿐 아니라 건전한 자본질서 형성에도 도움 되지 않습니다. 수차례 근거가 없다는 점이 밝혀진 ‘한국경제 무너진다’라는 식의 과장 보도는 멈춰야 합니다. 기업 총수도 잘못을 하면 처벌을 받고, 기업 경영은 좀 더 투명해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방법을 고민하는 게 필요한 때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1년 1월19~2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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