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8일 공직선거법상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선거법 82조의6 조항)에 ‘위헌’을 결정했다. 오픈넷과 미디어오늘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따른 결과다. 2012년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으로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 역시 시간 문제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 폐지로부터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 같은 결정이 나왔다.

문제 우려되니 틀어막자? ‘과잉’ 판단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언론사에 선거 기간 동안 본인 확인을 통한 실명 댓글을 강제하는 내용이다. 익명 게시판 형식의 인터넷 언론사 댓글창을 방치하면 경과하는 날 만큼 과태료가 붙는다. 언론사들은 실명 시스템을 적용하거나 댓글창을 임시 폐쇄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적용 대상 언론사에는 포털도 포함된다.

“인터넷이 형성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다양한 의견 교환을 억제하는 것이고, 이로써 국민의 의사표현 자체가 위축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로운 여론 형성이 방해될 수 있다.”
- 2021년 1월28일 헌법재판소

재판의 최대 쟁점은 필요 이상으로 규제해선 안 된다는 ‘과잉금지원칙 위배’ 여부였다. 헌재는 “모든 익명표현을 사전적,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보다 행정편의와 단속편의를 우선함으로써 익명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익명표현의 제한이 구체적 위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심판대상조항(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으로 인해 위법한 표현행위가 감소할 것이라는 추상적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짚었다. 실명제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관련 명예훼손, 후보자 비방죄 등 사후적인 제재 장치가 있는 점도 ‘과잉 제재’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민중의소리.

6년 전엔 ‘합헌’ 이번엔 ‘위헌’

6년 전인 2015년 헌재는 같은 법 조항에 ‘합헌’을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선거운동기간 중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한 허위사실이 유포될 경우 언론사의 공신력과 지명도에 기초하여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합헌’과 ‘위헌’, 상반된 결과지만 2015년 당시 헌법재판관 5명이 합헌 의견을, 나머지 4명이 위헌 의견을 내놓아 불과 1명 차이로 엇갈린 판단이 나왔다. 반면 이번에는 6명이 ‘위헌’을, 3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이번 결정에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선거 기간 흑색선전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 과도하지 않다며 6년 전 합헌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을 냈다.

헌법소원을 담당한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결국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비례의 원칙을 판단함에 있어 주관적 가치 기준이 작용할 수밖에 없고 재판부 자체의 구성, 재판관 성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수가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규제’를 원칙으로 하는 보수 성향인지, ‘자유’를 원칙으로 하는 진보 성향인지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을 것이고, 단언할 수 없지만 합헌 결정 당시와 재판부의 구성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 '인터넷 실명제' 캠페인 관련 이미지. 사진=진보네트워크센터
▲ '인터넷 실명제' 캠페인 관련 이미지. 사진=진보네트워크센터

28일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합헌’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은 이종석, 이영진, 이선애 등 3명이다. 이들은 각각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바른미래당 추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지명 인사다. 이들 헌법재판관은 같은 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헌법소원 심판에서도 다수와 달리 공수처 합헌 의견을 내지 않았다(이선애 재판관은 각하, 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위헌 의견). 

오픈넷이 과거 ‘합헌’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을 한 점도 차이였다. 손지원 변호사에 따르면 실명확인으로 인한 ‘정치적 보복’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의 피해 문제도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한 후보에 대한 댓글을 쓸 때 실명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원이 드러날까 염려하게 되는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별과 불이익을 우려해 표현을 자제하게 되는 문제를 집중 제기한 것이다.

또한 ‘선거운동 기간’만 한정하기에 표현의 자유 제한 정도가 크지 않다는 기존의 합헌 논리에는 ‘오히려 선거 기간이기에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식으로 반박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그 결과 결정요지에서 ‘선거운동기간이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장 긴요한 시기’라는 점이 고려되어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헌재 결정문에 언급된 ‘사후 규제’가 이미 많다는 점 역시 오픈넷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문제였다.

시민단체와 언론, 카카오 유튜브까지 ‘저항’

인터넷 실명제의 역사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도입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논란이 시작된다.

먼저 논의된 건 뒤늦게 사라진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였다. 2004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합의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온다. 회의록을 보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같은 해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인터넷 검열 반대 공대위’를 구성하고 선거 실명제 불복종을 선언한다. 그러나 2004년 3월9일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해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각하되면서 제대로 된 법리다툼조차 하지 못했다.

이어 2005년 이른바 ‘개똥녀’ 사건과 ‘연예인 X파일’ 이슈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인터넷 익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귀결됐다. 이 국면에서 진대제 장관은 사이버폭력 대응방안으로 ‘인터넷 실명제’ 카드를 다시 꺼내든다. 같은 해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실명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등 여당의 화답이 이어졌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이어 본격적인 ‘인터넷 실명제’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2007년 인터넷 실명제 반대 기자회견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007년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반대 기자회견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결국 2006년 6월5일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이어 ‘인터넷 실명제’가 국회를 통과한다. 훗날 ‘인터넷 실명제’가 헌재에서 만장일치 위헌 결정을 받은 사실을 감안하면 논쟁이 첨예했을 것 같지만 정작 주류 정치권에선 이견이 없었다. 당시 재적의원 179명 중 10명을 제외한 16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의원 등 8인이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은 기권했다.

한편 2006년 5월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자 저항이 이어졌다. 참세상, 민중의소리 등 언론사들은 실명제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참세상은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서까지 실명제에 맞섰다. 2009년 본인확인제 대상 사이트로 지정된 유튜브가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는 입장을 내고 한국 국가 설정으로 접속한 이용자의 영상 업로드 및 댓글 작성 기능을 제한하는 강수를 던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민중의소리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반대 선언 기사 갈무리.
▲ 민중의소리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반대 선언 기사 갈무리.
▲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참세상.
▲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참세상과 진보네트워크센터.
▲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유튜브.
▲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유튜브.

2010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두 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오마이뉴스, YTN, 유튜브 네티즌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은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년 만인 2012년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익명 표현의 자유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에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블로터(당시 블로터닷넷)는 SNS 계정 로그인을 연동해 댓글을 쓰는 ‘소셜 댓글’을 도입하며 우회로를 찾는다. 소셜 댓글은 언론사 댓글처럼 보이지만, 실은 실명인증 의무가 없는 SNS 계정을 통한 글이었기에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단속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관위가 초기에 소셜댓글도 실명제 대상이라고 규정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당시 이희욱 블로터닷넷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매체는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갖고 기사를 작성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그런데 시스템에 의해서 선택지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헌법소원은 2012년 8월 딴지일보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된다. 2013년 1월 실명확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다음(현 카카오)도 같은 해 10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며 힘을 보탰다. 중앙선관위도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이후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의견을 낸다. 하지만 2015년 합헌 결정을 받으면서 다시 제자리 걸음이 됐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국회에서 다시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화두가 됐다. 2015년 정개특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진태·김도읍 당시 새누리당 의원 등이 익명 댓글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며 반발해 관련 조항은 빠졌다.

이후 미디어오늘, 비마이너, 직썰, 뉴스민 등 언론사들이 실명확인 조치 거부 입장을 내고 댓글창을 닫는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딴지일보는 20대 총선과 19대 대선 당시 실명확인을 하지 않아 과태료를 부과 받은 뒤 위헌법률심판제정 신청에 나섰고, 2020년 미디어오늘과 오픈넷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지난 28일 ‘위헌’ 결정을 얻어냈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양대 실명제는 폐지됐지만, 또 다른 ‘실명제’는 아직 숨 쉬고 있다. 진보넷은 29일 입장을 내고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상 익명성을 침해하는 제도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문제적 법률이 법률상 ‘본인확인’ 제도, 달리 말해 ‘셧다운제’다. 오병일 진보넷 대표는 “셧다운제를 하려면 청소년 확인을 위해 연령을 확인하는데, 이는 본인 확인 조치이기에 게임 실명제로 작용한다”고 했다.

오병일 대표는 “인터넷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본인확인업체를 통한 본인확인을 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보통신망법에 본인확인 기관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굳이 둘 필요가 없다”며 “사업자가 필요에 의해 본인확인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를 정부가 규정하고 필요 이상으로 관행적으로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들여다봐야 할 문제적 제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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