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현장 기자 41명이 자사 법조 보도의 정권 편향성을 지적한 뒤 이춘재 사회부장과 김태규 법조팀장이 보직을 사퇴한 가운데, 기자들에 대한 반박글이 게시되는 등 한겨레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관련기사 : 한겨레, 이용구 차관 폭행 사건 보도에 “사과드린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708

앞서 한겨레 현장 기자들은 26일 성명을 통해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며 “국장단의 어설픈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직격했다.

기자들은 자사의 이용구 차관 관련 보도가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써 준 결과”라고 비판했고, 김학의 출국금지 불법 논란을 다룬 사설에 대해서도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다”고 혹평했다.

상대적 저연차 기자들 반발은 조직 내 세대 갈등으로도 분출되는 모양새다. 28일 한겨레신문 노조 익명 게시판에는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이 글에는 젊은 기자들을 비판하는 댓글이 적지 않게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게시자는 “여러분은 기사의 내용이나 방향이 데스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거나 지시된다고 비판했다”며 “기사의 방향은 현장 보고와 데스크(부장과 팀장)의 판단을 토대로 해서 편집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고, 데스크나 편집위원회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결정은 데스크와 편집위원회가 하는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데스크와 편집위원회가 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은 그 결정에 따라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시스템”라고 반박했다.

이 게시자는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것’은 절반만 좋은 저널리즘”이라며 “한겨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보수보다 진보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진보 성향의 매체다. 여러분이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겨레에서 일하기보다 한국일보처럼 중도적인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권한다”고까지 비판했다.

이 게시자는 “검찰과 법원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국가 기관들이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검찰과 법원은 지배 세력의 도구로 일하며, 오히려 국민의 인권과 정의를 파괴해왔다”면서 “최근 들어서는 스스로가 지배 세력이 돼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젊은 기자들은 법조의 이런 역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취재,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현장 기자들은 기자와 데스크 사이 불통 문제, 정부·여당 주류와 가까운 86세대 데스크들의 편향성, 보수진영에는 엄격했다가 진보정권에는 무뎌진 검증 비판 잣대 등을 우려한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29일 “현장 기자들은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정권을 잡은 쪽은 곧 권력이기 때문에 비판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타사에 비해 부족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현장 기자들이 이곳에 남은 이유는 권력과 감시 역할에 제약이 없다는 자부심일 텐데, 그것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확 꺾인 것이다. 반면 데스크들에 ‘민주당은 같은 편’이라는 정서가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반기를 들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데스크는 기자들과 조만간 토론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과 한겨레 국장단의 갈등이 봉합될지 주목된다. 아래는 한겨레 기자 41명 성명에 반박하는 한겨레 소속 익명 게시자의 글.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

먼저 젊은 기자들이 성명에서 말한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이란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선택적인 수사를 벌이면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고 말하는 것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이라도 아무한테나 마구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상대와 상황을 봐가면서 공정하고 균형있게 휘둘러야 합니다. 그런 거시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없는 ‘성역 없는 비판의 칼날’은 어떤 경우엔 망나니의 미친 칼날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사의 내용이나 방향이 데스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거나 지시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사의 방향은 현장의 보고와 데스크(부장과 팀장)의 판단을 토대로 해서 편집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고, 데스크나 편집위원회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은 데스크와 편집위원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데스크와 편집위원회가 지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은 그 결정에 따라줘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시스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기사가 여러분의 이름으로 나간다면 그냥 이름을 빼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그 데스크는 그 기사를 자기 이름으로 내보내든가 여러분의 뜻에 맞게 고치든가 할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현장 기자들이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절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기사를 쓸 때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절차가 더 큰 문제였는지, 아니면 윤석열 총장의 선택적인 수사나 선택적인 수사 기피가 더 큰 문제였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과연 윤 총장이 조국 전 장관과 가족에 대해 공정하고 균형있는 수사를 했습니까? 자기 자신이나 장모, 측근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균형있는 수사를 했습니까? 문재인 정부와 야당 사이에서 공정하고 균형있는 수사를 했습니까?

이용구 차관도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보도해야 합니다. 다만 그 취재 과정에서 이 차관의 이런 잘못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공개됐는지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조국 전 장관부터 추미애 전 장관, 이용구 차관, 이성윤 중앙지검장 등으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고발이 자연스런 일일까요? 그 고발의 소스는 누구일까요? 그동안 검찰이 수사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피의자에 대한 수사 정보를 고의로 언론이나 정당 등에 흘리는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국가기관인 검찰의 이런 행위는 명백히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이고 불공정한 행위입니다. 개인의 범죄나 일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범죄입니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갖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범죄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수사해야 한다는 ‘절차적 정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실체적 정의’도 중요한 것입니다. 왜 2013년 이후 제기된 숱한 고소와 고발 속에서도 2019년까지 김학의 전 차관이 제대로 수사, 기소되지 않았을까요? 누가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 기소를 방해해서 술접대와 성폭력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게 만들었을까요? 현장 기자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취재하고 보고해줘야 합니다.

한겨레가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기사를 쓴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파시즘적인 기사를 보고 싶다면 다른 신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친정부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정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추진하고, 국힘당이 이것을 반대할 때 <한겨레>가 이를 찬성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윤석열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무리하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윤 총장이 자신과 주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근데, 과연 이게 ‘친정부’적인 태도인가요?

<한겨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겨레>는 민주주의나 인권, 소수자 보호, 남북 관계 개선, 평화, 복지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왔습니다. 또 <한겨레>는 언제나 개별적인 작은 사실들보다는 더 큰 진실을 추구해왔습니다. 개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기자로 일한다면 언제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큰 진실을 고려하면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합니다.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 팀장과 부장, 국장과 대화하는 것은 매우 좋고 필요한 일입니다. 데스크들이 이런 대화를 게을리했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좋은 저널리즘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매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의 기자들은 스스로 나쁜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아닐 겁니다. <한겨레>와 <조선>은 각각 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다만, 그 가치와 내용이 크게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한겨레>의 저널리즘의 원칙에 따라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것’은 절반만 좋은 저널리즘입니다. <한겨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지만, 특정한 가치와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보수보다 진보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진보 성향의 매체입니다. 여러분이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겨레>에서 일하기보다 <한국일보>처럼 중도적인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권합니다.

법조 출입처, 특히 검찰과 관련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검찰과 법원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국가 기관들입니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검찰과 법원은 지배 세력의 도구로 일하며, 오히려 국민의 인권과 정의를 파괴해왔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스스로가 지배 세력이 돼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은 법조의 이런 역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취재, 보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검사나 판사의 정교하지만 편협한 논리에 휩쓸려 ‘친검’, ‘친법조’ 기자가 되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 안의 문제점을 다룰 때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2019년 가을 붙인 성명으로 인해 <한겨레>는 안팎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직도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당시 제기된 논점들의 잘잘못에 대해 충분히 토론해서 결론을 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무책임한 편집국 지도부는 상당한 의견 차이를 그냥 덮어버리고 넘어갔습니다. 그 뒤에 새로 들어선 편집국 지도부도 젊은 기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번 성명이 나오자마자 <조선>을 비롯한 보수 매체들은 신이 나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성명이 또 <한겨레>의 평판과 독자에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우려됩니다. 여러분은 사전에 이 성명이 ‘외부로 유출돼 확대 재생산될 우려’를 고려했다고 말했으나, 현실에선 너무나 쉽게 ‘외부로 유출돼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신중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선의가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과연 그것을 선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편집국 지도부를 포함한 선배들도 이번 성명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젊은 기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이 타당한지, 타당하다면 <한겨레>를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동시에 젊은 기자들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과연 여러분의 성명이 <한겨레>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여러분이 주장하는 가치와 방향이 <한겨레>와 어울리는지 말입니다.

이번 성명을 계기로 편집국에서 진지하고 치열한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한겨레>의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와 방향이 새로 세워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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