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27일 오후 정기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했다. KBS 경영진은 월 2500원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이사회에 올렸다. 최종 금액은 향후 이사회에서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이사회에서 논의된 수신료 인상안의 공식 명칭은 ‘텔레비전방송수신료 조정안’(이하 수신료 인상안)이다. 이사회는 △이사회 공개 여부 △수신료 인상안 상정 찬반 △수신료 인상안 등에 의견을 나눴다.

이사회 공개 여부를 두고 당초 집행부(KBS 경영진) 설명만 공개되고 이사들 발언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강형철 KBS 이사가 “이런 중요한 안은 공개로 진행해야 한다”며 “오늘 방청하러 온 사람도 많고 이 논의는 소상하게 공표돼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사들도 공개 진행에 찬성했다. 이날 방청 신청을 한 인원은 14명이었다.

야권 이사 “코로나 시대에 수신료 인상 부담” 반대했으나 합의 후 상정

두 번째 논의는 ‘수신료 인상안’을 이사회에 상정할지 여부였다. 황우섭 이사(야권 추천)는 “지금과 같이 코로나19로 국민 부담이 있는 때 수신료 인상안 상정은 부적절하다”며 “상황이 좋아졌을 때 다시 상정하는 게 맞는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서재석 이사(야권 추천)는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드는 다행스러운 국면이지만 세미나, 공청회 등의 토론을 먼저 하자”며 “상정을 잠시 미루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경달, 김태일, 문건영 이사 등 다수이사들이 상정에 찬성했다.

김경달 이사는 “상정은 해놓고 시간을 두고 계속 논의하자”는 의견을, 김태일 이사는 “수신료 인상은 KBS 혁신에 중요한 동력”이라는 의견을, 문건영 이사는 “상정을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는 의견을 냈다.

김상근 KBS 이사장이 다수 이사 의견을 모아 야권 이사들에게 합의를 구했고 결국 ‘수신료 인상안’이 상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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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KBS 정기 이사회에서 김상근 이사장이 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하고 있다. 사진=KBS 제공. 

양승동 사장 ‘인상안’ 상정 직후 “비판 겸허히 받아들인다”

양승동 KBS 사장은 수신료 인상안 상정 직후 입장문을 발표했다. 양 사장은 “KBS는 오늘 41년째 월 2500원에 머물러 있는 텔레비전방송수신료를 인상하기 위한 수신료 조정안을 KBS 이사회에 제출한다”며 “국가기간방송에 부여된 ‘공익’ 책무를 다하며 미래에 더욱 필요한 공영방송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지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양 사장은 ‘코로나 시대에 수신료 인상은 부적절하다’는 일부 이사 의견을 의식한 듯 “코로나 시대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힘들어하고 있는 등 수신료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 송구스럽다”면서도 “다만 코로나19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지금이 수신료 인상안을 제출할 때라고 생각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코로나19는 고통과 공포를 줬지만 이제는 과거 패러다임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뉴노멀’이 왔음을 알렸다”며 “코로나19는 공적 영역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공영방송은 공공영역의 중요한 축”이라고 밝혔다.

양 사장은 KBS에 대한 비판에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양 사장은 “어떤 분께서는 ‘시청자는 KBS를 보지도 않는데 왜 수신료를 내느냐’고 물으시고, 어떤 분은 방송이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신다. 어떤 분은 KBS가 어려우면 직원들 임금을 대폭 감소하라 하시고, KBS가 잘하면 그때 수신료를 올려주는 게 맞는다는 말씀도 하신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심껏 논의해 답변하겠다”며 “자구 노력과 함께 경영 효율화 방안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국민께 말씀 드리겠다”고 밝혔다.

양 사장의 이 발언은 KBS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KBS가 공식 배포한 첫 입장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양 사장이 현 KBS가 직면한 비판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발언은 이사회가 끝난 직후 인사말로 다시 한 번 배포됐다. 

▲27일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상정되자 양승동 KBS 사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KBS 제공.
▲27일 KBS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상정되자 양승동 KBS 사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KBS 제공.

KBS 수신료 3840원으로, EBS 수신료 현행 3%에서 5%로 확대

양 사장 발언 후 KBS 집행부 측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KBS 경영진이 내놓은 인상한 수신료 금액은 월 3840원이었다. 현 2500원에서 1340원을 인상하는 것이다. 임 부사장은 인상액에 대해 2025년까지 중기 수지 전망 등을 분석한 결과라고 밝혔다.

또 EBS 수신료 지원을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현재 EBS 수신료는 KBS 수신료의 3%에 그친다. 이 비율을 5%로 확대해 180억원대에서 500억원대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임 부사장은 “EBS 지원 확대를 통해 공교육 확대와 교육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KBS 경영진이 발표한 수신료 인상안과 함께 발표한 공적 책무 확대계획으로 △재난방송의 강화 △저널리즘 공정성 확보 △대하 역사드라마 부활 등 공영 콘텐츠 제작 확대 △지역방송 서비스 강화 △장애인과 소수자를 위한 서비스 확대 △시청자 주권과 설명 책임 강화 △교육방송과 군소·지역 미디어에 대한 지원 등 57개 추진사업을 제시했다. 24시간 뉴스, 공정성의 기준이 되는 ‘팩트체크 K’, 뉴스 출처와 근거를 공개하는 페이지 등도 언급됐다.

“공정성 문제 있어” vs “정치과잉 현상”

KBS 사측 설명이 끝나자 이사들은 인상안 논의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역시 ‘공정성’ 논란이었다.

야권 추천 황우섭 이사는 “‘시사기획 창’에 대해 청와대 수석이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는 개입을 했고 ‘검언유착’ 관련 보도를 하며 KBS가 ‘검언유착’된 모습을 보여줬다”, “주진우(기자)씨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공정성 이슈가 나왔고 오늘(27일) 고발도 됐지만 김모 KBS 아나운서의 라디오 편파 방송 등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형철, 박옥희, 김영근 이사는 황우섭 이사 논리가 KBS에 대한 논의를 ‘정파 대결의 장’으로 만든다며 비판했다.

강형철 이사는 “수신료 인상안 논의가 정파적 대결의 장으로 쓰이고, 이러한 논의 진행 방식이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지적했다. 박옥희 이사 역시 “황 이사 이야기는 100번쯤 들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 이사는 “공정성 논란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만 논의하면 다른 부분 점검을 할 수 없다”며 “지금은 KBS 정체성을 이야기해야 하고, 수신료 인상안을 보면 ‘새롭게 무엇을 하겠다’는 게 많은데, 새롭게 할 걸 이야기하기보다 현재 품질이 낮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근 이사도 “한국의 정치 과잉 현상이 KBS에 투영돼 수신료 논의를 할 때도 ‘공정성’ 이야기로만 제약돼 있다”며 “왜 수신료가 필요한지 국민을 설득해야 하며 정파성에 갇힌 논의로 끌려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 추천 서정욱 이사는 국민들이 수신료에 가진 오해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수신료 인상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이사는 “국민들이 ‘나는 KBS를 안 보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하느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독일 판례 등을 보면 수신료는 시청료가 아니라 특별 부담금이기 때문에 시청과 관련 없이 내야 한다”며 “또 KBS에 억대 연봉이 많다는 이야기도 수신료 인상 반대 논리 중 하나인데, 감사 결과 등을 통해 방만한 경영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이사는 “현재 KBS가 신입 사원을 많이 뽑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평균 연봉이 높게 보인다”며 “예산 심의 결과 등을 활용해 이러한 오해를 설득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서 이사는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공정성은 수신료 전제 조건이 아니다”라며 “공정성은 각 정파에 따라 일치하기가 어렵고, 공정하지 못해 수신료 인상이 어렵다면 천 년 만 년 수신료를 이대로 계속 놔둬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임병걸 부사장은 이사들 논의를 듣고 “공정성 문제 등에 자구 노력을 하겠다”며 “경영 위기로 수신료를 높이자는 게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현실화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KBS 이사회는 27일 인상안 상정 후에도 계속 이 안건을 논의하겠다고 밝히고 이사회를 종료했다. 향후 이사회 논의를 통해 수신료 인상 금액과 계획 추진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수신료안은 KBS 이사회가 심의·의결하고 방송통신위원회 검토를 거쳐 국회 승인으로 확정된다. 과거 2007년, 2011년, 2014년에도 수신료 조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승인 받지 못하고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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