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수단체의 형사고발이 있었습니다. 물론 성폭력 범죄는 비친고죄에 해당해 경찰의 인지수사나 제3자 고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이미 자신이 원하는 정의당 차원의 해결방식을 명확하게 밝혔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에 따라 이미 당내 징계절차와 후속조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수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김윤기 정의당 당대표 직무대행의 26일 발언이다. 사실 지난 25일 김종철 당시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공개하는 순간, 이 사건은 수사의 영역으로 확대된 문제다. 강제추행 등 성폭력 관련법에서 친고죄가 2013년 폐지됐기 때문이다. 즉 피해자가 원치 않더라도 제3자의 고발이나 수사기관의 인지만으로 형사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26일 김 전 대표를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정의당 지도부의 판단은 피해자인 장 의원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다. 장 의원은 25일 형사처벌을 원치 않았고, 2차피해에 대한 우려, 피해자다움의 허구성 등을 말했다. 배복주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은 이날 “피해자는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이 원하는 해결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데 피해자의 결정은 정의당 차원에서 책임을 묻고 징계하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방식을 밝혔다면 그 의사에 반해 수사하는 것이 과연 피해자를 위한 것이냐”고 했다. 

▲ 김윤기 정의당 당대표 직무대행. 사진=노컷뉴스
▲ 김윤기 정의당 당대표 직무대행. 사진=노컷뉴스

 

김 직무대행은 장 의원과 배 본부장 주장을 받아 사실상 수사에 대한 거부의사를 당 공식입장으로 정했다. 피해자의 주장을 받은 것이니 괜찮을까. 

김 직무대행은 몇 가지 실책을 남겼다. 이는 장 의원과 무관한 실책이다. 공당은 대국민 메시지와 현행법을 함께 고려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김 전 대표에 대한 고발은 공론화 순간 예견된 일이다. 현행법상 비친고죄인 형사범죄를 공론화하면서 당내에서만 해결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한 대응논리를 탄탄하게 준비하지 않았으니 일반 국민은 물론 당원들조차 당 지도부의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김 직무대행 발언을 두고 비판이 나왔다. ‘무관용 원칙’을 말하더니 왜 경찰수사를 피하냐는 지적이다. 김 직무대행 스스로 말했듯 현행법상 고발과 수사가 가능한데 왜 정의당만 예외냐는 것이다. 과연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강력한 형사처벌을 주문하지 않았겠냐는 의문도 남는다. 오히려 경찰수사를 꺼리는 게 ‘성추행이 맞느냐’는 2차가해성 의문을 더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불필요한 2차가해성 발언을 차단하기 위해 당 지도부에서 선제적으로 고발 조치한 뒤 ‘형사절차에 돌입했으니 피해자를 위해 자중하자’는 메시지를 던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별다른 협조를 하지 않으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긴 어렵다. 이는 존중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판단이자 권리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가 명예를 보호할 방법이 있는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속한 정당이 이런 목소리를 내는 건 다른 차원이다. 당대표였던 가해자를 비호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 밖에서도 비친고죄를 이유로 정의당이 ‘내로남불’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정의당이 성범죄 비친고죄의 일부 부작용에 대해 공론화를 해온 것도 아닌데 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에서 비친고죄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남기지 않았다. 엄연히 제도권 내 정당이 현행 형법상 가능한 일을 자세한 설명도 없이 수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건 결국 보수단체에 대한 비판과 수사기관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행동이다. 

성폭력사건의 친고죄 폐지는 여성인권사에서 한 단계 발전한 일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인권운동가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다. 이제 성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중한 범죄로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김 직무대행은 이날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 여러분, 정의당은 이번 사건을 한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습니다”라고 했지만 이 발언은 친고죄 폐지의 운동사를 볼때 그의 앞선 발언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성범죄에서 친고죄는 오랜기간 피해자의 입을 막는 족쇄로 작동해왔다. 그동안 공권력이 성범죄를 처벌하기보단 피해자와 가해자의 합의로 해결하면 되는 사적인 차원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친고죄는 성폭력을 성관계의 일종으로 보게 만든다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나온 논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하고, 가해자는 끊임없이 피해자에게 합의를 받으려 애를 쓰는 현상이 벌어졌다. 협박과 회유, 각종 2차가해를 공권력이 방관한 꼴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범죄 친고죄 폐지는 피해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끊임없이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았더라도 합의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하면 양형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친고죄가 폐지됐음에도 여전히 피해자의 부담은 남아있다. 

반대로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 의사에 반해 수사가 진행된다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수사를 받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수사기관에서 당할 2차피해, 피해사실이 수사기관을 통해 유출될 우려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들이 학계에선 논의가 있지만 정치권에선 제대로 공론화하지 않았다.

김 직무대행을 비롯해 정의당은 성범죄 사건에서 친고죄와 비친고죄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다른 수많은 성범죄 사건에서 정의당이 어떻게 피해자들과 연대할 것인가, 그 기준에 대한 문제다. 적어도 성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한 만큼 이 기준 역시 명확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성범죄 사건에서 친고죄와 비친고죄의 양자택일이 아닌 피해자의 의사와 국가의 형벌권을 조화할 수 있는 제3의 방안을 토론할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적절한 시점에 정의당도 이 논쟁에 뛰어들고 필요하다면 관련 입법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