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상공인·노동자 생계 및 난개발 방지를 고려해 맺어진 ‘홈플러스 대전 둔산점’ 고용 유지 협약이 순식간에 “노조가 뒷돈 챙긴 알박기”로 둔갑했다. 협약 당사자가 아닌 홈플러스가 관련 보도자료를 냈고 언론이 받아 썼다. 조선일보는 “노조 간부가 돈을 챙겼다”고 왜곡도 했다. 협약을 중재한 대전시의회 측은 “과장·왜곡에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4일 “홈플러스 노조, 인수업체서 1억5000만원 챙겨”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2일 홈플러스 노조(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둔산점입점주협의회, 개발업자 ‘미래인’이 체결한 고용 유지 협약을 다뤘다. 미래인은 지난해 9월 홈플러스가 폐점하려는 대전 둔산점 건물과 부지를 인수했다. 둔산점 노동자들과 입점 점주들은 폐점을 앞두고 생계 불안을 호소했다. 이에 인수자 미래인이 둔산점 노동자·소상공인의 생계 지원을 약속하며 12일 협약이 성사됐다.

골자는 고용 유지와 보상이다. 미래인은 신축할 주상 복합 건물에 7000m² 규모의 대형마트를 입점시킨다고 약속했다. 폐점 후 고용 유지가 되지 않은 둔산점 정직원은 재취업을 할 때까지(최대 45개월) 생계비 100만원을 매달 지원키로 했다. 이들 중 정년이 아닌 입사 희망자를 신설 마트에 최우선 고용하고 필요할 경우 외주업체 직원들도 우선 채용키로 했다.

▲홈플러스 둔산점 부지·건물을 매수한 미래인과 홈플러스 노조 간의 '둔산점 고용 유지 협약 체결식'이 지난 12일 대전시의회에서 열렸다.
▲홈플러스 둔산점 부지·건물을 매수한 미래인과 둔산점 입점주협의회, 홈플러스 노조 간의 '둔산점 고용 유지 협약 체결식'이 지난 12일 대전시의회에서 열렸다.

또 외주업체 직원에게 일시금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정했다. 점주들에게는 점포당 최대 2500만원씩 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 과정에 대전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등이 적극 관여했다. 지역 일각에선 둔산점을 포함해 탄방점까지 홈플러스 점포 2개가 폐점하면서 800명이 고용 불안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했다. 입점 점주 생계를 포함해 상업 유통망을 유지하는 등 무분별한 개발을 막으려는 지역 정치인들 문제의식도 있었다.

안산시의 전례도 있었다. 오는 8월 폐점될 홈플러스 안산점도 지난해 11월 한 개발업자에 매각됐다. 폐점 계획이 알려지자 안산시의회는 도심 지역 난개발을 방지하는 취지로 ‘일반상업지역 내 주상복합건축물’의 용적률을 1100%에서 400%로 낮췄다. 높은 건물을 지을수록 많은 수익을 내는 개발업자에게 손해다. 이처럼 대전시의회도 상업지구 내 주상복합건축물 용적률을 강화하는 조례개정안을 냈다.

조례 통과가 임박하자 지난해 12월 중순 미래인이 대전시의회와 노조에 고용 유지 협약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미래인과 노조가 대전시의회 중재를 통해 3주 가량 합의해 지난 12일 협약이 성사됐다.

▲지난 14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홈플러스 노조, 인수업체서 1억5000만원 챙겨” 기사.
▲지난 14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홈플러스 노조, 인수업체서 1억5000만원 챙겨” 기사.

그런데 보도는… “1억5천 위로금 ‘뒷돈’ 챙겨?”

미래인은 협약에서 홈플러스 노조 측에 위로금 1억5000만원도 지급키로 했다. 위로금은 통상 폐업, 이전, 구조조정 등의 문제로 노사 교섭이 이뤄질 때 회사가 노조에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공장 이전에 따른 이주비 보상이나 파업 후 지급되는 위로금 등은 보도 등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재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관계자는 “노사 협력 기금의 취지로, 인수자가 고용유지를 약속했고 추후 건강한 노사 관계 구축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용처는 노조가 알아서 결정키로 했다. 중재한 대전시의회도 긍정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노조 간부가 뒷돈을 챙긴 것처럼 전했다. “생계비 지원에 더해 노조에 위로금 1억5000만원까지 약속”했는데 “이중 2000만원은 노조 본부 격인 홈플러스 지부, 1000만원은 노조 충남지역본부 간부가 각각 챙겼다”는 것이다. 기사 제목도 “홈플러스 노조, 인수업체서 1억5000만원 챙겨”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저질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3류 소설을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지난 7일 노조 중앙집행위, 9일은 둔산지회 조합원총회, 11일 각 점포 지회장 중앙위원회 등 3개 회의를 거쳐 용처를 정했다. 둔산점 조합원 약 60명에 200만원씩 지급하고, 비조합원과 협력업체 직원, 점주 등에겐 총 1000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기로 했다. 나머지는 투쟁기금으로 적립하기로 정했다. 홈플러스 지부는 지난 7월부터 임단협 교섭 결렬로 쟁의에 돌입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이들이 “‘폐점 매각 저지’ ‘고용 안정 쟁취’ 등을 외치며 파업을 벌였다”며 “매장 진열 상품을 쇼핑 카트에 잔뜩 담은 뒤 매장에 방치하거나, 물건을 산 다음 바로 환불하러 가고, 계산을 동전으로 하는 등 영업을 방해했다”고 적었다.

짜깁기된 내용이었다. 홈플러스 지부는 지난 7월부터 폐점 매각 저지 등을 주장하며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상품을 카트에 실은 뒤 매장에 방치하거나 계산을 동전으로 한 건 지난해 7~9월 ‘서울 월곡점’의 얘기다. 사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인 관리자와 그를 두둔하면서 2차 가해를 저지른 회사가 지역에서 논란이 되면서 고객들이 항의 행동에 나섰다.

협약 중재자도 “회사 보도자료 황당”

보도에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 12일 보도자료를 냈다. 조선일보 보도 골자와 같다. “직원 핑계로 매각 반대하더니… ‘뒷돈’챙겨 ‘먹튀’한 노조”가 제목이다. “점포 매수자 별도 접촉해 위로금1억5000만원 받아, ‘신종 알박기’ 논란”은 부제목이다. 협약 내용 중 ‘위로금’을 강조하며 “노조가 미래인과 물밑 접촉해 위로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챙겼고, ‘용적율을 현재대로 유지한다’는 전제로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대전시당 관계자는 “무책임으로 일관한 회사가 무슨 적반하장이냐”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땅 팔아서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지는 과정이다. 400~500명 집단 해고나 폐점이 예상되는데다 큰 유통시설이 사라지고 오피스텔이 들어오면 대전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그래서 시의회도 용적률, 교통·환경영향평가 부분을 다각도로 고민한 문제”라고 밝혔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둔산점 지회 '폐점 및 매각 반대 시위' 모습. 사진=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제공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둔산점 지회 '폐점 및 매각 반대 시위' 모습. 사진=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제공
▲ 12월10일 개발업자 측이 대전시의회에 제출한 고용 유지 및 보상 관련 확약서. 사진=홈플러스 제공
▲ 12월10일 개발업자 측이 대전시의회에 제출한 고용 유지 및 보상 관련 확약서. 사진=홈플러스 제공

또 “노동자들, 점주들, 지역 주민들 문제를 홈플러스 대주주 MBK 파트너스가 나서서 보호했어야 하는데 ‘매각했으니 모른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미래인 사업주가 많이 양보했고, 서로 손해를 보면서 또 서로가 윈윈한 지역 상생 사례에 가깝다”고 말했다. 관련 보도에 대해선 “대형 언론사가 실질적인 내용은 확인도 않고 기사를 쓴다. 가진 자의 눈으로, 가진 자의 입장만 대변한다”고 비판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와 관련 “회사는 일관되게 100% 고용 유지를 약속해왔고 성실하게 대화에 임했다”며 “고용의 주체인 회사가 배제된 협약이고, 관련 협약 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홈플러스 노사 2020년 임금·단체협약 교섭은 지난해 7월 이래 결렬 상태다. 홈플러스지부는 지방정부들이 정한 생활임금 1만원 수준에 맞춰 법정 최저임금 수준인 임금을 18.5% 인상하자고 요구했다. 지난 5월엔 홈플러스가 폐업 계획을 발표하자 폐점 매각 저지, 고용안정 쟁취 등도 요구했다. 교섭은 지난 7월29일 결렬됐다. 노조는 현재까지 파업 등 쟁의행위를 벌여왔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고용 유지 약속은 ‘둔산점 인근에서 편도 30km 거리 밖으로 발령내지 않겠다’는 약속밖엔 없었다. 또한 노사 약속은 말이 아니라 교섭과 협약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회사가 책임지지 않은 직원과 관계자들을 노조, 매수인, 지역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해결한 게 사안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회사에 손해 없는 협약… 왜 반발?

지역 당사자 간 개별로 이뤄진 협약인데 손해 볼 게 없는 회사가 왜 강력대응 하냐는 질문도 나온다. 이와 관련 대전시당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매각은 집값 상승률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점포를 판다는 ‘먹튀 부동산 투기’라는 비판을 사 왔다. 이번 협약이 전국적·장기적으로 추후 매각 과정에 영향을 줄 거란 판단 때문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홈플러스 측은 “노조는 (용적률 관련) 조례 개정을 추진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동산개발업자와 ‘거래’를 했다”며 근거로 “미래인의 개발사업이 현재 지구단위계획구역에 의거한 용도 및 용적율을 적용(개정예정인 조례 적용 받지 않음)을 받아 원활한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는 확약서 문구를 들었다. 사측은 또 “미래인은 결국 마트 사업자를 임차해 입점시킬 텐데 임차인에게 이들을 직원으로 뽑으라며 강요할 수 있는 일이냐. 미래인의 고용보장 약속 또한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조선일보에 공식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조선일보는 전 직원 고용보장과 실직자 생계비 지원내용은 쏙 빼놓고 조합 위로금만 물고 늘어졌다. 이는 협약에 재를 뿌리고 노조 혐오를 부각하기 위해 조합 위로금을 악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기사 수정 : 2021년 1월27일 오후 14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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