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소속 의원을 성추행한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25일 직위해제됐다.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약 4개월만이다. 김 대표는 ‘선명한 진보정당’을 내걸고 ‘젠더’ 문제에도 진보적 관점을 보였던 인물이다. 배복주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은 이날 일주일 간의 비공개 조사에서 가해자인 김 대표와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 모두 성추행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김 대표에 대해 직위해제 및 당 중앙당기위원회 제소를 결정했다. 26일자 주요일간지 9개 중 8개 신문이 1면에서 이 소식을 다뤘다. 

경향신문: 정의당 김종철 대표 ‘성추행’ 직위해제
국민일보: 文 “손실보상 검토하라”…민주 “이르면 3월 지급”
동아일보: 정의당 대표마저…성추행 사퇴
서울신문: 또… ‘젠더’ 외쳤던 진보의 성추행
세계일보: 당대표가 성추행…정의당 존립위기
조선일보: 진보∙인권 외친 그들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장혜영의 용기
한겨레: 정의당 김종철 대표, 성추행으로 직위해제
한국일보: 의원 성추행한 당대표 ‘김종철 쇼크’

▲ 1월26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 1월26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선명진보’ 내세웠던 김종철 대표, 현직 의원 성추행

이날 각 신문 1면의 관련 기사 사진으로는 대부분 김종철 대표의 사진이 사용됐다. 정작 김 대표 본인은 입장문을 냈을 뿐 언론 앞에 서지 앉았지만, 가해자로 드러난 만큼 김 대표 사진을 메인에 올린 것이다. 서울신문과 한겨레는 김 대표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의 사진을 썼고, 동아∙조선∙한국일보는 김 대표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을 썼다.

▲1월26일자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 1면 기사 모음.
▲1월26일자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 1면 기사 모음.

중앙일보는 “장혜영의 용기”라는 제목과 함께 피해사실을 공론화한 장 의원 사진을 1면 머리기사에 썼다. 세계일보는 피해사실을 밝힌 장 의원과 김 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을 사용했다. 경향신문의 경우 관련 발표 직후 비공개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는 강은미 원내대표 사진과 함께 “침울”이라는 제목의 사진설명을 넣었다. 정의당 내부의 참담한 분위기 전달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가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은 이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를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은 이는 피해자가 됐다”. 한국일보(“피해자다움은 없다” 메시지 던지려…앞에 나선 장혜영 의원)는 피해사실 공론화에 나선 장혜영 의원의 메시지가 전하는 의미를 짚었다. 장 의원은 배복주 젠더인권본부장의 조사 결과 발표 직후 본인 페이스북에서 사건을 공론화한 경위를 직접 밝혔다. 한국일보는 그간 유력 정치인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자답지 않다’며 비난받은 것과 관련해 “장 의원은 그런 ‘피해자다움’을 격파하려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듯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한다”라는 장 의원의 질문을 강조했다.

대다수 신문은 이번 사건으로 정의당이 치명타를 입게 됐다고 진단했다. 서울신문(총사퇴∙재창당…정의당 벼랑끝 고민)은 “이번 사건으로 김 전 대표의 정치생명이 끝난 것은 물론 정의당의 앞날도 시계제로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당이 존폐기로에 놓였다고 표현했다. 다만 정의당 내부의 자정 시스템이 신속하게 작동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비위 사실이 알려졌을 때의 뜨뜻미지근한 대처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동시에 “피해자인 장 의원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이 김 전 대표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성폭력 근절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던 정의당이 다가오는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보진영 성폭력∙성추행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려선 안 된다는 당부도 나왔다. 한겨레(진보진영 성폭력 공론화 21년 경각심 생겼지만 사건은 반복)는 2000년 7월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100인위) 활동부터 21년간 드러난 성폭력 사건을 언급했다. 100인위 활동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논의가 시작된 기점이기도 하다. 이 신문은 진보적 대의를 앞세워 활동하는 남성도 ‘남성’이란 젠더권력 우위가 유지되는 구조를 악용할 수 있고, ‘운동사회’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언급했다. 다만 조직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는 이른바 ‘조직보위론’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한진희 여성학 연구자는 “성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냈을 때 사회와 조직이 이를 어떻게 수신하는지, 그 방식이 진보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한겨레를 통해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반응도 주목되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인사들은 비판 화살을 민주당에 돌렸다. 민주당은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서면 논평으로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밝힌 데 그쳤다. 중앙일보(야당 “진보 성추행 DNA 있나” 민주당 “이건 정의당 사건”)는 “익명을 원한 민주당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이건 정의당 사건이다. 불똥이 왜 민주당으로 튀나’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내부에선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1월26일자 경향신문 5면 기사.
▲1월26일자 경향신문 5면 기사.

인권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직원 성희롱’ 인정

김 대표의 성추행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이 또 한번 사실로 인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성희롱으로 판단하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법원이 피해자 A씨에 대한 또 다른 가해자 재판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을 인정한 데 가운데, 인권위 차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피해자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로 인정됐다. 인권위는 “피조사자(박 전 시장)의 진술을 청취할 수 없어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자료와 참고인∙피해자 진술 등에 비춰 박 전 시장이 피해자 A씨에게 보낸 성희롱 메시지와 사진, 신체접촉 등을 사실로 판단했다. 해당 사건은 대권주자로 분류됐던 유력 정치인과 하위직급 공무원의 권력 차이 즉 ‘위계관계’에서 발생했으며, 시장 비서실 내부에서 A씨를 보호하지 않고 피해 사실의 왜곡 등을 방치해 ‘2차 피해’가 야기됐다는 점도 인정됐다. 다만 인권위는 비서실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묵인∙방조한 정황이나 피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정확한 경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박 전 시장 사망을 이유로 사건을 ‘공소권 없음’ 처리했던 경찰, 성추행 정황을 간접 확인하는 데 그친 검찰과 다른 결과에 주목했다. 경향신문 사설(검∙경과 달리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인정한 인권위)은 “검경이 수사를 통해 성희롱을 밝혀내지 못한 지난 반 년 동안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했다. 이날 결정은 피해자를 조롱하는 등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이제 피해자 보호와 안전한 일상 복귀가 급선무다. 아울러 인권위가 밝힌 대로 우리 사회가 20년 전 성희롱 법제화 당시의 인식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음을 통감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겨레 사설(인권위도 “박원순 성희롱”, ‘소모적 논란’ 끝내야)은 “법원과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만큼, 이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이제 우리 사회는 성희롱 문제를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에서 ‘고용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거부 의사 표시’ 여부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 없이는 권력형 성비위 사건은 계속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라는 단체가 피해자를 살인죄로 고발한 일을 두고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를 “살인자로 고발”한다는 친문 단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조선일보는 “2차 가해의 첫 출발은 박 전 시장 성추행 피소 사실 사전 유출이었다. 유출 혐의가 짙은 대통령 수족 서울지검장도 면죄부, 민주당 여성단체 출신 의원도 면죄부를 받았다”며 “문 대통령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안타깝다”고만 하는 것도 박원순의 성추행을 흐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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