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8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선고일이었다. 그 전날인 1월17일 ‘이재용’ 키워드로 ‘빅카인즈’에서 뉴스 검색을 해보면 총 59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59건의 기사 중 ‘선처’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 수는 42개다. 그리고 ‘선처’라는 단어가 없이 쓴 기사는 17개다. 먼저 ‘선처’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를 분석해보자.

먼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YTN은 각각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의 선처 탄원서 제출을 스트레이트로 다뤘다. 이는 한국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 국민일보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경제,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아시아경제,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아주경제 등 거의 모든 경제지는 동일하다. 다만, “재계 "이재용 선처해 달라" 잇따라 탄원…삼성은 노심초사”라는 연합뉴스 기사는 그중 눈에 띈다. 김기문 중기회장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탄원 발언을 길게 다룬다. 그런데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발언보다 김기문 중기회장 발언을 더 비중 있게 다룬다. 한국 언론이 중소기업 모임 회장을 재벌 모임 회장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오랜만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특히, 마지막 마무리는 압권이다. “현재 시기에 이 부회장이 또다시 수감되면 세계 시장에서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게 삼성과 재계의 대체적 시각”이라고 한다. 이 연합기사는 계약을 맺은 세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TV 등에서 전제됐다. 그런데 매일신문에서는 정확히 동일한 제목의 기사를 바이라인을 달아서 출고했다. 제목은 동일하고 내용은 연합 기사를 요약한 수준이다. 이를테면 

연합: 재계 "이재용 선처해 달라" 잇따라 탄원…삼성은 노심초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재계에서 이 부회장을 선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날 이 부회장을 선처해 달라고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역시 지난 15일 법원에 이 부회장을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매일신문: 재계 "이재용 선처해 달라" 잇따라 탄원…삼성은 노심초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이 부회장 선처를 요청하는 재계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16일 이 부회장을 선처해 달라는 의견을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전달했다.
앞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역시 15일 법원에 이 부회장을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렇게 보면 거의 베끼기(우라까이) 수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마무리는 사뭇 다르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준법 경영을 강화하고 미래 신사업 투자 등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단한 예지력과 통찰력이다. 

KBS, MBC, 한겨레에서 검색되는 ‘선처’는 맥락상 중립적이다. “실형선고 가능성이 높지만, 선처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식의 중립적인 해석 기사다. 특히, 한겨레는 이재용 선처를 호소하는 경제단체들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이 검색된 42개의 선처가 포함된 기사 중 유일하게 선처를 비판하는 꼭지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선고일인 18일 아침(온라인판 17일 오후) 한겨레 사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선고일인 18일 아침(온라인판 17일 오후) 한겨레 사설.

자, 이제는 선처라는 단어가 제외된 17개 기사를 분석해보자. KBS, SBS는 이재용 파기환송심이 내일 선고된다는 소식을 단신으로 다뤘다. 다만 YTN은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사실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게 법조계의 예측인 것 같습니다”라는 잘못된 예측을 하는 전문가 대담 뉴스가 눈에 띈다. 집행유예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았다는 법조계는 내가 알고 있는 법조계와는 다른 것 같다. 대법원은 2심에서 무죄였던 말 구입비 등 50억원을 추가로 뇌물로 인정했다. 대법원이 강화된 유죄논리로 파기환송한 재판이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같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대단히 일반적이라는 것은 모든 법조계가 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인정한 뇌물 액수는 80억원이 넘는다. 50억원 초과는 특경가법에 따라 5년 이상 실형이 불가피하다. 

물론 전문가 입장은 방송사 입장과는 다르다. 그러나 좀 솔직해지자. 방송사 작가와 PD가 전문가를 섭외할 때는 랜덤이 아니다. 평소에 말하는 논리를 미리 알고 그 입장에 맞는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은 상식이다. 

재미있는 기사는 “정의선, 통큰투자...미래 모빌리티 ‘광폭 행보’” 라는 제목의 기사에 이재용이 언급된 부분이다. 의도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그랑프리는 매일경제의 “파운드리 대란에…대만 40조 폭풍투자, 한국은 허송세월”이라는 기획기사다. 파운드리 투자 관련된 산업계 동향을 나름 잘 설명한다. 왜 한국은 대만만큼 투자를 하지 못할까? 기사를 인용해 보자. “그러나 삼성전자는 공식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당장 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뒀다. 실형을 선고받으면 오스틴을 비롯해 그간 검토 중이던 대형 투자가 줄줄이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삼성전자가 투자를 못하는 이유라고 한다. 비실명 인터뷰이는 내부고발자 등이 아니라면 가능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필요하더라도 그 인터뷰이의 직업이나 직책은 표시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재계 관계자가 아니라 삼성전자 김모 실장 같은 식으로 표시하는 것이 좋다. 

결국, 이재용 재판을 하루 앞둔 59개의 기사 중 단 한 건의 사설만 처벌이 옳다는 기사다. 그리고 17건은 선고를 한다는 스트레이트 기사, 재판의 쟁점을 다룬 중립적 기사다. 다만, 41건은 선처를 바라는 주장이나 입장을 주로 전하는 기사다. 재벌에 그렇게 약하다는 재판부도 2년6개월 형을 확정했다. 아니 복잡한 법논리를 다 떠나서 뇌물을 받았다는 사람이 모두 유죄판결이 확정됐는데 뇌물을 준 사람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다음날 재판의 결과는 상식과 최소한의 법적 지식만 있다면 유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법원보다 대한민국 언론이 재벌총수 범죄에 더 관대하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됐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판결 하루 전은 이미 판결문을 다 써놓은 상태다. 눈물겨운 선처 요구에도 결론은 바뀌기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선처를 요구하는 봇물처럼 쏟아내는 기사는 재판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에게 어필하는 기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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