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인선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차기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자 보수신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 언론의 지적 가운데는 사실과 다르거나, 일관되지 않은 논조가 눈에 띈다. 

정연주 전 사장이 선거방송 심의? 사실과 달라

동아일보는 23일 사설을 통해 “5기 위원들은 올해 서울·부산시장 보선과 내년 대선 등 민감한 선거보도를 심의한다”며 “위원장은 심의에 어떤 안건을 언제 올릴지 등에 대해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있다. 방통심의위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과거 편협한 언론관과 정권 친화적인 방송으로 많은 논란을 빚은 정 전 사장을 위원장에 앉힌다는 것은 공공연한 공정성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 정연주 전 KBS 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내정설을 다룬 보수신문들의 사설.
▲ 정연주 전 KBS 사장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내정설을 다룬 보수신문들의 사설.

동아일보의 사설을 보면 정연주 전 사장이 직접 선거 관련 안건을 상정하고, 심의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이다.

대선, 총선, 보궐선거 등 선거 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아닌 독립기구인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선거 관련 방송 전반을 심의한다.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별도의 독립 기구를 통해 심의를 전담하게 한 것이다. 선거방송심의위는 통상 선거 90일 전(보궐선거는 60일 전) 구성된다.

선거방송심의위는 여야가 6:3 비율로 위원을 추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와 달리 여야 정당 교섭단체당 1인씩 위원을 추천한다. 이 외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학계, 방송사 단체, 방송인 단체 등이 위원을 추천한다. 선거방송심의위원 가운데 몇몇은 방통심의위가 추천 단체를 선정하기에 정부여당에 좀 더 유리한 환경이라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정연주 전 사장을 비롯한 5기 위원들이 선거 관련 심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정연주 전 KBS사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정연주 전 KBS사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공정성’ 요구, 뉴라이트 박효종 위원장 때는?

보수언론은 방통심의위 구성이 정부여당에 편향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여야 위원 구성이 6 대 3으로 여권에 기울어진 방심위가 민원 취지를 받아들여 법정 제재를 내리는 일이 반복돼 왔다”(동아일보 사설)가 대표적이다.

다른 언론 사설 역시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 문화일보는 “지금처럼 여당이 국회까지 독식하고 있으면 정권 일변도 구성도 가능하다”며 “민주주의 제도를 중시한다면 최대한 언론계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신망 있는 중립적 인사들을 추천하는 게 정도”라고 지적했다. 매일경제는 “기본적으로 여당에 유리하다. 그런데도 여권은 친정권 성향이 더 뚜렷한 인사를 방통심의위에 앉히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심의 자체가 정치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며 “정연주 위원장에 민언련 위원으로 (심의위를) 구성하려는 것은 아예 내놓고 ‘중립과 공정'을 팽개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뉴라이트 학자이자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인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선임 당시 동아일보 기사. 단신으로 다뤘으며 논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 뉴라이트 학자이자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인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선임 당시 동아일보 기사. 단신으로 다뤘으며 논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임명 당시 한국일보 기사. 동아일보 기사와 대조적이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임명 당시 한국일보 기사. 동아일보 기사와 대조적이다.

방통심의위는 대통령, 국회의장, 담당 상임위원회가 3명씩 위원을 추천하지만 실상은 정부여당이 6명, 야당이 3명 추천하면서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화일보는 여당이 국회를 독식하고 있기에 ‘정권 일변도 구성’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방통심의위는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한 이래 여당의 의석수와는 무관하게 6:3 구도로 유지돼왔다. 

과거 정부 때 시작된 건 현재와 같은 ‘선임구조’ 뿐만이 아니다. 2014년 3기 방통심의위원장에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가 임명됐다. 그는 박근혜 캠프 출신에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부른 뉴라이트 학자였다. 하지만 당시 이들 신문은 박효종 위원장 임명을 비판하는 사설을 내지 않았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공안검사 출신 박만 변호사를 위원장에 선임해 논란을 자초했다. 박효종과 박만 두 인사는 편향성 여부를 떠나 방송 전문성도 없었다. 

이 같은 위원 선임은 ‘정치 심의’로 이어졌다. △ 천안함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 △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 △ 정부 축산정책을 비판한 CBS ‘김미화의 여러분’ △ 박창신 신부 인터뷰 논란이 불거진 CBS ‘김현정의 뉴스쇼’ △ 박근혜 대통령과 인공기를 나란히 배치한 MBC ‘뉴스데스크’. 방통심의위의 제재가 법원에서 취소돼 ‘정치 심의’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사례들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모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심의 결과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물론 문재인 정부 심의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TV조선에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있고, 코로나19 관련 대통령 및 영부인 관련 정보 삭제 결정 등이 과한 조치라는 지적이 있다. 다만 아직까지 현 정부 방송사 심의제재가 행정소송에서 뒤집힌 경우가 없다는 점에서 정도에 차이는 있다. 

정연주 비판 넘어 일관된 견제가 필요하다

6:3 구도인 방통심의위의 구조는 문제가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미디어오늘은 문재인 정부 방통심의위에 야당 추천 몫을 늘리거나 사법부, 시민사회 등 추천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여러차례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19대 국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최민희, 신경민 의원 등이 야당 추천 위원을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20대 총선 당시 “정치적 심의 배제를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구성 개편”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시만 해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관련 논의를 외면했다. 하지만 민주당 집권기인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관련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정용기 국민의힘 의원이 방통심의위 야당 추천 위원을 2배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처럼 야당 때 주도하고 여당이 되면 침묵하면서 구조가 바뀌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정치심의 바꾸겠다던 민주당 어디로 갔나]
[관련기사: 방통위 방통심의위 지배구조 수술대 올리자]

정치권이 이해관계에 따라 ‘쳇바퀴’ 도는 상황에서 언론이 중심을 잡기는커녕 정치권의 공세에 보조를 맞춰주는 모양새는 곤란하다. 만약 보수신문이 과거 정부에서 박효종과 박만에 주목해 방통심의위 선임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면 지금과 같은 우려를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진짜 ‘공정한 심의’를 원한다면 정연주 전 사장을 겨냥한 비판이 전부가 돼선 안 된다. 지난 정부 때부터 현 정부까지 이어져 온 방통심의위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고, 이를 토대로 ‘개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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