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에 비판적인 매체를 ‘해종 매체’로 규정하고 ‘국정원 프락치설’을 제기한 대한불교조계종∙불교신문(기관지)이 해당 매체에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조계종이 잘못에 참회하고 언론탄압 관여자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신현일)은 지난 15일 조계종과 불교신문이 불교닷컴∙불교포커스에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밝혔다. 법원은 조계종∙불교신문에 대해 △해당 인터넷 언론사를 해종언론으로 규정하고 매우 긴 기간 동안 취재 활동을 막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 △언론사 존립을 위태롭게 해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크게 훼손 △원고(불교닷컴∙불교포커스 발행인)들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였을 것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두 매체와 시민사회는 불교닷컴∙불교포커스가 “불교계 적폐를 보도하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탄압 받았다고 비판해왔다. 불교닷컴∙불교포커스는 그간 백양사 도박사건, 적광스님 폭행 사태, 마국사 금권선거, 용주사 주지 은처 의혹, 동국대 사태, 봉은사 전 주지인 명진스님 제적 사태 등을 보도한 바 있다.

조계종은 2015년 11월 ‘악성 인터넷 매체에 대한 공동 대응 지침’에서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해종 매체’로 지정하고 취재를 제한해왔다. 관련 공지문 등에는 “국정원과 결탁 의혹이 있는 불교닷컴” “국가정보원과의 정보거래 및 결탁 의혹 등으로 조계종으로부터 해종매체로 지정된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 등의 표현이 사용됐다. 불교신문은 두 매체를 언급할 때 ‘국정원과 결탁한 언론’이라 칭했다.

2018년 11월엔 ‘해종언론 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조직적 대응이 본격화됐다. 조계종은 종무지침을 만들어 유관기관과 각 사찰 주지스님에게 보냈고, 이를 어기면 징계조치하겠다고 알렸다. 두 매체에 대한 취재지원 중단, 출입금지, 광고 금지 및 이미 시행된 광고 삭제, 후원금지 및 중단, 보도자료 배포 금지, 간담회 및 인터뷰 금지, 인터넷 사이트 접속 금지, 사찰 홈페이지상 광고 삭제, 해종언론 공통지침을 홈페이지에 배너∙공지사항으로 게재 등의 내용이다. 실제 두 매체는 계약기간이 남은 광고를 일방적으로 해지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불교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불교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법원은 조계종이 두 매체와 국정원 결탁을 주장하며 제출한 증거는 “객관적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의 불교계 사찰 정황을 증거로 제시했을 뿐, 두 매체가 정보기관과 결탁한 근거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피고들의 의혹 제기는 그 주장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여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비판으로 위법하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로 인한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조계종은 불교닷컴∙불교포커스 발행인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는 소속 기자가 매우 소수일 뿐만 아니라 원고들도 기사를 작성하고 게재하였다는 점”을 언급했다. “피고들이 원고들 개인을 특정하여 직접적으로 위와 같은 표현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위 언론 매체를 특정하는 것만으로도 불특정 다수인들로 하여금 원고들이 국정원과 부당한 거래를 하여 인터넷 기사를 싣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계종이 근거 없이 ‘국정원 프락치설’을 제기했다는 판결은 2년 전에도 있었다. 불교닷컴∙불교포커스가 지난 2017년 6월 조계종 총무원을 상대로 제기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 결과다. 2019년 1월 서울고등법원 제40민사부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조계종은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 기자들과 국가정보원 사이에 정보거래나 결탁이 있다는 의혹만 제기할 뿐 그 객관적 근거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며 “두 매체에 대한 국정원 결탁, 정보거래 결탁, 정보거래 의혹, 악성매체라는 등의 내용을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라”고 했다.

한국불교인언론인협회(불언협)는 “법원의 판결은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에 대한 조계종과 ‘불교신문’의 악의적인 비방과 왜곡조작 행위를 바로잡는 당연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불언협은 20일 성명에서 “지난 5년간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가 겪어온 고통과 모욕의 세월을 생각하면 뒤늦었지만, 한국불교언론인협회는 이번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불언협은 “대한불교조계종과 ‘불교신문’, 그리고 자승 전 총무원장은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해종언론으로 규정을 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 뿐만이 아니라 청정승가와 불교대중들을 모독하고 혼란 상황을 조성하는데 앞장서 온 해종·훼불행위에 대해 참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에 대한 출입금지∙취재금지∙광고금지∙접속금지∙접촉금지 등 전대미문의 반헌법적 언론탄압을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현 조계종 집행부가 전임 자승 총무원장 당시의 과오를 바로잡고, 자승 전 총무원장 등 언론탄압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을 즉각 조사하고 징계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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