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의 소위 “집단자살” 발언으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정부 기조를 비판한 발언인데, 야권 정치인들이 비판 대열에 가세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이 지사는 23일 페이스북에 “‘집단자살사회’에서 대책없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평소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돈을 풀어 경제를 부양(확장재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이 지사가, 이에 소극적인 기획재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한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페이스북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집단자살’은 2017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세계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우려하면서 한 발언이다. 그해 11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아일보 기고(집단자살 사회와 재정건전성)에서 “내년부터 5년간의 출산율은 현 정부의 책임이다. 지금까지 재정 효율이 낮았다면 지원이 적절하고 충분했는지, 또 어떻게 해야 젊은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이들의 입장에서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지사는 하 교수의 4년 전 칼럼을 공유하면서 “전 세계가 확장재정정책에 나서는데 안 그래도 너무 건전해서 문제인 재정건전성 지키겠다고 국가부채 내세우며 소비지원, 가계소득지원 극력 반대하니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제정당’ 표방하면서 경제 살리는 전국민 소득지원 반대하는 가짜 경제정당이나, 기득권 옹호하느라 경제활성화하는 확장재정정책을 가짜 통계 내세우며 반대하는 엉터리 경제지들은 왜 우리 사회가 집단자살 사회가 되어가는지 한번만이라도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갈무리.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갈무리.

야권 인사들은 이 지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24일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 정도면 토론이 아니라 협박”이라 주장했다. 원 지사는 “토론하자면서 기재부에게 반박해보라며 일부러 고른 표현이 '집단자살’”이라며 “그 언어의 상대방은 홍남기 부총리나 정세균 총리만이 아니다. 지휘계통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집단자살 방치'를 반박해보라고 공격한 것”이라 했다.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 지사의 평소 주장을 보면 모든 정책이 ‘돈풀기’”라며 “이 지사가 돈풀기를 위해 경제부총리를 겁박하는 태도는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으면 ‘심약한’ 경제부총리를 겁박할 게 아니라,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행정부의 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따지시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공방이 중계되면서 “집단자살”이라는 표현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도 오르내렸다. 문제는 이 표현이 나온 실제 맥락이나, 라가르드 총재가 말하고자 했던 논점은 삭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서울신문 [씨줄날줄]
▲2017년 10월26일자 서울신문 '씨줄날줄'.

애초 “집단자살” 발언은 성차별적 구조에 놓인 여성들이 결혼∙출산을 기피하는 한국사회 문제를 지적하면서 나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이화여대 학생들과 간담회에서 “한국은 ‘유리천장’ 아닌 ‘시멘트 천장’” “결혼하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거의 울 뻔 했다”며 한 말이다. 간담회는 2017년 9월 진행됐고, 관련 발언은 약 한달 뒤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과 해외특파원의 간담회를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이 국장이 간담회에서 전한 구체적 발언은 “결혼 안 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 성장률과 생산성이 떨어지게 돼 있고 그럼 재정이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바로 ‘집단적 자살현상’이 아니겠느냐. 이게 한국의 문제”였다. 이 국장은 이 말의 취지가 “한국은 재정을 현명하고 유용하게 써서 미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더 적극 참여해 성장률을 올릴 수 있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작 당시에는 관련 발언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다만 서울신문 최광숙 논설위원은 칼럼([씨줄날줄] “한국은 집단자살 사회”)에서 “위정자들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펴야 하는데 표 되는 일에만 열심이다. 저출산 시대를 예측하지 못해 산아제한했던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면서 “라가르드의 문제의식이 왜 우리의 장관들, 정치인들 입에서는 나오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한 일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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