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세 모녀가 다 피해자입니다. 엄마 손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사다가 머리맡에 쐬어 준 엄마는 죄인입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수많은 질병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질병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이제는 28살이 됐습니다. 아이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엄마, 나 봄이 오면 예쁜 신발 신고 엄마와 나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어제 구두가게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신을 구두가 없답니다. 우리 아이는 면역력 이상으로 인해 류마티스 관절염을 겪고, 지금은 사지가 뒤틀렸습니다. 저는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불구자를 만든 죄인입니다.”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두 딸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한 어머니가 이같이 말했다. 사연을 소개하는 내내 울먹이다가 이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613명 사망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하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시민단체와 피해자 등 9명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재판 결과에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라며 규탄했다. 그러면서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공정거래위원회 등 행정부와 입법부, 여야 정당이 모두 직무를 유기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지난 12일 특정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메이트’ 제조·판매업체 전직 대표와 임직원들은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가습기살균제와 관련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사회적참사 진상규명특별법 재개정 △철저한 진상규명 △특조위 진상규명 권한 재보장 △피해자 임상진료기록 전수조사 △CMIT·MIT 유해성에 대한 해외연구 활용 △질병관리청의 역학조사 실시 △세계적 유관분야 학자·의사 초청한 세미나 개최 △피해자가 선정한 의사·의료기관 소견 AI진단 활용 등 총 8가지 ‘특별대책’을 촉구했다.

단체는 “사참위법 개정 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권한이 삭제됐다”며 특조위 권한을 다시 보장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어 “아직도 구제 대상자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아도 그 혜택이 미미한 피해자가 많다는 점과 최근 사법부가 내린 무죄판결을 볼 때 진상규명은 아직도 멀었다”고 비판했다.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특별대책 수립과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이들은 인과관계 입증을 위한 중형동물 대상 추가 실험 계획에도 반대 입장을 냈다. 앞서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21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중형동물을 대상으로 추가 실험을 실시해 인과성을 입증하겠다는 발언에 대해 단체는 “쥐나 중형동물은 인간과 다른 생리기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재판부도 설득할 수 없는 전문가들이 실시하는 실험설계와 과정, 결과 등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었다는 박혜정 피해자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와 아들 모두 고통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1심 판결에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판결은 말도 안 된다”며 “정부와 국회와 새로 발족한 특조위에 진상규명을 권한을 줘서 대충 묻히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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