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판결 내용의 주요 근거를 부정하면서 활동을 계속해나가겠다고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다. 이 부회장의 4세 경영 포기를 실효성 있는 조치로 내세웠는데 아무런 법적 권한과 책임이 없는 비상설기구가 어떻게 이를 보증할 것인지 의문이다. 불법행위에 가담한 자들이 여전히 이사회에 가담하고 있는 점을 들어 삼성이 변할 생각이 없다는 증거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삼성 준법감시위(위원장 김지형·준감위)는 21일 입장을 내어 서울고법의 이재용 확정판결을 두고 “판결 이유 중 위원회의 실효성에 관한 판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명히 다르다”며 “위원회는 출범 이후 척박한 대내외 환경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바람직한 준법경영 문화를 개척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주장했다. 준감위는 “판결의 판단 근거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지 않겠다. 위원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면서도 반박과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범죄인 뇌물죄를 두고 서울고법은 “이재용이 경영권 승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6억8081만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 뇌물로 제공했고, 허위 용역계약 체결 방식으로 범행 은폐, 국회에서 위증까지 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준감위는 “이른바 정경유착을 비롯해서 고질적인 여러 위법행위가 있었다”며 “그 유인은 안에서 촉발된 것도 있었고, 밖으로부터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에 의한 것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위법행위를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에 응한 것일 뿐이라는 이재용과 삼성측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준감위는 삼성 준법이슈의 핵심이 경영권 승계 문제라고 진단했다고 썼다. 이들은 이 치유책을 고민해달라고 주문한 결과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에게 직접 나서 장차 4세 승계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준감위는 “경영권 승계에 관해 과거의 위법 사례와 결별하고 앞으로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를 원천 차단하는 방안으로서 이보다 더 실효성 있는 조치가 무엇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재용의 말 외에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없다. 법과 제도 또는 주식회사의 체계 안에서 강제할 수 없는한 ‘선언’만으로 이미 4세 승계가 단절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김지형(오른쪽)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지난해 1월5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준감위 첫 회의에서 이인용(맨 왼쪽) 사장 등 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형(오른쪽)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지난해 1월5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준감위 첫 회의에서 이인용(맨 왼쪽) 사장 등 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참여연대는 22일 논평을 내어 준감위의 주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준감위의 이러한 입장문은 이러한 재판부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성과를 자찬하는 준감위의 사실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지금과 같은 수박 겉핥기식 활동이 아닌, 삼성물산 불법합병 등과 관련된 문제를 면밀히 조사하고, 삼성의 지배구조를 바꿔나가는 데에까지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준감위는 더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촉구했다.

특히 준감위의 지난해 활동을 두고 참여연대는 모두 13차례의 회의와 워크숍을 진행한 뒤 보도자료를 발표했으나 대부분의 내용이 비공개되어 있어 무엇을 논의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준감위 활동에 대해 대부분 미흡하다는 전문심리위원 평가가 있었다고도 전했다. 이어 “분식회계 등 불법합병과 관련된 삼성바이오로직스, 차명계좌 및 불법합병 당시 고객 개인정보 유용과 관련된 삼성증권의 준감위 가입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동안 준감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와 함께 현재 삼성물산에는 제일모직과의 합병 당시 회사의 손해가 명백한데도 합병에 찬성한 최치훈 대표이사 사장, 이영호 부사장 등이 여전히 이사로 재직중인 점을 들어 “여전히 불법에 가담한 이사들을 이사회에 재직시키고 있는 것이야말로 삼성이 바뀔 생각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삼성은 외부 조직인 준감위에 기대어서 혁신을 이야기하지말고, 상법상 회사의 경영기구인 이사회를 제대로 운영하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9월1일 검찰 고발로 시작된 삼성 불법합병 재판에까지 준감위의 행보가 양형 사유로 오르내리는 일이 되풀이되서는 안된다며 준감위는 어떠한 법적 권한이나 책임도 없는 외부 비상설기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경영 언론보도를 두고 참여연대는 “언어도단”이라며 “회삿돈을 횡령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불법을 저지른 총수는 더이상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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