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디지털 혁명으로 기존 언론의 ‘권력 모델’은 치명타를 입었으며, 이제는 언론이 권력자 행세 대신 ‘겸손·신뢰·실력’을 갖춘 ‘봉사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1월호 기고글에서 “디지털 혁명은 언론의 ‘권력 모델’에 치명타를 가하고 말았다. 이른바 ‘1인 저널리스트’의 시대가 열리면서 언론 권력의 주체가 광범위해졌다. 이제는 권력자로 행세하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감시를 받는 처지로까지 내몰리게 됐다”고 지적하며 “소속 언론사의 규모와 영향력을 앞세워 위계를 세워보려는 시도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게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강 교수는 “언론이 권력 모델에서 봉사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언론에 요구됐던, 정치와 권력 중심의 역할과 사명의 유효기간이 거의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강준만 교수는 오늘날 언론에 ‘품격’이 가능한 목표인지 의구심이 있다며 그 이유로 △한국 신문은 고급지와 대중지가 분리되지 않은 채 둘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복합 모델이며 △디지털 혁명의 속성이 언론에 강요하는 ‘클릭과 트래픽’ 위주의 굴레는 품격에 적대적이고 △디지털 혁명이 심화시킨 ‘필터버블’과 ‘정파성 중독’이 품격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겸손·신뢰·실력’을 중심으로 한 봉사 모델이 궁극적으로 언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정파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의 기레기는 너의 참언론이고, 나의 참언론은 너의 기레기다”라고 전제한 뒤 “내가 언론이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권위는 아래에서 위로 부여되는 것이다. 오보를 비롯해 자신들의 실수를 1면에 큼지막하게 알리면서 사과하는 언론사가 있다면 논조엔 동의하지 않아도 그 언론사의 기사는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는 동시에 독자들이 부여하는 권위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또한 정파성을 드러내는 보도를 하더라도 반론을 염두 해 쓰고, 쟁점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최대한을 제공해주는 총체성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도연 기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도연 기자

강 교수는 “언론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이런 자세와 더불어 광고 수주를 위한 ‘협박식 영업’을 중단하고 최소한의 시장 논리가 작동하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편집국 기자 광고·협찬 영업 활동 금지법’을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던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진짜 기레기 욕은 이 과정에서 많이 나온다는 걸 명심하고, 언론계 차원의 정화 활동을 스스로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무엇보다 “언론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나가기 위한 솔직함을 보여야 한다. 스스로 공적 기관을 자임하는 언론은 기업보다 이상적인 주장을 훨씬 더 많이 외쳐대는 바람에 언행 불일치로 인한 위선과 그에 대한 대중의 혐오에 있어 훨씬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세속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기자들이 겸손하긴 어렵다. 하지만 겸손을 생존을 위한 당위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일견 초라해 보이는 1인 저널리스트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 비로소 레거시 미디어의 살길도 열린다”고도 했다. 

마지막은 실력이다. 강 교수는 “기자들이 출판 시장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한 뒤 “대학이 생존 경쟁과 서열 경쟁에 내몰리며 교수들은 ‘논문 기계’가 돼가고 있다. 그로 인한 지식인의 죽음은 필연”이라며 “언론인이 과거 주로 교수들이 맡았던 ‘공공 지식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출입처 중심의 ‘복제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원천보도’에 집중하며 자신의 취재 분야에 대해선 책으로 펴낼 정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언론 조직을 떠날 시, 폴리널리스트가 되기를 지향하는 언론인보다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독립 프리랜서 저자를 지향하는 언론인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저널리즘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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