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상관없이, 공영방송 또는 공적인 소유구조를 가진 언론의 공공성·공정성을 확보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십니까.” 2017년 8월17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YTN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의 답은 이러했다. 

“지난 정부 동안 공영방송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그런 노력들이 있었고 그게 실제 현실이 되었다. …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언론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 약속드린다. 그러기 위해서 아예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안을 입법을 통해 노력하겠다. 국회에 이미 그런 법안들이 계류되고 있는데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 정부도 힘을 모으겠다.”

“…앞서 약속하셨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계획이나 생각도 궁금합니다.” 2021년 1월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디어오늘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의 답은 없었다. 아예 답변하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이 답하지 않은 유일한 질문이었다. 

언론개혁의 상징과 같았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현 정부 4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선임 구조는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그대로다. 언론계가 대통령의 ‘무응답’을 실수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더욱이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이 180석을 차지하며 사실상 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이 가능해졌으나 대통령의 약속은 더디게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 나선 모습. ⓒ청와대

청와대·국회·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대통령에게 언론개혁은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방역·남북관계·부동산문제 등 현안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 공영방송에 개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언론개혁을 자임했던 정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언론계 인사는 “언론정책은 국민소통수석이 키(KEY)맨일 수밖에 없는데 이 정부 초반 임명된 소통 수석이 이런 역할에 부합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개혁 시기를 놓쳤다는 것. 2019년 초 MBC기자 출신 윤도한 수석이 임명되고 그해 2월 대통령이 투명 중이던 이용마 MBC 기자를 만나는 등 다시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등장하나 싶었지만 한국 사회는 그해 검찰개혁, 한·일 갈등, 조국 사태에 휩쓸렸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변화 이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어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고민이 아닌 선택에 나설 시기이며, 더욱이 언론계 대부분이 환영하는 법안까지 나왔다. 지난해 11월 정필모 민주당 의원이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가칭)로 KBS·방문진·EBS 이사를 선출하고 공영방송 사장을 추천할 수 있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했다.

그런데 법안 논의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부터 진전이 없다. 정필모 의원은 “법안심사 2소위가 열려야 법안 논의를 시작하는데 박성중 소위원장(국민의힘)이 (법안 대표 발의 이후) 아예 회의를 안 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을 탓하기 전에, 민주당 지도부 스스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이슈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민주당은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높은 각종 ‘가짜뉴스 처벌법’을 내놓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같은 이슈에 매몰되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태’는 반복됐다.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이 대전고 후배인 이장석 전 MBC보도국장을 차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내정했다가 과거 김재철 MBC사장 시절 언론탄압의 주역이었다며 언론계 반발을 산 것.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최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에선 차기 이사장으로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 이백만씨가 거론되며 논란을 예고한 상황이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민주당이 이번 방송통신심의위원 추천에서 보인 것처럼 공영방송 이사를 비롯한 미디어 관련 공공기관 임원 추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득권 유지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6대3, 또는 7대4로 여야가 이사 추천권을 나눠 갖는 지금의 정치적 후견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19년 2월17일 이용마 MBC 기자를 만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2019년 2월17일 이용마 MBC 기자를 만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오는 8월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9월은 KBS와 EBS 이사진 교체 시점이다. 개혁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치적 후견주의 고리를 끊고, 시민에 의한 공영방송 이사진 선출로의 변화가 가능할 수 있다. 내년에는 대선국면인 만큼 사실상 올해가 언론개혁을 위한 마지막 시기다. 언론노조는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정부라면 시민들이 요구했던 공영언론사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지금 당장이라도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6월까지 공영방송 임원선임 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공영방송사 임원 임명에 관한 기본 계획’ 수립을 예고했다. 정부 여당은 미디어혁신위원회 출범을 서둘러 관련 의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개혁 의지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은 2019년 8월21일 별세한 이용마 기자를 추모하며 “이 기자의 치열했던 삶과 정신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공영방송을 시민의 품으로!” 이 기자의 유언과 같은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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