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위한 포석’이라는 논란을 산 준법감시제도를 양형 사유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다. 86여억원을 뇌물 공여액으로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에 징역 2년6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 재판이 시작된 지 3년8개월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열린 선고 공판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횡령,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및 위증을 인정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를 산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도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유·무죄 판단은 지난해 8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따랐다. 이에 따라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된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등의 말 대금과 그 외 용역 대금 등 70억5200여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건너간 16억8600만원 용역 대금을 뇌물로 인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 부회장 등이 뇌물 공여에 삼성전자 재산을 유용했단 점에서 횡령죄도 인정됐다. 또 뇌물임에도 정상적 용역 거래 등으로 범죄를 은폐했다며 범죄수익은닉법 위반죄가 인정됐다. 

이 부회장은 이와 관련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정유라 지원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거나 ‘최순실·정유라를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위증죄는 1심부터 파기환송심까지 계속 인정됐다. 

정씨의 승마 관련 뇌물 공여에만 가담한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권 때마다 뇌물·횡령 반복, 안타까워”

파기환송심 관건은 양형이었다. 재판부는 공판 초기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을 참고한다며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양형기준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 측에 범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특검은 미국 양형기준을 적용하려면 기업범죄여야 하고, 범죄 당시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했어야 한다며 반발했다. 시민사회와 학계 일각도 ‘집행유예를 주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결국 “새로운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 제도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 유형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감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컨트롤타워 조직에 대한 준법 감시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2014년 9월20일 인천시 드림파크 승마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한 정유라씨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9월20일 인천시 드림파크 승마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한 정유라씨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재판부는 또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체결한 7개 계열사 외의 회사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에 대한 감시체계가 확립되지 못했다”며 “과거 정치 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한 허위 용역 계약 방식을 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할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형량과 관련해 “다만 이 부회장 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원을 요구해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했고 피해액은 전부 회복됐으며, 상식적으로 대통령의 뇌물 요구는 거절하기 매우 어려운 측면 있다”며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삼성 계열사를 철저히 준법 감시하에 있는 회사로 바꾸고,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가진 회사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등 준법경영의지를 진정성 있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의 형량 경우 “두 피고인은 전체적 범행을 기획하고 실질적 의사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무겁다”면서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부당한 측면이 있어 여러 사정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에겐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범행은 죄질 좋지 않지만 두 피고인이 범행을 기획하지는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실형 선고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양형 취지를 밝히며 “이 사건은 그동안 정치 권력이 바뀔 때마다 삼성 최고경영진들이 가담한 뇌물·횡령죄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이 나라 최고의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기업인 삼성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 범죄에 연루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파면대통령 박근혜씨(왼쪽), 박영수 특별검사(가운데), 최서원씨. 디자인=이우림 기자.
▲파면대통령 박근혜씨(왼쪽), 박영수 특별검사(가운데), 최서원씨. 디자인=이우림 기자.

‘뇌물’ 기소 433억→1심 89억→2심 36억→최종 86억

특검은 2017년 2월 이 부회장이 대통령 측에 총 433억원 규모의 뇌물을 공여했다고 기소했다. 최서원씨 소유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준 출연금 204억원도 뇌물로 봤다. 또 승마 지원과 관련해 코어스포츠와 계약한 약속금액 213억원도 모두 뇌물죄를 적용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번지지 않았으면 모두 지급될 금액이었다는 점에서다. 실제 지급된 금액은 77억9700만원 가량이다. 최씨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지면서 계약은 중단됐다. 

1심 재판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017년 8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에겐 각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박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 전 전무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총 89억원을 뇌물로 봤다. 정유라씨 승마 훈련 지원비 일부인 72억9427만원과 영재센터에 준 16억2800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차량, 말 수송 차량 등의 값을 제외한 80여억원에 횡령을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죄도 유죄로 인정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 측이 승마 지원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 용역 계약으로 뇌물을 줘 대한민국 국민 재산을 위법하게 이동시키거나 은닉했다는 주장했다. 특검은 도피액을 78여억원으로 봤으나 1심 재판부는 37여억원만 도피 금액으로 인정했다.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법정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형량은 2018년 2월5일 2심 선고 때부터 대폭 줄었다. 2심 재판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최 전 실장·장 전 차장·박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황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승마 지원금의 일부인 36억3400여만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제3자 뇌물수수죄가 적용됐던 영재센터 용역 대금 16여억원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정경유착이 아닌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인 대통령의 겁박을 거부하지 못한 뇌물 사건”으로 규정했다. 정씨에게 지원된 고가의 말들도 법적 소유권이 삼성 측에 있다며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9년 8월29일 2심 판결을 일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10월25일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열렸고 지난해 12월30일까지 1년 넘게 진행됐다. 

2017년 2월17일 특검 수사 중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2심 선고 직후 석방됐다. 구속 353일 째다. 이 부회장은 최종 선고 형량인 징역 2년6월에서 353일을 뺀 550여일 동안 수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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