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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MBC ‘그 쇳물 쓰지 마라’가 남긴 것
포항MBC ‘그 쇳물 쓰지 마라’가 남긴 것
[기고] 성역 없는 비판이 지역방송의 존재 이유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셨다. 동틀 무렵 ‘다녀오마’ 일터로 나가셨던 아버지는 그날 돌아오지 못하셨다. 대신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씨가 일하다 다쳐 중환자실에 옮겨졌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짧은 통화였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들대는 다리를 재촉해 달려간 병원 중환자실에는 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새벽에 배웅했던 아버지가 지금 내 앞에 누워 계신 당신이 맞는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눈앞이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갑자기 시커먼 커튼이 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며 생명을 이어가셨다. 하반신 불구로 7년을 병상에 계시다 마지막 해에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암을 얻었고, 깊어가는 가을밤 ‘걷고 싶다’는 말씀을 남기신 채 돌아가셨다. 잊고 있었던 20년도 더 된 일이 요즘 자꾸 떠올랐다.

다사다난했고 역대급 사건이 터져 나온 해에도 연말이면 따뜻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마련이다. 코로나19에 지친 올해야말로 그런 미담이라도 더 들려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현실은 바람과 달랐다. 모든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게 하자는 취지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의 목소리는 거대양당의 벽에 부딪혔다. 산업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곡기를 끊고,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다른 생명을 살리자고 온몸으로 뜨겁게 외쳐도 정치권과 언론의 반응은 냉랭하였다. 결국 노동자의 안전이 아닌 기업을 보호하는 누더기 법만 남았다. 노동자가 사람답게 대접받는 일터를 만들고 싶었던 노동자 김진숙은 35년 전 쫓겨난 일터로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고 또 외쳤으나 여전히 길 위에 선 채 연말연시를 맞았다. 차가운 바람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얼어붙은 이유이다. 새해라는 말도 무색하다.

지난해 12월10일 방영한 포항 MBC의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가 화제였다. 방송이 나가자 포항을 넘어 전국적으로 좋은 콘텐츠라는 칭찬이 돌았다. 대기업인 포스코에서 30년 이상씩 일하다 퇴직한 노동자 4명이 폐암, 루게릭병, 백혈병 등에 걸린 사연을 소개했고, 포스코의 직업병 은폐 정황까지 담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쉽게 다루기 힘든 지자체와 지역언론의 카르텔 문제까지 거론해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방영 다음날 일어났다. 포스코 내 다수 노조인 한국노총 포스코 노동조합이 입장문을 내고 “(포항MBC가) 왜곡과 악마의 편집으로 노동자의 자긍심을 상실시켰고, 포항을 살지 못할 도시로 이간질시켰다”며 △포스코의 포항 지역 투자 원천 차단 △포항에서의 소비 전면 중단 △포스코 직원과 자녀의 주소지를 타 도시로 이전 등을 선언하였다. 설마 노동조합이…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포항 MBC의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산업재해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은 방송물이었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기업의 경영과 부흥보다 절대 가볍지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시대 정신이 담긴 작품이기도 했다. 하루에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수가 5.5명 (2019년 기준)인 현실을 애써 보지 않고 다루지 않았던 언론이나 대충 훑어보고 면피성 기사만 썼던 언론에 비하면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사회적 이슈를 용기 있게 다룬 콘텐츠였다. 하여 시민들은 일부러 방송분을 찾아보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고, 12월21일 전국의 MBC를 통해 한 번 더 방영되었다. 다시 보아도 대기업과 연관된 직업병과 대기오염(공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왜 노동자의 자긍심을 없애는 일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지켜져야 자긍심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 지난해 12월10일 방송된 포항 MBC 특집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 갈무리

때때로 지역방송의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이번 포항MBC의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 관련 논란을 보며 지역방송이 해야 할 일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바로 지역의 경제권력, 정치권력, 행정권력을 제대로 감시하는 일이다. 그들이 엮여 시민을 위협하는 일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야 지역언론의 존재가 빛난다. 만약 포항MBC의 이번 다큐멘터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유명 대기업이자 포항시 대표 향토기업인 포스코가 어떤 잘못을 해도, 지역민이 어떤 피해를 입어도 알 길이 막막하지 않았을까. 방송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렇듯 시민과 언론사를 겁박하는 기업을 누구도 감시하지 않는다는 건 말 그대로 다가올 또 다른 문제를 방치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지역언론은 오늘의 문제를 제대로 발굴하고 조명하여 내일의 문제를 예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포항MBC의 ‘그 쇳물 쓰지 마라’는 특별하였다. 10년 전 용광로에 추락해 숨진 스물아홉 청년을 추모하는 노래를 만들어 ‘당진 용광로 사고 10주기 기억 프로젝트’를 진행한 가수 하림 씨와 참여한 수많은 시민에 대한 오마주이다. 오랜 시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결국 기업이란 단어가 빠졌지만) 제정 투쟁을 벌여온 시민사회와 유족들, 오늘도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노동자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겐 20년 전 가장으로 성실하게 일하시다 하반신을 잃어버린, 그리하여 삶을 잃어버린 내 아버지께 그날의 사고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진심으로 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고맙다. 아울러 포항MBC의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성역 없는 비판,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되는 방송, 사회적 이슈를 지역과 연결해 조명하는 의미 있는 실천으로 지역언론의 가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작지 않은 울림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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