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지방방송에서 얘기한 걸 가지고…”

포항 MBC가 월성원전 부지내 삼중수소(방사성물질) 과다검출 사실을 단독 보도하며 격렬한 논란이 일자 한 야당 관계자가 방송에 출연해서 던진 말이다.

그는 원전 뿐 아니라 지역방송에 대해서도 무지함을 드러냈다. 지방방송이라서 엉뚱한 말을 하는게 아니라 지방방송이라서 원전의혹을 다룰 수 있던 거다. 서울의 중앙 언론들에게 원전은 ‘정쟁의 도구’지만 지역 언론에게 원전은 주민 건강과 생존이 걸린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에게 원전 의혹은 금기사항이다. 진보언론 역시 친원자력 전문가들의 거친 반발이 불보듯 뻔하기에 신중한 사안이다. 그러나 방송 권역 내에 12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해있는 포항 MBC의 입장에서 이 사안은 시청자인 지역민의 생존이 달린 엄중한 문제로, 사실여부가 확인된 마당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쓸 게 있어도 안 쓰는 지역방송이 문제지 쓸 것을 제 때 쓰고 더 취재해 계속 쓰는 포항 MBC의 모습은 본연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지역방송의 본모습이다.

▲ 포항MBC가 지난 1월7일 뉴스데스크 지역방송에서 내보낸 월성 원전 삼중수소 검출 보도. 사진=포항MBC 영상 갈무리
▲ 포항MBC가 지난 1월7일 뉴스데스크 지역방송에서 내보낸 월성 원전 삼중수소 검출 보도. 사진=포항MBC 영상 갈무리

사실 지역언론의 입장에서 써야할 것을 제 때 써서 내보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알면서도 못쓰는 경우도 많다. 필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2013년 1월의 일이다.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이 유출돼 직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터졌다. 불산은 불화수소산의 줄임말로 뼈를 녹이고 폐를 파괴할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그런 불산이 희석액 상태라지만 10리터 가량 흘러나왔다. 일하는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16시간 동안 경찰신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주변 주민들은 겁에 질렸다. 냄새 때문에 창문 열기도 겁난다고 했고 물마시기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반도체 공장이 실은 거대한 화학공장임을 알게된 주민들은 당국의 조사를 기다렸다. 삼성측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거다. 경기도 의회 차원에서 조사단이 공장에 들어갔다. 우리 방송 취재진이 동행취재했다. 삼성측 설명 뿐 아니라 환경단체와 외부전문가, 주민들의 인터뷰를 고르게 했다. 중앙 언론에게 ‘삼성’은 정파성이었지만 우리에게 그 사건은 ‘주민’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다. 방송사 핵심간부가 피디인 나를 건너뛴채 취재 리포터에게 직접 전화걸어 삼성 내용을 빼라고 지시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포항 MBC의 원전보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방송이 됐다는 자체만으로 경영진도 지역언론의 소명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쓰는 입장에서 원전 의혹은 선뜻 쓰고 싶은 기사가 아닐 것이다. 삼중수소라는 게 도대체 뭔지 우리말로 된 해설을 읽어봐도 이해하기 힘든 판에 한수원측 반론과 이에 대한 환경단체의 재반박, 또 다른 전문가의 더 어려운 외계어(전문용어들)를 다 듣고 맥락을 읽어 핵심을 짚고, 이를 다시 중학교 3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쓴다는 작업의 무게 자체가, 만일 언론인이 아닌 종업원이었다면 수당 주고 사람 붙여준대도 손사레 칠 만한 일이다. 그런 일을 인력도 빠듯한 지역방송에서 1보, 2보, 3보 꿋꿋이 해나가고 있다. 지역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바람이 있다면 쫄지 않았으면 한다. 온갖 전문가들이 다 등장해 폄훼하고 조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줄기세포 사건 취재하며 느낀 바, 현실의 논란을 죄다 설명하는 만물박사는 존재하지 않고, 정확히 짚는 전문가도 드물며, 그나마 입을 닫는 경우도 많다. 과학계 이해관계는 정치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죽지 말고 뚜벅뚜벅 갔으면 한다. 지역민이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묻고, 국내에서 답을 못찾으면 해외 전문가에게 답을 찾고 조사하면 하는대로 결과 나오면 나오는대로 보도하는 과정 자체가 범접할 수 없는 전문성이 될 것이다. 그것이 중앙매체가 가질 수 없는 지역매체만의 자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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