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 아동학대 사건 피해 아동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공이 컸다. ‘그알’이 피해 아동의 신상과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면서 ‘묻힌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를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언론이 후속 보도를 했고, 법 개정을 포함한 사회적 논의가 한창이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을 들여다보면 언론 보도는 여러 ‘과제’를 남겼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를 만났다. 그는 사건의 이름을 규정하는 것부터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보도했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패턴이 굳어지면 유사 사건에서 또 이와 같은 이름 짓기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반적인 보도 내용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제도적 문제를 조명하는 유의미한 기사도 있었지만, ‘잔혹한 행위’와 ‘악마같은 가해자’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많았다. 고우현 매니저는 “잔혹한 사건만 학대가 아닌데 이 같은 보도로 사람들이 아동학대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게 될까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아동인권 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미디어’와 연관된 문제에 주목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TV 콘텐츠 속 아동학대 문제 공론화, 보람튜브 법적 대응 및 유튜브 아동권리 보호 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공간의 아동 프라이버시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고우현 매니저는 2011년 세이브더칠드런 활동을 시작했다. 방송 속 체벌 문제를 다룬 ‘매의 눈으로 제보해주세요’, 유튜브 아동권익보호 캠페인, 아동청소년과 미디어 포럼 등에 참여했다. 그는 “사회를 비추는 미디어는 우리 사회 아동 인권과 불가분 관계라고 생각해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며 “디지털미디어는 아이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어, 아이들의 삶과 떼놓고 생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난 고우현 매니저.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난 고우현 매니저.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 이번 사건 관련 언론 보도를 어떻게 봤나.
“‘그알’ 방영 후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도량은 많아졌는데, 근본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기사는 많지 않았다.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법안도 그렇고, 기사도 그렇고 ‘화제가 될 때 빨리 내야 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느낌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논의한다기보다는 한쪽의 입장이 나올 때마다 이를 단편적으로 내거나, 세세한 학대 정황이 발견될 때마다 ‘단독’을 붙인 기사가 많았다.”

- 학대 내용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많았다.
“모든 언론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학대를 당했고 학대 행위자는 누구였는지에 초점을 맞춰 자극적인 면을 소비하게 하는 기사가 많았다. UN 아동권리협약에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있다. 대상이 아동일 경우 아동에게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고려하라는 원칙이다. 사건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 험악했는지 세세하게 묘사하는 게 피해 아동의 입장에선 최선이었을까. 우리 사회가 아동보호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이었을까.”

- 언론은 피해자의 이름이 나온 ‘정인이 사건’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감정이입이 되기에 신상을 공개했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최선의 이익’ 관점에서 보면 우려스럽다. 아동단체, 아동보호 전문가들은 되도록 피해자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2차 피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동이 사망하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 아동이 자신의 이름이 이 사건에 언급하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조두순 사건’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런 반성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간 쌓아온 원칙이 깨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도했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패턴이 굳어지면 유사 사건에서 또 이와 같은 이름 짓기가 나올 수 있다.”

- 가해자와 가해 행위에 초점을 맞춘 보도는 어떤 점이 문제일까.
“학대 행위자가 악마화됐을 때 사람들이 아동학대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걱정이 있다. 적지 않은 아동학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체벌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실수했다고 한 대 때렸는데 ‘말을 안 듣네’ 싶어 두 대 때리고, 그러면서 폭력이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아이는 얼마든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체벌도 근절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체벌은 훈육이고, 언론에 비쳐지는 잔혹한 사건만 학대가 아니다.”

▲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안모씨가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첫 공판이 끝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안모씨가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첫 공판이 끝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생산적인 논의를 위한 차원에서 그간 아동학대 관련 보도 가운데서 인상적인 심층 취재 기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
“지난해 KBS의 ‘아동학대 7년의 기록’ 기획이 인상 깊었다. 한겨레는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연재를 통해 아동학대 문제를 깊게 다뤘다. 시사IN은 스웨덴 등에 직접 방문해 다른 나라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한국에 도입했을 때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다뤘다. 이런 기사들 덕에 우리도 많이 배우고 있다.”

- 반면 문제가 있는 보도는 무엇이 있었나.
“지역에서 한 아이가 가정에서 탈출한 사건을 다루면서 아이가 거주했던 건물을 세세하게 찍은 기사가 있었다. 이러면 지역 사회에서 피해자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내복만 입은 채 집 밖에서 발견된 아동 사건의 경우 언론이 신고자 이름을 기사에 띄우더라. 아동학대 신고는 보복의 위험이 있기에 신고자 이름을 보호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은 피해 아동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아선 안 된다는 것과 함께 신고자 신변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 언론 보도로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 조명됐고, 해당 경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미흡한 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고민이 된다. 아동학대는 피해 아동이 어른들처럼 진술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동학대 전담 경찰은 아동 발달이나 심리를 이해하는 전문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피직이라 신입이 오거나 경력 쌓기 전에 1~2년 하다 옮기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0월 지자체에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했는데 벌써 기피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아동과 관련된 일들이 좋게 평가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 그들이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전문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지를 언론이 좀 더 다뤄야 한다.”

- 형량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많이 나왔고, 언론에서도 ‘처벌 강화’ 등 선명한 대안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당한 처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동학대 문제가 법정형이 낮은 상황이 아니다. 강화됐을 때 현실적으로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 판사가 1년 형량 선고할 때와 5년 선고할 때 당사자가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달라진다. 더구나 가정 내의 학대 사건은 입증이 쉽지 않다.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호자를 지원하고, 양육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 양육기능을 회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아동이 부모와 분리됐을 때 마냥 행복하지 않다. 아이들 삶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자책하거나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더라도 분리는 그 자체로 충격이 된다. 그래서 원 가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 생긴 것이다. 어린 아이일수록 부모와 분리되려 하기 보다는 폭력 없이 사랑 받고 싶어한다. 처벌도 처벌이지만, 아동이 행복하게 가정에서 살아가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몫이다.”

▲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난 고우현 매니저.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난 고우현 매니저. 사진=문현호 대학생 기자.

-이번 사건 관련 세이브더칠드런의 입장문을 보면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얼마 전만 해도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동반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저 집’에 속한 아들, 딸로 보기 전에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봐야 한다. 인식 개선을 위한 스웨덴의 노력을 참고할 수 있다. 스웨덴은 아동 체벌 금지법 개정 이후 2년 만에 국민 90% 이상이 법 개정 사실을 알게 됐다. 정부에서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에 브로슈어를 보내고 안내하는 책자를 4개국어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팩에도 관련 내용을 담았다.”

- 부모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처음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양육을 해야 할지 모르면 화가 날 수 있고, 내가 키워진 방식으로 대응해 폭력적으로 나갈 수도 있다. 아동의 발달 단계와, 아이가 가진 기질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도 교육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은 부모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공적인 체계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입학 전 예비소집, 접종 등 부모를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각종 정보를 전달했으면 한다.”

-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편견이 고착화되곤 한다. 
“2017년 미디어 속 아동권리 침해 소지가 있는 내용을 제보하면 방송사에 의견을 전달하는 활동을 했다. 한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체벌도 교육의 한 방법인 거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사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해도 방송사에서 여과 없이 자막까지 달아 내보낸 점이 문제였다. 당시 항의를 계기로 관련 방송에 주목하게 됐다. 육아예능이 많아지면서 우려되는 상황이 있어 심의 신청을 하기도 했다. (어린 자녀 앞에서 아빠가 복싱 경기를 하며 맞는 모습을 보여준 ‘슈퍼맨이 돌아왔다’ 심의). 정치인의 경우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달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쓴다. 폭력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프레임인데, 우리 사회가 아동 권리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 세이브더칠드런이 심의 요청을 해 행정지도를 받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
▲ 세이브더칠드런이 심의 요청을 해 행정지도를 받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

- 뉴미디어 환경에서 아동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보람튜브에 법적 대응을 하고, 유튜브 아동권리 보호 캠페인을 통해 유튜버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유튜브에서 아동학대 소지가 있는 콘텐츠가 제작되고, 소비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점점 더 어린 아동들이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고, 아동의 삶에서 디지털 미디어가 없는 걸 상상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캠페인을 통해 아동권리 침해요소를 가이드라인에 담아서 이런 점들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가이드라인은 △자유롭게 생각을 말할 수 있게 존중해주세요 △‘영상을 잘 뽑는 것’보다 안전이 우선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주세요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주세요 △아이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초상권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캠페인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개인방송 출연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지침을 발표했다.

▲ 세이브더칠드런의 유튜브 아동권리 보호 켐페인 웹툰 버전.
▲ 세이브더칠드런의 유튜브 아동권리 보호 캠페인 웹툰 버전.

- 가이드라인에는 아동의 프라이버시도 언급돼 있다. 우리 사회는 SNS에 자녀 사진을 공유하는 등 아동의 개인정보 노출 문제에 무디다.
“보호자들이 아동의 사진이나 정보를 아무런 경각심 없이 온라인에 올리고 있다. 그러면 아동의 개인정보 노출은 물론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보통은 타인의 사진을 올리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볼 텐데, 아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아동을 온전한 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식에 맞닿아있는 거 같다. 이 문제와 관련한 캠페인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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