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과 장애인 시설, 구치소 등 집단 거주 시설 발 집단감염이 계속되자 정부가 요양병원에 한해 ‘코호트 격리’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정부가 사용하는 코호트 격리 정의가 그 자체로 국제 기준에 위배해 의학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의료계와 장애계는 정부가 요양병원뿐 아니라 모든 집단 시설에서 현행 코호트 격리를 거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3일 ‘요양병원 긴급의료대응계획’을 발표하고 요양병원의 경우 기존의 코호트 격리 체계를 개선해 요양병원에서 대규모로 확진자가 나올 경우 비접촉자를 다른 요양병원으로 신속히 전원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그동안 확진 환자와 비확진 환자가 해당 병원에서 동일하게 격리되면서 접촉자 또는 비접촉 환자들에게 코로나19가 전파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한 데 묶어 격리하는 것을 코호트 격리라 부른다. 보건복지부는 웹사이트에서 “코호트 격리는 동일한 병원체에 노출되거나 감염을 가진 환자군(코호트)이 함께 배치되는 병실, 병동의 개념이며, 감염원의 역학 및 전파 방식에 따라 임상 진단, 미생물학적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설정한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이 정의를 근거로 구치소나 요양병원,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집단 거주 시설에 대해 건물을 기준으로 출입을 금지했다. 반면 시설 내 확진자와 비확진자, 감염 의심자, 접촉자를 분리하기 위한 지침은 따로 없었다.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장애여성공감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15일 서울 송파구 신아원 앞에서 서울시의 재입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주최측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장애여성공감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15일 서울 송파구 신아원 앞에서 서울시의 재입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주최측

그러나 정부가 운용해온 ‘코호트 격리’ 규정은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 등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웹사이트에 밝히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의 정의’를 보면 ‘코호트격리’란 “1인실이 부족할 경우 여러 확진자들을 함께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CDC 정의는 또 “확진자 코호트는 허용하지만 의심환자 코호트는 전염 위험이 높아 권장하지 않는다”, “시설이 확진자와 접촉자, 비접촉 비확진자를 함께 코호트해선 안된다”고도 명시했다.

정부가 확진자 발생 시설 내 전원을 ‘동일집단’으로 보고 한 데 격리해온 방침이 의학 근거가 없는 자의적 조치란 얘기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웹사이트에 밝히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의 정의’를 보면 ‘코호트격리’란 “1인실이 부족할 경우 여러 확진자들을 함께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CDC 웹사이트 캡쳐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웹사이트에 밝히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의 정의’를 보면 ‘코호트격리’란 “1인실이 부족할 경우 여러 확진자들을 함께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CDC 웹사이트 캡쳐

이 같은 코호트 격리 결과 시설 발 확진자가 폭증했다. 지난 12월 한달간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 14곳에서 996명이 감염되고 99명이 숨졌다. 치명률은 10%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사망자가 급증하자 요양병원 사망자는 병상 대기 중 사망자 통계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 거주 시설인 서울 송파구 신아원에서도 처음 45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시설을 코호트 격리 조치했다. 확진자는 76명까지 급증했다. 서울시는 장애계 반발에 거주인들을 분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14일 재입소를 시작했다. 동부구치소에서도 정부가 확진자와 접촉자, 비접촉 비확진자를 분리하지 않아 현재까지 1200여명이 확진됐다. 경기 안산의 장애인 거주시설 안산평화의집에서도 12일 기준 입소자와 종사자 총 26명이 확진됐고 현재 음성 판정을 받은 거주인들은 코호트 격리됐다.

한국장애포럼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4일 UN 장애인권리·건강권·주거권특별보고관 등에 각각 긴급 진정서를 발송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 탈시설을 촉구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신아원을 비롯한 장애인 거주 시설의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며 17일째 농성 중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신아원을 비롯한 장애인거주시설의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며 17일째 농성 중이다. 사진=주최측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신아원을 비롯한 장애인거주시설의 ‘긴급 탈시설’을 촉구하며 17일째 농성 중이다. 사진=주최측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13일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가 시행한 코호트 격리는 아무 근거 없는 비의학적 행위이고 국제적 기준을 정면으로 어겼다. 작금의 사태는 병상 부족으로 인해 확진자를 전원하지 못한 것을 ‘코호트 격리’라는 말로 은폐했을 뿐”이라며 “동일집단격리 원칙에 어긋나므로 모든 시설에서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는 즉시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단체는 “집단 수용 시설에 대한 긴급 탈시설 조치와 제대로 된 감염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 장애인들에게는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격리시설로 몰아 넣는 재입소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발표한 요양병원 긴급의료 대응계획도 공공병상을 늘리지 않고는 지킬 수 없다며 “공공의료를 강화해 제대로 된 분산 계획을 현실화하고, 급한 상황은 적극적인 민간병원 병상과 인력 동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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