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고용노동부를 출입했던 A기자는 대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서로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던 중 대변인이 “○○ 지역 △△ 고등학교 나오셨더라고요”라고 가볍게 말했다.

딱딱한 분위기를 깨려고 한 말이었지만 A기자는 사생활이 노출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로 등록할 때 고향, 출신 고교·대학 등을 등록부에 적어낸 기억이 났다. 당시 A기자는 “출신학교가 같거나 소위 ‘상위권 학교’ 출신이었다면 더 친밀감이 작용했을까”라고 생각했다.

▲법조 출입기자 가입시 제출해야 하는 양식. 원본 파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법조 출입기자 가입시 제출해야 하는 양식. 원본 파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기자단 중심 출입처 문화의 구태의연한 관행으로 ‘출입기자 등록부’가 꼽힌다. 출입기자 등록부는 정부부처나 검찰, 법원 등 공공기관에 취재 편의를 제공받는 출입기자로 등록할 때 제출하는 문서인데 고향부터 학력, 업무 이력 등 기자의 사적 정보를 수집하는 문제가 있다.

서울 법조 출입기자들은 출입을 등록할 때 ‘출입기자 프로필’을 작성해야 한다. 출입기자 프로필 서류를 보면 출신지역, 학력(고등학교·대학교), 경력(언론사 최초 입사년월, 현재 언론사 입사일, 법조전입 이전 근무부서), 자가승용차량 출입 등의 정보를 요구한다.

이 프로필은 기자단이 보유하는 것이지만 대검찰청, 법무부 등에도 송부한다. 기관 상시 출입증 발급을 신청할 때 같이 제출한다. 출입기자 프로필 문서에는 “위 개인정보의 기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다만 기재를 거부하는 경우 기자단 공지 내용 등을 전달받지 못한다”고 써있다. 사실상 선택권은 없다.

▲ 기자단에 가입한 출입기자가 부처에 제출하는 등록부. 왼쪽이 국토교통부 출입기자 등록부이고 오른쪽이 보건복지부 출입기자 등록부다.
▲ 기자단에 가입한 출입기자가 부처에 제출하는 등록부. 왼쪽이 국토교통부 출입기자 등록부이고 오른쪽이 보건복지부 출입기자 등록부다.

세종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들은 가족관계까지 쓴다. 현재 주소, 전입일, 학력, 경력 등 사적 정보도 작성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출입기자들에게 자택주소, 최종 출신학교, 언론사 입사년도 등의 정보를 요구한다. 여성가족부 출입기자 등록부에도 출신학교, 언론사 입사년도, 출입일자, 전 출입처, 현 타기관 출입처, 주요경력 등이 있다.

문제는 출입기자들의 고향과 학력, 가족관계 등이 공공기관에 필요 없는 정보라는 점이다. 종합편성채널의 B기자는 “출입기자랑 뭔가 아쉬운 일, 광고영업 등으로 엮일 출입처에서나 사적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그런 문제가 없는 출입처에선 이런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 출입기자가 부처에 제출하는 등록부. 전 출입처, 현재 다른 기관 출입처 등도 기재 항목에 포함됐다.
▲여성가족부 출입기자가 부처에 제출하는 등록부. 전 출입처, 현재 다른 기관 출입처 등도 기재 항목에 포함됐다.

정보 기입 요구가 불편해 공란으로 뒀다가 다시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례도 있다. 종합일간지의 서울시청 출입 C기자는 “학력, 고향 등 정보를 아주 자세히 적게 한다. 이 부분이 불편해 쓰지 않고 냈다가 기입해달라는 연락을 다시 받았다”고 밝힌 뒤 “기자들과 모임 때 나오는 간부들이 자신들과 같은 고향인 사람, 학교 나온 사람을 미리 다 파악하고 왔더라. 불편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기자는 “경찰 기자 시절에는 해당 라인 기자들이 기입을 거부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세대가 달라진 시대의 한 양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상당수는 공공기관 요구대로 정보를 적어 제출한다. 서울 법조를 출입해본 지상파의 D기자는 “어쨌든 이 기관을 출입하려는 사람이 신청서를 적는 건데 항의할 수 있나. 그러니 암묵적으로 관행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위법 소지는 없을까. 개인정보는 수집 목적에 비춰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이용하도록 권고된다. 개인정보를 제3자에 제공할 때도 꼭 필요한 범위 내여야 하며, 제3자 제공 동의를 받을 땐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자, 제공받는 자의 이용 목적, 제공하는 개인정보 항목 등 중요 사항은 굵고 큰 글자 등으로 눈에 띄게 표시해야 한다.

서울 법조 기자단의 경우 기자단이 등록부를 수집·이용·보유한다. 이를 검찰이나 법무부, 법원이라는 제3자에 제공하는 주체도 기자단이다. 그런데 사적 결사체인 기자단의 법적 성격이 불명확해 법리적으로 기자단을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 주체로 보기 힘든 면도 있다. 등록부를 제공받는 공공기관은 이와 관련해 개인정보 수집·동의를 기자 개인으로부터 명시적으로 받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종합일간지의 정부부처 출입 E기자는 “솔직히 말하면 이런 관행이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불편하다기보단 아직도 학연·지연 같은 걸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라면서도 “특별히 필요해서 얻은 정보가 아니라 단순히 친목 도모 차원의 정보 수집이라면 없애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대변인은 14일 미디어오늘에 “작성해주면 받고 아니면 안 받는 거로 안다. 앞으로는 기입 여부는 자유의사에 맡기도록 하겠다. 서로 좋자고 시작한 것이지만, (가입서 양식을 바꿀 것인지는) 국토교통부 기자단과 한번 논의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대검찰청 대변인은 “안 쓰시는 분들은 안 쓴다. 법조 기자 몇 분에게 물어봤는데, 다른 데서도 이 정도는 다 쓴다고 했다. 실제로는 이와 같은 정보를 잘 활용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언짢아하는 분들이 있다면 법조 기자단과 이야기해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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