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사내에 밝힌 ‘직무 재설계안’이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KBS 양대 노조 모두 반발하고 있다. 

KBS는 지난 11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과반 노조) 집행부를 대상으로 사내 혁신추진부가 만든 직무 재설계안을 설명했다. 직무 재설계안에는 현재 KBS 내 4550개에 이르는 직무 가운데 2025년까지 950개를 줄이고, 15개의 국과 34개의 부서가 감축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직무 재설계안을 요약하면 ‘기자는 데일리 보도, PD는 시사 제작물’에 집중하자는 방향이다. 기자는 데일리 보도에 집중하고, PD는 시사 교양물에 집중하자는 취지에, 현재 이런 직무 중 중복되는 프로그램이나 제작국은 폐지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자가 만드는 시사 제작물인 ‘시사기획 창’과 PD가 만드는 데일리 시사토크쇼 ‘더 라이브’가 폐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KBS 내부에서는 직무 재설계안이 공영방송 의무나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은 편의주의 아이디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발표된 직무 재설계안은 초고 단계로, 의견 수렴 뒤 확정될 전망이다. KBS 관계자는 “초안을 마련해 현재 사내 의견 수렴 중”이라며 “추진 시기에 대해서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제시한 의견에 따라 (직무 재설계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KBS 시사기획 창.
▲KBS 시사기획 창.

설명회 직후 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을 통해 “직무 설계안이 아니라 엉성한 인력 감축안”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번 직무 설계안이 철학 없는 ‘뺄셈 혁신안’이라고 혹평했고, 줄어든 인원을 외주나 퇴직자 재고용으로 때우겠다는 태도 역시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소수노조인 KBS노동조합도 11일 노보를 통해 “기자들은 평생 1분20초 리포트만 하다가 퇴사하라는 것이냐”며 “이번 직무개편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보도본부 시사제작국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시사기획 창’을 없앤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노동조합 관계자는 통화에서 “사실상 기자들은 리포트만 하라는 것이고, PD들은 의제 설정 등 굵직한 것을 하겠다는 발상인데 시대적 추세에 맞지 않는 방향”이라며 “특히 ‘시사기획 창’은 15년 전 기자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시초로, 역사적인 프로그램이다. 이것을 없애려면 다른 프로그램과의 비교를 통한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KBS 관계자는 “직무 재설계안의 방향성이 맞는지 동의하기 어렵다”며 “미디어 환경 변화나 공영방송 책무를 중심으로 직무가 재설계되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고 효과성이 떨어지는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직무 재설계안 발표 후 KBS 내에 ‘시사기획 창’과 ‘더 라이브’가 폐지된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KBS 사측은 13일 미디어오늘에 “시사 프로그램 전반을 종합적 검토 중이며 특정 프로그램을 거명한 바는 없다”고 했다. 

KBS 보도본부 간부급 인사는 “직무 재설계안은 작년 7월 ‘경영혁신안’에서 ‘1000명 감축’의 후속 조치로, 인력을 새로 배치하는 안”이라며 “직무 재설계안 핵심은 기자와 PD 직무에 중복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제작하는 탐사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과 PD가 제작하는 ‘시사직격’가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시사 토크 프로그램 ‘사사건건’과 ‘더 라이브’도 성격이 대동소이하다는 문제의식이 간부들 사이에 공유되는 정서로 풀이된다. 

이 간부급 인사는 “다만 기자는 데일리 보도에, PD는 시사제작물에 집중하자는 큰 방향에 동의하는 이가 많을지 의문”이라며 “프로그램 폐지 등 조정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한 분석없이 급박하게 결정되는 것은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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