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TV 켜줘.” “○○야, EBS Kids 채널 틀어줘.” “○○야, 유튜브 틀어줘.” “○○야, 리모컨 찾아줘.” 지난해 10월 만 5세를 넘긴 지원이(가명)의 하루는 IPTV에 딸린 AI와 함께 시작한다. 어린이만화 전문 PP들이 묶음 편성되어있는 덕분에 지원이의 ‘만화 채널 순회’는 순조롭다. 코로나19로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면서 TV와 함께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그만 보라는 어른의 말에 지원이는 ‘북클럽’ 태블릿PC를 켠다. 여기서 기초 한글이나 숫자 따위를 공부하거나 동화도 읽는다. 가끔 운 좋게 부모의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유튜브에서 ‘시크릿쥬쥬’를 보거나 유재석 아저씨보다 유명한 ‘헤이지니’ 유튜브 채널을 챙겨본다. 주말엔 이불속에 숨으려는 부모덕에 ‘포켓몬스터’나 ‘신비 아파트’ 극장판을 볼 기회도 생긴다. 

만 3세~9세 어린이가 하루 평균 미디어 이용으로 약 4시간45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TV에 2시간10분, 스마트폰에 1시간21분, 태블릿PC에 48분, 컴퓨터(PC·노트북)에는 26분을 쓴다고 한다. 만 3~4세 어린이도 하루 평균 약 4시간8분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4세 어린이 하루 1시간’이라는 세계보건기구 WHO 권고기준의 4배 이상에 해당한다. 만 7~9세 어린이의 미디어 이용시간은 약 5시간36분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1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0 어린이 미디어 이용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분류되는 2010년대 이후 출생 어린이의 10명 중 8명(78.7%)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 일주일 어린이가 이용한 유튜브 콘텐츠(복수 응답)는 만화가 57.6%로 가장 높았고, 장난감 등 상품 소개(39.9%), 게임(36%) 순이었다. 인공지능(AI) 스피커 이용률도 23.4%로 다른 세대에 비해 높았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어린이. ⓒ게티이미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어린이. ⓒ게티이미지.

보호자가 어린이에게 미디어(TV, 스마트폰)를 허용하는 주요 이유는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 및 기분전환(TV 52%, 스마트폰 44.7%) △보호자가 다른 일을 하거나 쉬는 동안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TV 46.4%, 스마트폰 37%)였다. 이와 관련 언론재단 보고서는 “자녀의 미디어 이용에 보호자의 독박 육아, 직장인의 과중 업무 등 사회 구조적 문제가 결부돼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예컨대 노동시간이 많은 노동자의 아이들일수록 미디어 이용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앞서 언론재단이 진행한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전 연령대에서 고정형TV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이용한 미디어 시간은 약 4시간31분으로 나타나 어린이의 미디어 이용시간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조사 방법이 달라 단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미디어 이용시간이 어린이의 미디어 이용시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보호자의 10명 중 7명은 어린이들이 미디어를 통한 부적절한 언어를 배울까 걱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뒤를 이어 △무분별한 광고 노출 △콘텐츠의 폭력성 △콘텐츠의 선정성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주입될까 걱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4.2%,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 이용 지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80.6%이 높게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3세~9세 어린이의 보호자 2161명을 대상으로 언론재단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이뤄졌으며 지난해 8월14일부터 10월13일까지 컴퓨터를 활용한 인터뷰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1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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