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에서 관리가 안 된다 해서…. 이제 판결문은 ‘선고 2주 후’ 드릴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대법원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A기자는 대법원 홍보심의관 말을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선고 당일마다 대법원을 들러 필요한 판결문을 확인 후 신청해 받았는데 이제 선고 2주 후에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황당한 제지는 몇 차례 더 있었다. 처음엔 ‘기자단 엠바고를 지키지 않으면 판결문을 못 준다’는 통보였다. 당시 A기자가 보도한 대법원 판결 기사가 기자단이 정한 엠바고를 지키지 않았고 이에 공보관이 기자단 항의를 대신 전했다. 반대하면 판결문을 못 받을 게 뻔해 엠바고 준수를 약속하고 보도 시점을 맞춰왔다. 그러다 공보관이 ‘기자단 요구’라며 판결문 제공 시점조차 2주 뒤로 미뤘다. 기자단은 당일 원하는 판결문을 모두 제공받고 있었다.

A기자 눈에 이 관계는 상식 밖이었다. 법원의 판결은 국가 안보나 정책 집행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정보다. 법조를 독자적으로 취재하는 A기자는 기자단 엠바고를 지킬 의무가 없다. 엠바고는 일부 법조 취재 기자가 정한 규칙이고 대법원 판결은 다른 분야 기자들도 취재해 보도한다. 그런데 공보담당 공무원이 특정 기자들의 사칙을 다른 기자에게 따르라고 요구했다. 또 기자단 소속 여부로 기자들의 정보 접근권을 차별했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 뒤로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 뒤로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대법원 엠바고’라 불리는 이 관행은 공공기관의 기자단 중심주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언론이 공공 정보에 접근할 평등권을 침해하고 알 권리 증진을 저해하는 문제다. 청와대, 국회, 모든 정부 부처를 포함해 공항공사 같은 공기업부터 사법부까지, 국내 공공기관 대부분은 내부에 기자단을 두고 기자단과 ‘배타적 일대일 공보 관계’를 맺는다. 광역·기초 단위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평등 공보 아닌 기자단 중심주의

공공기관의 언론 대응은 기자단 중심으로 이원화됐다. 기자단에 배타적으로 취재 편의를 제공하고 기자단 아닌 매체(이하 비기자단)는 일반 시민과 같은 접근권을 갖는다. 이를테면 기자단에는 기자실과 기관 출입증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장·차관과 부처의 주요 일정, 대부분의 중요 보도자료도 미리 받는다.

기관 관계자와의 접촉 기회도 다르다. 비기자단은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이 시작되면 퇴실 요청을 받고 기관과 언론 간 간담회 등 공식 행사나 면담 자리에 참여하기 어렵다. 기자단은 각 기관의 실·국·과장 등 고위공무원 연락처도 제공받는다.

기자단이 ‘언론 일반’을 포괄하지 못하면서 문제는 심화한다. 기자단 운영 방식은 ‘배제가 원칙, 개방이 예외’다. 먼저 ‘6개월간 출입’, ‘매일 기사 3건씩 작성’ 등의 문턱을 둔다. 취재 영역이 광범위한 기자와 소규모 언론사에 불리하고 특정 기관만 출입하는 기자나 규모가 큰 언론사에 유리하다.

기준을 통과해도 정성 평가인 기자들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 보통 2분의 1이나 3분의 2 이상의 재적과 동의가 기준이다. 동의율은 기관별로 천차만별이다. TV조선은 2011년부터 서울지방경찰청 기자단 가입을 시도해 2019년 신청 15번째 만에 가입에 성공했다. 왜 8년이나 걸려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관 기자단 가입 시도 매체 다수가 1~3번씩 가입에 실패한 후 성공한다.

서울 법조 기자단의 B기자는 “기자단은 사전적 뜻을 넘어 실질적으로 취재 편의를 지원받는 고유 집단이 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또 기자가 기자를 평가한다”며 “그럴 권한이 기자에게 있나. 비유하면 국가장학금 주는데 상위권 대학 학생들이 장학금 받을 사람 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대법원 기자단의 대법원 판결문 엠바고 자료 형식. 12월24일 선고 판결 중 10개를 선정하고, 2주 뒤인 1월7일부터 18일까지 요일 별로 엠바고를 지정해 하나씩 보도하는 관행.
▲대법원 기자단의 대법원 판결문 엠바고 자료 형식. 12월24일 선고 판결 중 10개를 선정하고, 2주 뒤인 1월7일부터 18일까지 요일 별로 엠바고를 지정해 하나씩 보도하는 관행.

 

‘모든 시민’ 대상 공보 고민 없는 법원

대법원 엠바고는 ‘선고 2주 후 기사를 내자’는 대법원 기자단 합의다.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대법원 소부 선고일에 판결이 쏟아지니 대중에게 알려야 할 판결을 협업을 통해 선별하고 속보 경쟁을 지양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기자단은 선고 당일 주요 판결문 원본(실명본)을 대법원으로부터 받는다. 매체 별로 판결을 나눠 각자 요지를 정리해 내용을 미리 공유한 뒤 ‘선고 2주 후’부터 보도를 시작한다. 그 이후 2주 동안 주중에 보도할 판결 10개의 보도 시점을 요일별로 정한다.

이 엠바고 관행은 다른 기자 취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5년 넘게 법조를 취재한 C기자는 “2주 동안 보도를 연기하는 관행이 누구에게 이익인지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을 보도할 언론사는 법조기자단 40개에 비기자단까지 합치면 매우 많다. 언론사들이 알아서 취재할 영역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는 대법원 공보가 기자단에 종속되면서 발생한 문제다. 일차적으로 공보 대상은 모든 일반 시민이다. 언론은 알 권리의 수단이라는 점이 인정돼 이들보다 추가 지원을 받을 뿐이다. 예로 영국 대법원은 확정 판결이 나오면 즉시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심리가 열리는 사건은 예외 없이 1~2주 전에 홈페이지에 공지한다. 뉴질랜드 법원도 “대법원의 모든 결정은 법원 사이트에 게시되며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판결문 등 법원 기록에 대한 접근권도 일반 시민과 기자 차이가 크지 않다.

영국·미국·뉴질랜드·캐나다 법원의 언론 대응 내규를 보면 이들 법원은 특정 언론사에만 취재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공판 취재 중 전자 기기 사용도 일반 기자라면 허가를 받고 쓸 수 있다. 캐나다 사스카츄완주 법원을 취재하는 기자는 언론사 대표이사 명의의 증명서와 자신의 범죄 기록을 증빙하면 기자증(3년 유효)을 받을 수 있다. 기자증을 받으면 법정 내 전자 기기 사용 등의 취재 지원을 받는다. 뉴질랜드 법원은 ‘프리랜서 기자처럼 법원 허가를 받고 재판을 취재하는 사람’도 취재 지원 대상으로 둔다.

▲캐나다 사스카츄완주 법원을 취재하고 싶은 기자가 프레스증을 받기 위해 작성하는 신청서 양식.
▲캐나다 사스카츄완주 법원을 취재하고 싶은 기자가 프레스증을 받기 위해 작성하는 신청서 양식.
▲영국 대법원이 선고가 예정된 판례를 미리 게시한 사이트 갈무리.
▲영국 대법원이 심리가 예정된 판례를 미리 게시한 사이트 갈무리.

 

“백브리핑, 카메라 꺼달라” 안이한 설명책임

서울 법조만큼 폐쇄적 기자단이 서울지방경찰청(시경) 기자단이다. 시경 기자단에 가입하면 혜화경찰서, 마포경찰서 등 하위 경찰서 출입이 동시에 가능하다. 시경 기자단 가입 신청은 ‘경찰청 본청’ 기자단 가입사만 할 수 있다. 본청을 출입하려면 경찰청에 ‘가출입기자’ 신청을 해야 하는데 조건이 4가지다.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기자협회·인터넷신문협회·한국종합편성채널협의회 등에 속하고 △기자가 최소 1명 이상 경찰청에 상주해야 하며 △매월 회비(기자단 운영비 등)를 낼 수 있고 △경찰 관련 기사를 주기적으로 쓰는 언론사여야 한다.

가출입기자는 경찰청이 메일·문자 등으로 기자단에 보내는 공보자료를 받지 못한다. 공식 브리핑은 취재할 수 있지만 경찰 관계자의 백브리핑이나 간담회 자리엔 참여하지 못한다. 기자실에 상주하면서 6개월 간 기사를 꾸준히 쓰면 보통 6개월마다 열리는 가입 투표에 회부된다. 정원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 재적의 과반 동의를 얻으면 가입할 수 있다.

본청을 통과하면 대부분 시경 기자단 가입을 준비한다. 최소 6명의 기자가 6개월 동안 경찰 관련 기사를 써야 한다. 투표 통과 조건은 전체 3분의 2 이상 출석,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경찰청 기자단의 D기자는 “아시아투데이와 뉴스핌은 최근 2번 이상 본청 기자단 투표에서 떨어졌다. 아시아경제도 지난 시경 기자단 투표 때 탈락했다. 객관 기준은 충족했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도 비슷하다. 국토교통부 기자단은 웹사이트 분석 서비스 회사 ‘ㄹ사’ 자료를 근거로 순위 100권 내 매체를 ‘가입 신청 매체’로 둔다. ‘매체 난립’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알려졌다. 기자단은 더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네이버 뉴스스탠드 등록 매체’로 기준을 변경하는 등의 논의를 했다고 전해졌다.

투표는 2번 거친다. 6개월간 출입해 ‘예비투표’(1차 투표)를 통과하면 예비 가입 매체가 된다. 다시 6개월 활동 후 본 투표를 통과해야 ‘정식 가입 매체’가 된다. 6개월간 주 2회 기자실 출석이 가입 조건 중 하나다. 출석은 대변인실 출석부에 이름, 날짜, 서명을 기입하고 기자실 출석부에도 서명해 증빙한다. 국토부를 출입해 본 E기자는 “최소 1시간 이상 자리를 지켜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자리에 앉아있는지 확인하러 온다”고 말했다.

정부부처는 공보가 기자단에 종속되면서 보도자료 대부분에 엠바고를 거는 관행이 굳혀졌다. 기관은 기자단에게만 미리 기사를 준비하라는 취지로 자료를 먼저 보낸다. 국토부 기자단의 F기자는 “엠바고는 남용된다. 언론 편의지 알 권리와 관련없다. 민감한 부동산 정책 경우 엠바고가 불가피하지만 대체 왜 엠바고가 필요한지 궁금한 자료가 훨씬 더 많다”며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발표’, ‘겨울철 도로교통 안전강화대책’도 있다. 다른 분야 기자가 자체 취재로 엠바고 아이템을 써도 기자단이 엠바고 파기 대응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백브리핑도 지나치다. 공무원은 가능한 한 개방적으로 시민들에 설명책임을 져야 하지만 실상은 소극적이다. 정부 관계자나 수사기관이 ‘자세한 내막과 배경을 설명할 테니 카메라·마이크를 꺼달라’고 하는 경우가 일상이다. 백브리핑은 보통 기자단만 들을 수 있다. C기자는 “기자단끼리 내용을 공유하면서 특혜를 공유하는 것처럼 비춰져 정보를 다루는 기자나 매체 사이 차별이 발생한다”며 “기자와 기관이 ‘오프’를 정해놓고, 특정 정보에 대한 보도를 통제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지자체 기자실 풍경.
▲한 지자체 기자실 풍경.

 

물질적 편의 제공은 당연하지 않다

언론이 기자실과 출입증을 제공받는 관행도 성찰해볼 문제다. 시민을 대표해 기관을 견제하는 기자가 취재원으로부터 물질적 지원을 받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자실은 한국, 일본 등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문화다. 독일 경우 자체 사무실을 쓰거나 소규모 매체 등은 ‘연방기자회견협회’ 건물에 비용을 내고 입주한다. 정부 기관과 공간적 거리를 둬야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인식이 더 강하다.

한국 언론계 통념과 차이가 있다. 검찰 기자단 유착 논란 등 출입 제도가 논란이 됐을 때 언론계 일각에선 ‘기관과 공간적 거리가 가까워야 감시·견제를 더 잘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자들 관성일 뿐이지 감시·견제와는 관련 없다는 반론도 있었다. 언론 자유 지수가 높은 대다수 서구 국가들에선 기자가 상시 출입증을 받는 관행은 매우 예외적이다.

관련 문제제기를 계속해 온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의 손주화 사무국장은 “사회 공공성 확보를 위한 운영보다 기자단 내 기자들의 취재편의와 장벽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며 “특히 지역은 독점적 카르텔이 형성되면서 일부 기자의 권리 남용이 관행처럼 자리매김하며 취재 다양성을 제한해 왔다. 저널리즘 실천을 저해하는 기자단 장벽 문제를 모두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튜버 난립? 최악만 상정한 보수적 태도

기자단이 유지되는 이유는 공공기관의 폐쇄성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공기관이 언론 접촉과 정보공개에 호의적이지 않아 기자단이란 수단을 통해서 취재 기회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F기자는 “백브리핑 경우 목마른 기자들이 매달릴 때가 많다. 그만큼 공무원들이 설명 책임을 적극적으로 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한 공무원은 온라인으로 동시 상영된 공개 간담회도 ‘발언 영상을 쓰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pixabay.
▲ⓒpixabay.

 

법조 기자단 경우 국회처럼 등록제로 전환한다면 대형 방송사 등 유력 매체에 유리한 취재 환경이 조성돼 유착이 심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임찬종 SBS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자단 체제에서는 기자단에 소속됐다는 것만으로 당연하게 확보할 수 있었던 정보가 갑자기 치열한 노력 끝에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돼 버린다”고 밝혔다. 등록제를 운영 중인 국회에서 특정 취재원이 특정 매체를 상대로 정보를 흘려주는 현상이 다분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C기자는 “유착은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기자단이 있든, 없든 기관 선택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매체를 골라 정보를 흘린다. 또 기자단만 상대하고 그 외 언론은 상대 안하면 되니 매우 편하다”며 “기자단만 확보 가능한 정보는 그 자체로 당연하지 않고, 기자단이므로 확보 가능하면 어떤 기자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공보”라고 말했다.

기자단 일각에선 매체 난립을 이유로 현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고도 본다. 보도 윤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튜버나 소규모 미디어 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유다.

이와 관련 B기자는 “매체 난립에 대한 공포는 가장 나쁜 상황을 상정한 보수적 태도”라며 “모든 기자는 동등하고 기자는 정보를 배포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언론 대응은 기관이 할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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