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의 중심에 왜 청와대만 보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채 안된 지난 2018년 3월22일 오신환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의 발언이다. 집권 1년차는 ‘청와대의 시간’이다. 집권 1년을 맞는 2018년 5월, 한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분위기를 전한 한겨레 기사 제목은 “문재인·홍준표만 보이는 6·13”이었다.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문 대통령이 연일 뉴스 중심에 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청와대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는 내각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오 의원의 발언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관련 부처인 법무부를 패싱하고 개헌안을 직접 발표하자 나온 말이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70~80%대를 유지하며 정권 초 청와대의 강한 힘을 누리며 부처의 역할을 무시한 결과였다. 야권에서 수차례 이를 지적했지만 제동을 걸기엔 역부족이었다.

‘퇴근길에 시민들과 소주 한잔하겠다’는 공약만큼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소통 행보도 적극적이었다. 한겨레는 집권 1년 관련 사설에서 대통령이 5·18 유족을 안아준 모습, 세월호 가족에 대한 공식사과 등을 평가하며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국민공감의 결과로 해석했다. 당시 문 대통령이 예고없이 춘추관을 찾아 기자단을 격려하기도 했는데, ‘연출된 쇼’라는 지적이 가능하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얼굴을 지난 1년간 한 번도 못 본 현재와 비교하면 언감생심이다. 

▲ 대선 다음날인 2017년 5월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장 접견실에 앉아 마지막으로 취임선서문을 읽어보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대선 다음날인 2017년 5월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장 접견실에 앉아 마지막으로 취임선서문을 읽어보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인사문제로 집권 2년차 태도변화

촛불집회와 대통령탄핵 이후 한국사회의 과제는 민주주의 복원이다. 권력을 나눠 서로 견제하게 하고, 공정한 절차와 정의로운 결과를 직접 실천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적 절차가 아닌 힘으로 관료사회를 통제하는 모습은 시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정을 함께 이끌어갈 행정부처 공무원들의 불만을 높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지난 2017년 말 언론보도 관련해 외교부 간부 10여명의 휴대전화를 수거해 포렌식 조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 간부는 사생활 문제로 징계를 받았다. 지난 2018년 11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린다는 보도에 대해 보건복지부 실무자들의 휴대전화를 조사했고, 2019년 4월 대통령 경호처장이 부하직원을 가사노동에 동원했다는 의혹보도가 나오자 내부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검열 분위기도 문제지만 이견이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편협한 태도는 이후 인사에도 나타났다. 

문 정부 1기 내각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비외무고시 출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안철수 사람’으로 분류되던 인물, 피우진 보훈처장은 부당함에 맞선 여성 인사 등은 ‘파격인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집권 2년차 들어서 주식 과다보유로 비판받은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 다주택 소유로 비판받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 자녀 호화유학 등으로 비판받은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 등은 청와대가 밝힌 ‘5대 인사배제 기준’이나 탕평인사 원칙을 외면한 인사다. 

당시 조선일보와 한겨레 모두 청와대 인사를 비판했다. 스스로 만든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은 대국민 약속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집권 2년을 맞아 2019년 5월9일 KBS 대담에서 “소수 인원이 짧은 기간에 공적 자료에 의존하는 검증이 완벽할 수 있겠느냐”며 “청와대 검증에서 밝히지 못한 부분이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검증실패라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날 KBS 대담은 방식에서도 질타를 받았다. 다수 기자의 질문을 외면한 채 한 방송사와 협의하는 대담은 청와대 주도로 진행할 가능성이 커지기 마련이다. 집권 2년을 넘기면서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빼놓곤 일절 언론접촉을 끊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사안에 입장을 내지 않았고, 메시지를 내놓는 형식도 직접에서 간접으로 이동했다.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들과 일문일답, 2018~2020년 1월 각 신년기자회견, 2020년 5월 특별연설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했지만 2019년 5월 KBS 대담과 11월 국민과 대화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우회했다.

공무원 탓, 언론 탓 

2019년 5월, 집권 2년을 맞으며 당시 대통령이 국민에게 내놓아야 할 메시지는 적폐청산에 대한 철학과 인사기준을 어긴 과오에 대한 입장이었다. 적폐청산은 인적청산을 포함하지만 나쁜 관행을 용인해 온 문화와 제도개혁도 포함했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원칙조차 허무는 가운데 적폐를 막을 시스템 개선은 진정성이 부족하고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KBS 대담에서 “(적폐청산은) 우리 정부가 시작한 일이 아니고 전 정부가 시작한 것”이라며 “우린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책임회피라는 비판이 붙었다. 

또한 인적청산이 개혁의 대상이라고 부르짖던 검찰을 이용한 수사로 적폐청산의 범위를 좁히거나 청와대 권력을 이용한 정치적 반대파 색출의 성격을 보이자 일선 공무원들의 반발을 불렀고, 내각 책임자에 대한 인재풀은 좁아졌다. 

▲ 2019년 5월11일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 2019년 5월11일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가장 극적인 사건은 2019년 5월 당정청 회의에서 마이크가 꺼진 줄 모르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부 관료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국토부 공무원들이)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한다”고 말한 일이다. 이 원내대표가 소위 공무원들 ‘군기잡기’에 나서겠다고 하자 김 실장은 “그건 해주세요. (집권)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고 말했다. 

집권 2년간 합리적 인사·조직을 이용해 지휘하기 보단 겁박하듯 관료를 통제해왔다는 하나의 증거다. 인사기준이나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부적격 인사를 강행한 배경이기도 하다. 일선 관료와 청와대의 빈틈이 너무 빨리 벌어진 것이다.  

역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질수록 내각 수장들은 관료들에게 포획될 가능성이 커진다. 돌아보면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당정청의 불협화음, 재벌저격수란 별명까지 얻었던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일조한 사건 등은 청와대의 부처장악력이 떨어진 가운데 부처공무원과 정치인 출신 장관(혹은 어공)의 자기정치가 만나 벌어진 비극이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좋은 지표 알리기’ TF팀을 만들도록 한 사실이 알려졌다. 언론에서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하던 때였다. 그러자 청와대는 경제성과를 뒷받침할 지표를 찾아 적극 알리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말 “‘경제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해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는 잘했는데 언론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시각이다. 

▲ 2019년 4월27일 조선일보 사설
▲ 2019년 4월27일 조선일보 사설

 

청와대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여당이 정국을 주도하기로 했다. 이 원내대표는 2019년 5월 당정청 회의에서 “당의 주도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행정부 내부통제-인사실패-언론 탓’의 악순환은 반복했다. 인사실패로 인한 사회혼란의 대표적 사례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사태였다. 문 대통령은 혼란국면 내내 침묵하다 해를 넘겨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조국사태 국면에서 여당은 검찰과 언론만을 탓하며 조 전 장관과 그의 일가를 무결점의 존재로 묘사했다. 지난해 9월 실종 공무원이 북한 피격으로 사망하자 국민의힘은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실종을 비판하며 1인시위를 진행했다. 

공직사회 통제를 여당이 이어받은 대표적 사건이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공격이다. 정부견제 위치에 있는 이들 공직자에 대한 싸움은 지난 한해 정치면을 대부분 잡아먹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은 자신들은 절차를 어겨가면서도 부하공직자를 탓했고, 언론을 탓했다. 정권 초 청와대만 보였다는 평이 무색하게 청와대는 보이지 않았다. 갈등을 중재해야 할 문 대통령은 대변인 등이 필터링한 워딩만을 춘추관에 전달했다. 

야당의 부적절한 견제도 문제

청와대만의 잘못은 아니다. 야당이 대안세력에 걸맞는 행보를 보이며 책임있게 비판해야 청와대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야당은 설득을 통한 정치가 아닌 ‘정치의 사법화’라는 무책임한 방법에 의존했다. 지난 2019년 4월 한겨레에는 “인사 검증을 검찰에 맡기는 야당, 적절한가”라는 칼럼을 통해 야당의 모습을 비판했다. 정치와 여론의 영역에서 비판·검증하는 게 아니라 일단 검찰 등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사법부 심판에 넘기는 행태에 대한 지적이 조국사태 이전부터 있었다는 뜻이다. 

야당이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을 비판하면서 툭하면 검찰에 고발하는 행태를 반복하면 정치인들은 잘못이 있어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사과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려하면 위법행위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교묘한 말로 답변을 회피하거나 검찰 수사를 대비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은 또 한번 실망하게 된다.

▲ 청와대 전경. 사진=연합뉴스
▲ 청와대 전경. 사진=연합뉴스

 

야당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청와대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만들었는데 야당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야당을 탓했고 야당은 영수회담을 거론하며 협의체 참여에 소극적이다. 서로의 탓만 하는 모습이다. 

‘내각실종’에서 ‘대통령실종’으로 

이제 실종된 존재는 대통령이다. 지난 5일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이 2021년 화두로 ‘청와대 탈정치’를 구상하고 있고 이를 외부 컨설팅업체와 논의해 새로운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의 정체성) 재설정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내용을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어 보도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이를 즉각 부인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 국면에서도 제3자처럼 침묵하고, 윤 총장 징계마저 재량권이 없었다며 책임을 방기했던 모습 등을 종합할 때 청와대의 탈정치 구상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청와대는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등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적극 논쟁하던 장하성·김수현 정책실장과 달리 현 김상조 정책실장은 재난지원금 선별·보편 논쟁, 공정경제 3법 등에서 기재부와 입장을 일치시켜왔고, 종종 언론에 등장한 뒤엔 기재부 관료들을 옹호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개혁을 요구받는 정권의 청와대와 기재부의 타협, 청와대마저 관료들에게 포획됐다는 증거다. 문 대통령은 최근 김 실장의 사표를 반려하며 유임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와 청와대 민정수석을 김앤장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을 경영인 출신으로 지명한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포용’을 말했다. 재계 입장을 반영해 중대재해법을 수정·통과시킨 여당의 대표는 국민 다수가 파면시킨 범죄자를 포함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통합’을 말했다. 분명 어떤 국민들 목소리는 청와대 담을 넘어 대통령 귀에 가닿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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