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문제적 여론조사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주요 언론이 ‘오차범위 내 우열’을 단정하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어 ‘신중한 보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일 발표된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의 서울시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선두’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서울시장 가상 대결, 안철수 24.2%로 우뚝…박영선 17.5%, 나경원 14.5%”(뉴데일리) “안철수, 서울시장 여론조사 1위 싹쓸이..3자대결은 박영선 1위”(이데일리) 등 기사에서는 제목을 통해 순위를 부각하거나 단정했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3.5%p로 안철수 대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17.5%)과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이었다. 오차범위는 말 그대로 여론조사의 오차를 뜻하는 것으로 순위를 낼 수 없는 수치를 말한다. (이 조사는 지난달 27∼29일 만 18세 이상 서울 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를 기록했다.)

▲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1위' 또는 '오차범위 내 1위'로 표현한 언론 기사들.
▲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1위' 또는 '선두권', '오차범위 내 1위'로 표현한 언론 기사들.

‘1위’를 부각하지 않은 보도는 어떨까. 1일 동아일보는 “서울시장 선거 지지율.. 안철수 24.2% 박영선 17.5% 나경원 14.5%” 기사를 통해 지지율 숫자만 나열하는 제목을 썼다. 같은 날 JTBC 뉴스룸은 “서울시장, 안철수 선두권.. 4월 보궐선거 ‘심판론’ 무게”라며 1위가 아닌 ‘선두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같은 날 서울신문은 “‘안철수 24.2%’ 오차범위 내 선두..박영선-나경원 뒤이어” 기사를 통해 기사 제목에 ‘오차범위 내’라고 명시해 다른 언론과는 차이를 보였다. 

서울신문 기사가 가장 적절하게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기사 제목은 모두 문제가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2016년 제정한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은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 순위를 매기거나 서열화하지 않고 ‘경합’ 또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고 보도해야 한다 △ “오차범위 내에서 1, 2위를 차지했다”거나 “오차범위 내에서 조금 앞섰다”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 수치만을 나열하여 제목을 선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 기표소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기표소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 2위가 아닌 제3의 후보를 부적절하게 부각한 경우도 있다.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역언론 톺아보기’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국제신문의 여론조사 기사를 지적했다. 국제신문은 지난달 31일 폴리컴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며 “박형준 28.3% 김영춘 16.9%…박성훈 급부상”기사를 내고 “박성훈 부시장은 이번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대상에 포함됐으나 국민의힘 후보 적합도에서 7.8%의 의미 있는 지지율로 3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부산 민언련은 “이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는 ±3.1%p로 박성훈(7.8%), 유재중(4.9%), 이진복(4.8%), 박민식(4.6%)까지는 모두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 보는 게 정확한 해석”이라며 “박성훈 부시장을 국민의힘 후보 적합도 ‘3위’라 순위를 매겼고, 이를 헤드라인으로까지 올려 강조해 결과적으로 박성훈 부시장을 띄워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이 같은 보도는 자율규제 심의 제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신문윤리위원회는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실시한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 보도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임에도 ‘윤석열 1위’ 등을 제목에 단정해 표현한 25개 신문사와 연합뉴스에 ‘주의’ 처분했다. 신문윤리위는 1위로 단정한 보도 뿐 아니라 오차범위 내에서 1위라고 쓴 경우도 같은 처분을 결정했다. (해당 조사는 2020년 11월 7~9일 전국 만18세 이상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로 응답률은 3.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다.)

2017년 19대 대선 여론조사보도 리뷰 세미나에서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대선 기간 가장 많은 제재를 받은 여론조사 기사는 ‘오차범위 내 순위 매기기’였다. 김춘식 교수는 “후보 지지율이 오차 범위 이내면 순위를 명시하지 않아야 하는데, 기사와 제목에 굳이 이를 밝혔다가 제재를 받은 신문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 '오차범위 밖 1위' 표현을 쓴 언론 보도 갈무리.
▲ '오차범위 밖 1위' 표현을 쓴 언론 보도 갈무리.
▲대선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경우 '1위'로 단정한 보도 외에도 '오차범위 내 1위'로 쓴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차범위 내 1위' 역시 부적절한 표현이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경우 '1위'로 단정한 보도 외에도 '오차범위 내 1위'로 쓴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차범위 내 1위' 역시 부적절한 표현이다.

최근 일부 언론은 지난달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주자 가운데 1위로 나타난 오마이뉴스- 리얼미터 여론조사 등을 언급하며 ‘오차범위 밖 1위’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기존에 ‘오차범위 내 1위’를 무리하게 기사화하다 보니 이와 구분하기 위해 등장한 표현이다. ‘오차범위 내 1위’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니 ‘오차범위 밖 1위’라고 쓸 필요 없이 ‘1위’라고 쓰면 된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2020년 12월 21~24일 동안 전국 18세 이상 204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응답률은 4.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다.)

*이들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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