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심의 결과를 종합하며 “코로나19 관련 사회혼란 야기 정보에 대해 적극 대응”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논란이 되는 잣대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게시글에 대한 심의를 한 사실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코로나19 관련 200건의 게시물에 대한 삭제 또는 접속차단 시정요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감염병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들로 인해 국민들에게 불안감, 공포심 등을 조장하여 사회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었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혼란 야기 정보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적극적으로 심의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방통심의위가 조치한 200건은 모두 문제 없을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방역을 위한 심의는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회혼란 야기 정보’ 조항을 적용한 일부 심의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 문재인 대통령 왼손 경례 조작 사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게시물이 '사회혼란 야기' 정보라는 이유로 삭제 시정요구를 의결했다. 그러나 이 게시물이 사회 혼란을 어느 정도 야기했는지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 그동안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를 하지 않는 기조에 비춰봐도 이례적인 조치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왼손 경례 조작 사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게시물이 '사회혼란 야기' 정보라는 이유로 삭제 시정요구를 의결했다. 그러나 이 게시물이 사회 혼란을 어느 정도 야기했는지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 그동안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를 하지 않는 기조에 비춰봐도 이례적인 조치다. 사진=청와대.

‘사회혼란 야기 정보’에 대한 조항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잘못된 정보로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면 대응할 필요가 있겠지만, 문제는 ‘사회 질서’가 어느 정도 혼란에 빠졌는지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실제 사회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안이더라도 정부 입맛에 따라 부정적인 게시글에 대한 삭제가 가능한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 방통심의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적용해왔으나, 감염병 등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혼란 야기 정보는 적극적으로 심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역을 살펴보면 방역을 위해 ‘적극적 심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왼손으로 경례했다는 조작사진, 김정숙 여사가 일제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허위 주장의 게시물 삭제 조치가 대표적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지난해 해당 심의가 이뤄질 당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오픈넷은 “대통령과 영부인 관련 허위정보가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국민에게 어떤 중대한 혼란이나 위험을 야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코로나19와 관련해 각 언론 및 개인들의 ‘팩트체크’ 또한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문제가 된 게시글 역시 이미 허위정보로 판명 난 상황이었다”며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정보’라고 보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또한 삭제해야 할 시급성 또한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국민의 생존을 지킬 권리이자 알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방통심의위가 국가권력을 대신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선봉대에 서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사드 전자파 음모론 게시글 심의 당시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표현의자유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 방통심의위는 사회혼란 야기 정보 조항을 적용해 사드 전자파 음모론, 메르스 배후설, 세월호 참사 음모론 등 정부에 불리한 음모론 게시글에 해당 조항을 적용해 일일이 찾아 삭제해 논란이 됐다. 당시 민주당 표현의자유 특위는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정보에 대한 심의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에 대한 심의였다며 반발했다. 코로나19가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야당 시절 입장과 현재의 대응은 상반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 박근혜 정부 당시 방통심의위 시정요구 예시. 단정하지 않고 추정하는 내용도 삭제하는 등 과도한 심의 논란이 불거졌다.
▲ 박근혜 정부 당시 방통심의위 시정요구 예시. 단정하지 않고 추정하는 내용도 삭제하는 등 과도한 심의 논란이 불거졌다.

이 외에도 ‘우한 교민’에게 청와대가 제공한 도시락이 ‘모 대학의 중국인 유학생’에게 제공된 도시락이라고 적시한 게시글 등에 대한 삭제 조치도 논쟁의 소지가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유학생 도시락 관련 게시물 등 국민의 건강, 안전에 중대한 혼란이나 위험을 야기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정보들도 상당수 있다”며 “단순히 정부의 방역대책에 대한 불신이나, 과장된 내용으로 지나친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만으로 본 심의규정을 적용해 여론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제기는 무조건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방역 상황에서 심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엄격한 잣대로 심의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달 임기가 만료되는 4기 방통심의위는 ‘정치 심의’ 개선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이전 정부에 비해 정치 심의 문제가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응이 필요했다면 오남용 소지가 큰 ‘사회혼란 야기 정보’가 아닌 방역 목적의 별도의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근본적으로 방통심의위가 ‘불공정 심의’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는 9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을 정부·여당에서 선임하는 추천 구조에 있다. 현재 상황에선 ‘적절한 심의’를 해도 ‘정치적 심의’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박근혜 정부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위원 추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정권 교체 이후에는 관련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성과를 강조하기에 앞서 임기 만료를 앞둔 현 시점에서 정치 심의가 가능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