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출연한 이유는 뚜렷하다. TV조선 입장에선 유력 정치인으로 주목받을 수 있고, 나 전 의원은 4월 서울시장 재보선 도전을 앞두고 인지도를 높이며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다. 물론 예능프로그램이 정치인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 해당 회차 시청률은 평소보다 높았다. 닐슨코리아 자료를 보면 나 전 의원이 나온 지난 5일자(130회) 시청률은 11.2%(분당 최고 시청률 15.4%)를 기록했다. 바로 전주인 지난해 12월29일(129회) 시청률은 6.3%를 기록했고, 최근 두달간 아내의맛 시청률은 7~8% 수준이었다.

정치인이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에선 정치적 정보 전달보다는 정치인의 개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최근 리얼리티 예능이 보편화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했다. 

‘TV 토크쇼가 정치인 이미지 형성과 평가에 미치는 영향’(조송현 박사 논문)을 보면 예능은 대체로 이미지 개선에 긍정효과를 보였다. 해당 연구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문재인·박근혜·안철수 등을 분석했는데 특히 정치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의 한계를 보완하거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된 것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경우 “‘카리스마’의 비중이 높은 것은 문 후보의 ‘특전사 출신’ 속성을 부각한 영향”이라며 “이는 ‘노무현의 그림자’나 ‘모범생’ 같은 기존 문 후보의 이미지와 대비를 이룬다”고 분석했고 박근혜 후보는 개인적 특성, 특히 서민적인 모습이 연구에서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대선 후보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1996년 김대중 후보가 처음이다. 그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해 인간적인 모습과 재치있는 유머를 보여줘 민주화 투사라는 기존 이미지를 벗고 유화적 이미지로 거듭났다. 이후 정치인들은 이미지 변신과 약점보완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5일 나 전 의원이 나온 ‘아내의 맛’을 보면 나 전 의원의 기존 이미지와 TV조선 출연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이미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나 전 의원은 최근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 전까지 딸의 대학성적을 정정해줬다는 혐의, 아들 고교시절 서울대 의대 포스터(연구발표문)에 제1저자로 부정 등재됐다는 의혹, 미국 LA 원정 출산설 등의 의혹을 받았다. 이에 더해 동계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등 예산집행 비리 의혹, 나 전 의원 부친의 경우 업무상 배임 의혹 등도 받았지만 최근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요약하면 나 전 의원은 자녀들에 대해 소위 ‘엄마찬스’ 특혜의혹과 금전적 비리 의혹에 시달렸다. 특히 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의 보수정당 정치인에다 과거 ‘1억원짜리 피부과에 다닌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어 기득권·부자정치인의 이미지도 있다. 이번 ‘아내의 맛’ 방송에는 이러한 기존 이미지를 고려한 장면이 여럿 보였다. 

▲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 지난 5일 나경원 편 방송화면 갈무리. 정치인 나경원의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을 연출했다.
▲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 지난 5일 나경원 편 방송화면 갈무리. 정치인 나경원의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을 연출했다.

 

방송은 나 전 의원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민낯을 공개하고 머리에 거품이 묻은 장면에 출연진은 “인간미 있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면 후 화장실 안에서 스킨을 바르는 장면에서는 “통일성 없는 단출한 화장대”, “방구석 짠내 에스테틱” 등의 자막과 “되게 털털하시다”는 출연진 멘트로 소탈해보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방송의 대부분은 나 전 의원 딸과 관련한 분량이었다. 딸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드럼을 치는 장면으로 등장했다. 방에서 음악소리가 들리자 나 전 의원과 그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방에 들어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즐기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 자체로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 다운증후군이 있는 나 전 의원의 딸이 미디어에 등장할 때마다 ‘동정심을 자극해 선거에 활용한다’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 지난 5일 나경원 편 방송화면 갈무리. 정치인 나경원의 장애를 가진 딸이 부모의 도움없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 지난 5일 나경원 편 방송화면 갈무리. 정치인 나경원의 장애를 가진 딸이 부모의 도움없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나 전 의원은 방송에서 “처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을 때는 막막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몰라서 힘들었다”며 “(장애) 아이들에게 자꾸 기회를 주고 도전하면 사회에서 역할도 잘하게 된다. 우리가 기회를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내용은 딸의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다분히 ‘엄마찬스’로 얼룩진 이미지를 신경 쓴 장면이다. 나 전 의원과 출연진은 딸이 왜 드럼을 하게 됐는지 얘기를 나눴다. 딸이 “발산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드럼을 시킨지 12년이 흘렀고, 출연진들은 딸의 드럼실력을 칭찬했다. 

또 딸이 최근 취업사관학교를 다니는데 1년 사이 혼자서 자격증 3개를 땄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딸이 스스로 취업준비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출연진은 “손이 안 가는 딸이네” 등의 말로 거들었다. 

특히 방송 끝부분에서 엄마·아빠·딸이 모여 딸의 결혼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에서는 딸의 자립의지를 강조했다. 나 전 의원은 “시집가지 말고 엄마랑 살자”고 말하지만 딸은 취직하고 결혼하겠다는 입장을 단호하게 밝힌다. 아빠는 이런 딸에게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딸이 취직하고 결혼해서 자립한 뒤에 ‘엄마·아빠를 먹여살리겠다’는 말을 하자 “울컥 감동” 등의 자막과 함께 출연진들은 “진짜 예쁘다”, “기특해라”, “눈물 날 것 같아”라며 나 전 의원의 딸을 칭찬했다. 

나 전 의원의 시장선거 출마 관련 정치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도 해당 방송을 언급하며 “딸을 잘 키웠다”는 내용이 종종 있는데, 이중에는 나 전 의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댓글도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더라도 딸을 잘 키운 것은 인정하는 내용인데 이는 방송의 효과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날 나 전 의원의 아들은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녹화가 입대 이틀을 앞둔 날 진행했다며 군입대 사실을 알렸다. 미국 ‘원정출산’ 의혹을 불식하는 효과다. 아들의 입대 날 나 전 의원은 재판에 출석하느라 군부대에 가지 못했다는 스토리 역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나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국회 패스스트랙을 막고자 야당이 물리력을 쓴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 지난 5일 나경원 편 방송화면 갈무리. 이날 방송에는 나경원 전 의원의 가족들이 화목하게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담았다.
▲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아내의 맛' 지난 5일 나경원 편 방송화면 갈무리. 이날 방송에는 나경원 전 의원의 가족들이 화목하게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담았다.

이날 방송은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세 식구가 아침과 저녁을 함께 준비해서 먹는 모습, 최근까지 배임혐의를 받았던 나 전 의원의 아버지와 모녀 등 3대가 함께 한강주변을 산책하며 과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등장했다. 정치인의 서민적이고 가족친화적인 모습 재현은 진부하지만 필수적이다. 

나 전 의원은 ‘아내의 맛’ 출연이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에 대해 지난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한 (예능)프로그램에 상당히 오래나왔다”며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12일 TV조선 ‘아내의 맛’엔 서울시장 예비주자로 주목받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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