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8일 오후 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의원 등 반대토론에 나선 의원들은 “가진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됐다”, “서글픈 자리가 됐다” 등 법안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대한 투표를 한 결과 재석 266인 중 찬성 의원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으로 가결했다.

이 법률안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1명 이상 사망하는‘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사망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상 및 질병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내용을 뼈대로 했다. 이밖에 이 법안은 △감독의무를 위반한 법인이나 기관은 사망사고시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 △부상 및 질병의 경우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사업주와 법인 등이 중대재해로 야기된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그러나 애초 원안에 있던 처벌 대상과 규모, 책임자 등이 대폭 삭제, 누락, 수정 돼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이다. 특히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의 사업장에는 3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대표이사나 사업주가 책임을 전가하도록 수정됐고, 애초 징역 3년 이상이 1년 이상으로 축소됐고, 벌금에서 하한은 사라졌다. 공무원 처벌 특례규정도 삭제됐고, 처벌대상에서 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 1,000㎡ 미만 사업장, 학교, 시내버스, 등은 제외됐다.

이 같은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되자 반대토론에 나선 일부 야당 의원들은 법안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울먹이는 등 비통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합의조정과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나 법의 근본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 법안이 자칫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으로 다시 재현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건물 바로 앞에서 29일째 단식농성 중인 김용균군의 어머니 이한빛PD의 아버지를 만나 많은 국회의원들이 위로와 약속 다짐했다는 점을 들어 강 의원은 “오늘 내놓은 중대재해법으로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며 “기계에 끼이고, 추락하고, 덤프트럭 깔려 죽어간 노동자들의 이름은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애통해했다. 그는 “기업이 (안전을 위한 비용을) 선택적 비용으로만 생각지 않았다면 이런 죽움은 피할 수 있었다”며 “자신의 자식이 이렇게 일하다 죽는다면 어떤 기업인도 유예기간을 두자, 속조조절하자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업이 비용절감해 얻는 이윤보다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며 “우리(국회)는 그들을 대표 해야 한다. 더 많은 표를 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타인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는 모든 사업자들이 책임져야 하고, 책임을 떠넘길 수 없어야 한다”며 “나은 법을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해달라”고 호소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도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이 법안의 한계를 들어 “98%의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법에 버림받았다는 원망을 받아서는 안된다”며 “70% 국민이 찬성하는 법임에도 부족하고 허점투성이의 법안 제출된 것에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강 원내대표는 경영 책임자가 면책되고, 중대산업재해에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된 점을 들어 “중대재해법이 통과되는 이 자리가 결코 웃을 수 없는 서글픈 자리가 됐음을 국민여러분께 고백한다”며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중재법이 첫발을 내딛는 것은 목숨건 단식과 국민여러분의 성과”라고 울먹였다. 그는 “대한민국이 산재공화국의 오명 벗어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반대토론에서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처벌수위를 낮춰달라, 발주처 제외 달라 등의 요구로 법사위에서 해당 조항들이 삭제된 사례 등을 소개하면서 “눈을 의심케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를 받아들여 결론 지은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라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사라졌다. 가진 사람이 먼저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산재 사망 노동자 2천명 넘는데도 과로사 산재 사망의 목숨값 고작 몇백만원이라는 점을 들어 유 의원은 “우리는 기권한다”면서 “모든 노동은 존엄하다. 노동을 차별하고, 목숨값을 달리하는 (법률안)대안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원안을 살려내지 못했지만 끝이 아니다”라며 “입법 목적 이뤄지도록 분연히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안설명을 통해 “영세 사업자 자영업자, 대기업, 등 전 국민이 대상이 될 법안이어서 심사숙고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해관계자 모두 100% 만족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부분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백 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재계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 국가라는 점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며 노동계는 이 법안이 부족할 수 있지만 영세 사업자와 자영업자 처벌하는게 맞는지 함께 고민해달라고 했다. 특히 백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와 관련 정확히 말해 5인미만 사업장의 사업주가 처벌에서 제외된 것이지 중대산업재해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다라며 “재해발생시 원청의 해당 경영책임자는 처벌 받는다. 5인미만 사업장이 완전 적용 배제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반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주장만 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과실범 불과한 산업재해 사범을 고의범죄사범 보다 더 엄히 처벌한다”며 “헌법상 수백개 하청업체가 있는데, 한 곳에서 사망 안전사고 발생시 본청 대표이사가 책임자가 처벌받게 되는데, 수천개의 현장을 어떻게 책임지냐”고 반문했다. 권 의원은 “기대할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라며 “과잉입법”이라고 비판했다.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은 이 법을 두고 “자동차 사고가 나면 제조업체가 책임지라는 것”이라며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 처벌받고 5년 내 형량 증가한다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평생 감방에 살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과도한 중복 처벌로, 법인이 벌금내고, 징벌적 손배 등 4중 처벌을 받는다”며 “이건 처벌이 아닌 가해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을 죄악시 하는 법을 만들면 기업가와 직장이 모두 다 사라질 것”이라고 덧부였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택배 등 생활물류서비스사업을 법제도화하고 택배기사 등 종사자를 과중한 업무로부터 보호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과 △최근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으로 아동학대 방지 및 처벌 강화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및 ‘민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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