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미오 사설] 전혀 새로운 지상파 라디오를 상상하다
[미오 사설] 전혀 새로운 지상파 라디오를 상상하다
[미디어오늘 1283호 사설]

2020년 3월30일 자정. 지상파 라디오 경기방송(FM 99.9MHz)이 정파됐다.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업무 관장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조차도 ‘어처구니 없는 사태’라고 했을 정도였다. 지난해 경기방송 폐업 사태는 방송과 경영 분리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시, 그리고 경영진이 수익만 좇을 때 공익 가치 방송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부동산임대업만 남기고 방송 부문 사업 일체를 정리한 경기방송 이사진 결정은 경기도민 알 권리를 위해 방송을 만들었던 직원들을 철저히 ‘배신’한 것이고, 역설적으로 방송사업자 철학이 중요함을 일깨웠다.

지난 2019년 8월 경기방송 직원들 내부 폭로가 있었다. H임원이 회식 자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 주장과 비슷한 의견을 밝히고, 일본 불매운동을 폄훼하는 게시물을 단체방에 올린 것뿐 아니라 “불매운동은 성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내부 폭로자는 그동안 방송과 경영 분리 원칙을 지키지 않고 보도에 개입해온 정황들이 계속됐는데 부적절한 역사 인식을 가진 H임원이 또다시 관련 리포팅을 요구해 방송될 경우 더 이상 경기방송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폭로 파장은 컸다. H임원의 각종 보도개입 행위가 추가로 드러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경기방송 사태를 심각히 보고 조사에 돌입했다. 주주 구성에서도 방송사 소유 경영 분리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흔적이 나왔다. 해를 넘겨 2020년 방통위는 경영을 실질 지배했던 자를 배제시킬 것, 이사회를 개편할 것, 편성 독립성 보장계획을 제출할 것 등의 재허가 조건을 걸었다. 당장 재허가를 거부하는 방안도 논의했지만 경기도민 청취권 보장 등을 고려해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경기방송 이사회는 2020년 2월19일 자진 폐업 결정을 내리고 방송허가권을 방통위에 반납했다.

▲ 경기방송 사옥.
▲ 경기방송 사옥.

경기방송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새로운 경기방송 설립 방안이 나오면서 전화위복이 될지 주목된다. 지난해 4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경기지역 새로운 공공라디오를 만들자는 제안을 내놨다. 다른 경쟁 미디어사업자가 경기방송 주파수 공모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아래서부터 경기도민의 진정한 방송을 만들자는 요구가 있었고 마침내 경기방송 설립 형태를 적시한 보고서가 나왔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를 모티브로 경기미디어재단 등 비영리 재단이 방송국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경기도가 직접 운영할 경우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안이다. 특히 이사회에 지역주민추천 인사를 넣는 방안은 방송 사유화를 막고, 방송과 경영 분리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장치로 판단된다. 경기방송이 비록 방송사업자가 손을 떼는 모양새로 폐업 사태를 맞았지만 제대로 된 방송으로 돌려세우는 ‘실험’이 성공할 경우 공공미디어로서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데 기대가 크다. 경기도 31개 시군 이야기를 담고, 시민과 함께 방송 플랫폼을 만들고, 지역 저널리즘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경기방송 미래가 될 것이다.

내부 폭로자였던 노광준 PD는 자신이 쓴 ‘방송이 사라지던 날’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공영방송 BBC 핵심가치는 ‘신뢰’이고 뉴욕타임스는 ‘진실의 추구’를 핵심적인 가치로 내걸고 있다. 새로 만들어질 경기도민의 방송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라며 “경기지역 곳곳의 현장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전하고 우리의 선곡은 일터와 가정에서 땀 흘리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우리의 프로그램은 재밌고 유익하며 우리는 방송을 넘어 삶의 경험과 정보가 공유되는 양질의 무료플랫폼을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민의 새로운 방송으로 돌아왔다”는 멘트가 FM 99.9MHz를 통해 나오는 그날, 과거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공익성과 지역성이 강화된 새로운 공공라디오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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