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오늘 하루종일 정인이 생각만 하게 됩니다.”

16개월 입양아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와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시작하면서다. 

특히 SBS가 지난 2일 생후 16개월 정인양이 장기간 학대를 받고 숨지기까지 구체적인 정황을 방송하면서 학대 가해자의 엄한 처벌 요구과 함께 학대를 막지 못한 책임 문제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는 것.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학대 정황을 추적했다. 전문가 소견을 들어 정인양이 장기간 학대를 받았다는데 힘을 더했다. 어린이집 교사와 의사가 3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무혐의 처리된 상황 등을 짚었다. 

SBS 방송이 해당 사건을 다루면서 여론이 폭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온라인상 이미 여론은 들끓고 있었다. 

16개월 입양아 사건은 아동 학대를 막을 수 있었던 여러 상황이 중첩됐지만 어느 하나 쓸모가 없었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집약된 사건이다.

육아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지난해 10월 정인양이 숨지고 사건이 알려진 뒤 학대의 잔혹성과 사건 처리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들은 해당 사건을 한국 사회가 아동 학대 문제를 처리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처럼 엄중히 보고 있었다. 

가해자인 양모가 활동한 카페 게시물의 흔적을 보면 충분히 아동 학대 정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내용부터 지난 8월 EBS ‘어느 특별한 가족’에 입양 가족으로 출연한 영상에서도 정인양의 학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내용까지 후회와 분노가 뒤섞인 내용이 상당수다. EBS 측은 사건 이후 영상을 비공개처리하면서 “제작진은 관련 특집 다큐에서 주요 출연자 가족을 취재하면서 방문하게 된 모임에서 피해 아동을 처음 보았을 뿐, 따로 그 가족을 섭외하거나 인터뷰, 취재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비난 여론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인양을 지켜주지 못한 후회와 분노는 12월 초 검찰이 가해자 양모를 학대 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하고 양부에 대해선 아동 방임 및 학대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면서 폭발했다. 

‘말도 하지 못한 어린 생명이 죽음까지 증명해야 하느냐’며 살인죄 적용을 촉구하고, 서울남부지검 앞에선 시민들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법원에 보낼 진정서를 작성하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여론의 눈엔 아동 학대 문제를 엄벌하지 못하는 공권력 역시 분노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언론은 폭발하는 여론을 따라가지 못하다가 검찰의 학대 치사 혐의 적용에 분노하는 여론에 화들짝 놀란 측면이 강하다. 

▲생후 16개월 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모친 A씨가 11월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생후 16개월 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모친 A씨가 11월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육아 카페에서 가장 많이 올라온 게시물 내용은 경찰서에 신고했는데도 무혐의 처리된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번째 어린이집에서 정인양 몸에 멍을 발견해 신고했다. 두번째 가해자 양모가 정인양을 차에 혼자 두었다는 신고가 있었다. 그리고 정인양을 진료했던 소아과 원장도 학대가 의심돼 신고했다. 모두 3차례 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은 번번이 가해자 부모의 ‘학대가 없었다’라는 일방적인 증언만 듣고 무혐의 처리했다. 공권력 무능력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진 것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설명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경찰청은 12월초 사건 처리 담당자 등 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경고와 주의 처분을 내렸지만 여론은 정인양 학대 사건의 ‘공범’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뒤늦게 경찰과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로 두 번 이상 경찰 등에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 아동을 학대 가해자로부터 분리 보호하는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지만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잠재우지 못했다. 

이에 유승민 전 의원은 “정인이 앞에도 수많은 정인이들이 있었다. 그 때마다 아동학대의 참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지금도 어린 생명이 부모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현실이 부끄럽고 죄스럽다”며 “세 번이나 신고했는데 왜 경찰은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법과 제도, 감시와 대응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아동학대와 비극을 막지 못했는지, 이번 만큼은 철저히 파헤쳐서 잘못된 법이든 시스템이든 관행이든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아기가 한걸음씩 걸음을 떼고, 말문을 트고, 먹는 재미를 알아가는 생애 가장 반짝거릴 시기에 지속적인 학대를 넘어 고문을 해왔는데 왜 우리 사회를 이를 막지 못했는지에 크나큰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해당 사건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하루에도 몇번씩 정인이 생각에 울컥한다는 A씨(39)의 말이다. A씨는 “해당 사건으로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을 우려한다. 다만 입양 과정에 있어서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고, 입양 후에도 아동이 가정 내에서 잘 생활하는지 관리하는 법적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이 지금이라도 분노어린 여론의 지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경찰 무혐의 처리 과정상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더 세심하게 문제를 짚고, 가해자 부모의 법적 처벌 과정상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언론이 검증해야 한다. “전 오늘 하루종일 ○○이 생각만 하게 됩니다"라는 어느 누리꾼의 말이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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