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편파적인 방송을 하겠습니다. 다만 그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9년 한겨레TV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오프닝에서 진행자 김어준씨가 한 말이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특유의 ‘김어준 방송’ 철학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레거시 미디어들이 정파성을 짐짓 감추고 공정과 균형을 부르짖는 위선을 보일 때 김어준 방송은 도리어 편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취재를 가미해 이른바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고, 권력을 풍자하고 민낯을 드러낸다. 이명박 시절 팟캐스트 ‘나는꼼수다’가 성공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2016년 9월 그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맡아 4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무대만 제도권 언론으로 바뀌었을 뿐 김어준 방송 기본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의 ‘시사 놀이터’에 초대 받은 패널들은 주인공 김어준을 빛내는 조연 역할에 그칠 때가 많다. 무표정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가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오른쪽)와 청취자들. 사진=TBS 제공.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오른쪽)와 청취자들. 사진=TBS 제공.

경쟁 매체가 없을 정도의 압도적 영향력 만큼 김어준에 대한 편파성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정의연 비판 기자회견에 배후가 있다거나 코로나19 국면에서의 ‘대구 사태’ 발언 등으로 논란을 불렀고, 지난 10월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정감사에선 뉴스공장 법정 제재가 2018년 이후 6건에 달한다는 공방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미디어국은 연일 뉴스공장을 겨냥해 “극단적 편파방송의 공정 방송화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과거 조선일보 만큼이나 뉴스공장이 진보 진영에 미치는 힘이 강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보수 언론 외엔 견제 세력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진보적 언론단체들도 뉴스공장보다 주로 보수신문과 종합편성채널의 편향성 비판에 주력한다.

최근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유죄 판결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무력화하는 행정법원의 집행정지 인용 등 이슈에서 김씨 발언은 특히 더 거칠었다. “사법이 법복 입고 판결로 정치를 했다”거나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 검찰총장 임기를 보장해줬다”며 사법부를 크게 비난했다. 판사가 답을 이미 내려놓고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다.  

유튜브 ‘다스뵈이다’에서는 수위가 더 높았는데 “죽어봐라 이 새끼들아, 이런 식의 판결”이라거나 “결론을 낸 뒤 재판을 요식행위로 진행했다”고 비판했고, 일련의 사법 판단은 “단순한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저쪽의 반격”이라면서 다시 진영논리를 끌어왔다.

깨어있는 시민과 기득권 대결이라는 선악 구도는 분노한 지지층을 결집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진영논리는 A4 용지 575쪽 분량으로 남은 재판부(정경심 재판)의 고민과 합의의 결과물을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휴지조각으로 전락시킨다. “경력 20년 전후 판사 3인이 참여한 재판부의 탄생 과정이나 운영 특징을 알고는 있는지, 그들이 합의에 도달해 작성한 A4 용지 575쪽 분량의 판결문을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긴 했는지 의문이다.”(한국일보 29일자 ‘지평선’ 중)

이런 논란에 내년 서울시장 재보선에 ‘김어준 TBS 퇴출’을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페이스북에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는 TBS 개혁과 김어준 퇴출을 공약으로 내세워주기 바란다.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특정 정파를 대변하는 방송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 “특정 정파 방송이 된 TBS를 개혁해 시민의 방송으로 돌려주는 일은 차기 시장 몫이 되겠지만, 우선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프로그램은 당장 중단하도록 서울시 차원에서 조치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도 썼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야권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교통방송에 교통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개 방송인'이 정치적 망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의 교통방송 지원금 중단과 김어준 방송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과하다고 생각한다. 제작진과 출연진 의사와 무관한, ‘정치’에 의한 방송 폐지와 출연자 퇴출 폐해는 이미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망가진 공영방송을 통해 수차례 목격했다. 제작·보도 자율성은 시민사회가 공유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명시한 방송법은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방송법은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의견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어준 방송’이 되돌아봐야 대목이다. 표창장 위조만으로 중형이 선고된 것이 아님을, 법무부의 검찰총장 징계 절차에 하자가 있었음도 구체적으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 방송 영향력이 큰 만큼 걸맞은 책임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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