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지난 5일자로 주용중 전 TV조선 보도본부장을 조선일보 편집국장에 임명했다. ‘편집국장 인사’는 조선일보 창간 100년을 맞은 올 한 해 조선일보 안팎으로 눈과 귀를 끌어모은 이슈였다. 몇몇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선택은 주용중 편집국장이었다. 주 국장은 취임사를 통해 “정체성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혁신을 예고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3층 편집국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주 국장은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기자로서 남은 인생을 여기서 활활 불태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TV조선 보도본부장으로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주도했던 것에 대한 소회,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조선일보 비판·비난에 대한 생각도 허심탄회하게 전했다. 그는 “건설적 비판은 수용한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적지 않다”고 했다.

▲ 주용중 조선일보 신임 편집국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3층 편집국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주용중 조선일보 신임 편집국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3층 편집국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2016년 4월부터 TV조선 보도본부장을 역임하고 4년7개월 만에 신문으로 돌아왔다. 소회가 듣고 싶다.

“방송 보도 책임자에 이어 신문 보도 책임자를 맡게 된 데 대해 기자로서 더는 여한이 없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안도현 ‘너에게 묻는다’)가 있지 않나? 연탄은 자신을 완전 산화하는데, 당신은 얼마나 절실하느냐는 물음이다. 기자로서 남은 인생을 여기서 활활 불태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게 내가 속한 공동체 조선일보에 대한 책임이다.”

- ‘미스터트롯’ 열풍 등 TV조선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메인뉴스 ‘뉴스9’ 시청률도 9%를 돌파했다. TV조선에서의 4년7개월, 이에 대한 평가는?

“TV조선 보도본부장으로 4년7개월 있었다. 제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시청률이나 영향력, 신뢰도 부문에서 크게 좋아졌다. 떠난 사람이지만 여전히 시청자들이 사랑해주신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기자 질문: 성장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TV조선은 권력을 가리지 않고 할 말을 했다. 권력을 비판하는 그런 자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시청자 신뢰를 받게 된 게 아닌가 판단한다.”

- TV조선 보도본부장 시절 2016년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이끌었다. 그 당시 보수진영 지지자들은 TV조선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때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우리 언론인, 기자들은 팩트를 다루는 직업이다. 어떤 팩트는 당사자를 괴롭게 하고, 때로는 기분 좋게 만들기도 한다. 또 어떤 팩트는 기사를 쓴 기자나 언론사를 괴롭힌다. ‘최순실 게이트’는 불편한 팩트였지만 보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팩트였다. 그 불편은 우리가 충분히 감수해 지금은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TV조선)는 2018년에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그때도 집권 여당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 당시 그런 압박이 힘들고 불편했지만 역시 그것도 잘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팩트는 팩트대로 보도할 때 ‘이 언론사는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보도한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편집국장 임명을 하면서 따로 전한 말은 없었나? 무엇을 주 국장에게 기대하고 임명한 것이라 보고 있나?

“사장께서 제게 한마디만 하셨다. ‘신문 잘 만들고 디지털 미래를 열어달라.’ 이미 언론은 융복합 시대를 마주한 지 오래다. 우리도 신문 1등, 방송 1등, 디지털에서도 명실상부한 1등이 되는 것이 과제다. 신문의 경우 전체 미디어 시장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런 복합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신문에만 있던 사람보다 방송 경험이 있는 사람이 참신한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신 게 아닌가 한다. 아울러 내년 재보선, 내후년 대선 등 향후 정치 시즌이 펼쳐진다. 정치부 경험이 많은 편인데, 정치 시즌에 안정적으로 지면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 취임사에서 ‘기자 인플루언서’, ‘기자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했다. 구체적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보다 지면에 힘을 빼는 것인가?

“‘기자 인플루언서, 기자 크리에이티브’ 언급이 꼭 디지털에 국한한 이야기는 아니다. 팩트는 노력으로 찾을 수 있지만 그 팩트를 요리하는 데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똑같은 팩트여도 그걸 어떤 제목으로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기자 능력과 언론사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창의력을 발휘해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조선미디어그룹이 가진 플랫폼은 다양하다. 어느 기자는 그 능력을 지면에 활용할 수 있고, 어떤 기자는 디지털에 강점을 보일 수 있다. 다양한 플랫폼 위에서 자기 적성과 능력에 따라 영향력과 활동 공간을 충분히 넓힐 수 있다. 조선일보 지면의 경우 다른 경쟁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 장점을 포기하지 않고 중시하면서 디지털을 강화할 것이다.”

- 언론사 다수가 독자들의 고령화를 고민한다. 조선일보 독자는 특히 더 고령층일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독자층 분석이 이뤄지고 있나?

“아무래도 신문은 젊은 층보다 중장년이 많이 보는 게 사실이다. 다만 디지털 콘텐츠를 일례로 보면, 45세 미만 디지털 독자가 45%를 차지한다. 콘텐츠 소비에 대한 연령 제한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연령대별로 어떤 콘텐츠를 원하느냐, 정밀하게 더 분석할 필요가 있다. 취임사에서 ‘서비스 저널리즘’을 언급했는데 불특정 다수가 아닌, 돈을 내고서라도 우리 콘텐츠를 기꺼이 소비할 수 있는 이들을 겨냥해야 한다. 에버그린 콘텐츠부를 신설했는데, 이 역시 독자들이 항상 찾는 콘텐츠를 기획해 새 독자층 유입을 높여보자는 취지다.”

- 언론사들은 자사 뉴스룸에 새로운 디지털 실험을 시도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로 신문 제작을 우선하는 고령의 간부들이 꼽히곤 한다. 젊은 기자들의 참신한 시도를 위에서 가로막는 문제다. 조선일보도 이런 조직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은데?

“사장께서 제게 사령장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였다. 나이가 들면 습관에 의지하기가 쉽다. 그러나 인간은 얼마든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TV조선 홍두표 회장(1935년생)도 연세가 있지만, 콘텐츠의 기적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KBS 사장을 지냈던 때(1993~1998년)와 지금 방송 환경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지난 15일자 인사를 통해 편집국 산하에 4개의 부·팀을 신설하고, 산업 1·2부를 통합했다. 에버그린 콘텐츠부, 데이터저널리즘팀, 뉴스레터팀 신설 등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 조직 개편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 신문은 과거부터 경제와 문화에 강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전통을 살려서 젊은층, 중년층이 경제와 문화 부문에서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 다시 살펴보자는 차원이다. 우리가 디지털로 간다고 목표를 세웠을 때 단순히 조회수를 늘리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그건 분명 아니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유료화의 성공 모델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그곳으로 가려면 사람들이 돈을 지불해서라도 보고 싶어하는 독자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 주용중 조선일보 신임 편집국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3층 편집국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주용중 조선일보 신임 편집국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 3층 편집국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올해 초 ‘724팀’이 꾸려져 속보를 담당하고 있다. 속보에 치중해 오보가 많아졌다는 느낌을 독자로서 받기도 했다. 이 부분 점검하고 있는지?

“다시 이곳으로 온 지 한 3주 됐는데 그런 경우가 몇 건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고 데스킹 과정도 부족하다보니 실수가 있었다. 우리가 종이신문 2면에 정정보도를 과감하게 내고 있다. 앞으론 온라인에서도 잘못이 있으면 솔직하게 정정하려고 한다. 단순히 속보를 양산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독자들이 ‘이건 조선닷컴에만 있는 기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사를 각 부서에서 제공하면, 지금보다 단신·속보 비중은 줄어들 것이고 오보 역시 줄일 수 있다.”

- 조선일보 노동 강도는 신문사 가운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기자들의 과부하다. 이 부분 개선 방안이 있나?

“일선 기자들 고충을 많이 들어보려고 한다. 근무·평가 시스템을 이번에 완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획부’를 신설했다. 기획부는 소통 혁신을 하는 부서다. 기자가 컨베이어 벨트의 한 과정을 담당하는 근로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 원칙은 주 52시간 제도를 지키면서 구성원들이 신나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 평기자 인사에서도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소통은 못했지만 30명 넘게 통화하며 부서 배치, 장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코로나가 진정 되는대로 그룹별로 만나서 기자들 이야기를 들어볼 것이다.”

- 시사IN이 매년 진행하는 신뢰도 조사에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이 가장 불신하는 언론매체 1·3위를 기록한 적 있다.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은?

“같은 시사IN 조사에서 TV조선 신뢰도(가장 신뢰하는 방송 매체)는 2017년 1.8%에서 2020년 10.1%로 급증했다. 그리고 조선일보 신뢰도도 올해 기자협회 조사(기자들이 꼽은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를 보면, 조선일보가 1등으로 나온다. 신뢰도에 관해 좋았던 조사와 그렇지 않았던 조사도 있겠지만 타 언론사에 뒤처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언론사라도 언론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신뢰도 제고는 필수적이다. 조선일보가 올해부터 1~2면에 팩트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언론 지형은 양극화해 있다. 언론사들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어떻게 하면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지혜와 비전을 제시할지 고민해야 한다.”

-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거세다. 예를 들면 뉴스타파는 오는 31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개봉한다. 진보 언론단체들은 끊임없이 조선일보 정파성을 지적한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회동 여부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비판과 논란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듣고 싶다.

“우리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수용한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윤 총장과 방 사장의 회동 논란에 관한 문제제기 관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윤 총장의 만남을 징계 사유로 꼽았는데 정작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윤 총장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나? 본인이 대통령 메신저를 만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여권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지 않았겠나? 단순히 만남만으로 논란이 되는 건 과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건설적인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수용한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현 정부 ‘언론개혁’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여러 언론 유관기관들이 반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의견을 덧붙이고 싶진 않다. 다만 우리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크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만큼 책임을 가져야 하지만 언론이 제 기능을 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한다. 소위 진보정권에서 왜 이렇게 신문이나 방송에 대한 (제재 같은) 것들이 많은지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 주용중 체제에서의 조선일보, 어떤 점을 지켜봐야 하나?

“임기 동안 디지털 분야에서 희망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우리 조선일보를 전체 미디어 시장의 허브로 만들 것이다. ‘지혜의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매체로 더 품격있게 만들고 싶다.”

- 끝으로 미디어오늘의 언론 비평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언론도 비판 대상이 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 비판이 편 가르기식 비판에 치우치거나 본의와는 달리 언론의 양극화를 부추긴 측면은 없는지 되돌아볼 구석도 있다고 생각한다.”

- 조선일보에 비판적 언론사로 평가 받는 미디어오늘 인터뷰를 선뜻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디어오늘 주요 비평 대상이 조선일보에 집중된 면이 있어 불편했을 수도 있을 텐데?

“미디어오늘은 언론 비판 이외에 디지털미디어와 뉴미디어, 언론산업 미래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이정환 대표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걸로 안다. 대한민국 언론이 새 시대를 열어가고 활로를 찾기 위해선 네 편, 내 편을 가리지 않고 합심할 건 합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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