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1일부터 매주 공개되는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 ‘며느라기’가 누적 조회 수 600만뷰를 돌파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며느라기’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인 민사린(박하선 분)과 무구영(권율 분) 커플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를 위트있게 그려낸 드라마다. ‘며느라기’는 주인공 사린의 시선에서 시부모님과 시누이, 형님과 아주버님과의 관계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와 심리적 갈등을 위트있게 다루면서 오랜 시간 당연하게 지속되어 온 시월드와 ‘며느리’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며느라기’의 원작은 수신지 작가의 동명웹툰으로 이미 2017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2017 만화가 협회장상’, ‘2018 올해의 성평등문화상’ 등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수신지 작가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며느라기’에 대한 설명을 웹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대.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고.”  - 웹툰 ‘며느라기’ 14화 중에서

▲며느라기 웹툰.
▲며느라기 웹툰.

‘며느라期(기)’의 시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10년 넘게, 혹은 평생을 “제가 할께요”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 할께요!”라는 슈퍼 파워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불행 중 다행스러운 것은 ‘며느라기’ 속 민사린의 남편은 부모에 대한 효심도 지극하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도 깊어 ‘처월드’에도 최선을 다한다. 웹툰에서는 치킨집을 운영하시는 장인, 장모를 위해 회식과 모임을 주선하고, 서빙까지 몸소 하면서 매출에 기여한다. 물론 시월드에서 고생하는 와이프를 위한 보답의 차원이긴 하지만 오가는 하지만 마냥 희생하고 헌신하는 구식 며느리에 비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장면이다.

사린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모두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해 온 캐릭터들이다. 주부가 조금 더 고생하면 집안이 편하다는 생각으로 남편와 자식, 시댁 식구들까지 건사해왔지만 며느리와 딸에 대한 마음이 똑같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자신의 딸이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시댁의 제사나 명절에는 당연히 며느리가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모순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라기는 ‘82년생 김지영’의 답답한 독백으로 서사를 풀어가지 않는다. 민사린의 형님은 애시당초 시댁의 모든 식구가 함께 제사와 명절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신여성’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시어머니의 산후조리도 마다하고, 전문가에게 케어를 받으며 아이와 친밀감을 형성하겠다고 선언한다. 덕분에 사린은 형님의 빈자리까지 채우며 시어머니와 제사를 준비하고, 노곤해진 몸을 풀러 찜질방도 함께 간다. 함께 돕겠다던 남편은 시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 붙들려 술상 앞에 망부석이 되고, 사린은 자신처럼 고단한 시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총 12부작으로 제작된 드라마 ‘며느라기’도 이제 절반을 넘어섰다. 과거의 전통적 역할에 고정된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 사이에서 ‘며느라기’라는 새로운 인생의 도전장을 받아든 민사린은 과연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낼까? 그리고, 아내만큼이나 처월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린의 남편 구영은 아내를 위해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게 될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달콤쌉싸름한 이별기 ‘웰컴 투 X-월드’

‘며느라기’가 이제 막 시작한 초보 며느리의 입성기라면 지난 10월2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는 남편과 사별한 뒤 18년간 홀로 딸을 키우며 시아버지를 봉양한 고참 며느리의 이야기다. 다큐의 제목만 보면 시월드를 비하한 표현인지, 지나간 과거의 한 시절을 표현한 것인지 호기심이 든다.

‘웰컴투X-월드’는 15학번 대학생 손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할아버지와 엄마의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함께 살기 시작한 감독의 친할아버지는 집안일을 거들지 않는다. 자신의 공간인 안방에 독립된 냉장고를 두고 좋아하는 라면을 쟁여놓고 끓여 드시고, 홀로 TV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반면 남편이 떠난 후 가장이 된 엄마는 강한 생활력으로 집안 경제를 책임져 왔다.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는 늘 관절염과 신경통으로 고생하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식사와 빨래를 챙겨드린다.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생활에 지친 할머니는 근처에 방을 얻어 독립을 한 상태다. 홀로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책임진다. 한태의 감독의 엄마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돌보면서 18년간 시월드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 한 발도 바깥으로 내딛지 않고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다. 그런 엄마를 보며 딸은 ‘비혼’을 선언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나무란다. 감독은 엄마가 왜 결혼이 필수라고 말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상황은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분가’ 요구로 급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엔 막막해하던 엄마는 차츰 독립에 대한 설레임과 희망으로 딸과 함께 부동산 투어를 나선다. 그러나 생각보다 높은 전세값은 엄마를 좌절시키고, “아파트가 저렇게 많은데 우리는 왜 갈 곳이 없니”라고 푸념을 한다. 할아버지와 조금 떨어진 동네로 가보자는 딸의 말에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집을 알아보던 엄마는 결국 시아버지가 계신 아파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에 집을 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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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X-월드’ 영화 포스터. 

여기서 감독은 한 가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는데, 18년 간 좁은 집에서 할아버지와 부대낄 때만 해도 이사 갈 돈이 없어서 함께 산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엄마는 1억이라는 돈을 모아둔 상태였다. 작은 원룸이라도 얻어서 나갈 수 있는 돈이 있었지만 엄마는 분가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지방에서 열리는 친가쪽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감독은 그곳에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게 된다. 아빠의 누나들과 사촌들, 조카들의 환대를 받으며 따뜻한 혈육의 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말해주는 고모, 삼촌들과 그들 사이에서 반가움의 눈물을 삼키는 엄마를 보면서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이사 날짜가 차츰 다가오면서 손녀는 홀로 남을 할아버지를 위해 스마트폰 사용법을 반복해서 알려드린다. 특히 가장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카오톡 사용법에 공을 들인다. 이사 전날, 무뚝뚝하던 할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라면도 꺼내서 챙겨주고, 베란다, 안방 등에서 자꾸 뭔가를 꺼내오며 필요한 건 없는지 묻는다. 평소 대화가 거의 없던 집안 공기는 이미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녀는 드디어 자신들만의 공간이 마련된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 한태의 감독의 엄마 최미경씨의 본격적 X-월드가 시작된 것이다. 자전거를 배우고, 소개팅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 흥미롭다. 다음 생에는 “할아버지와 모르는 사이로 태어나고 싶다”던 엄마는 여전히 한 달에 2-3번 시아버지 댁을 찾아가고, 비혼을 말리던 딸에게는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반면 한태의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깊은 정과 세월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결혼이란 걸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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