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 중 한 명인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감시위 판단이 ‘긍정’이었다는 보도가 최근 쏟아졌다. 그러나 전문심리위원들이 작성한 보고서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혀 다른 결론을 낸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이 기자들에게 ‘참고자료’를 보냈고, 기자들이 이를 그대로 기사화한 정황이 드러났다. 삼성이 유리한 여론 형성을 위해 작업에 나섰던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16일자 경향신문 9면 .
▲16일자 경향신문 9면 .
▲지난 16일자 한겨레 10면.
▲지난 16일자 한겨레 10면.

앞서 경향신문은 지난 15일 전문심리위원 3인 개별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해 “[단독] 삼성 준법감시위 강일원, 14개 항목 ‘부정’ 평가 결론은 ‘중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온라인판으로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강 전 재판관은 평가항목 18개 중 14개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했지만 최종 결론은 중립적·유보적으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한겨레도 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6일 뉴시스 보도를 시작으로 30여개에 달하는 매체가 반대 취지의 보도를 내놨다. 강 전 재판관의 심리 결과는 “세부항목 평가항목 18개 중 긍정 10, 중립 2, 부정 6으로 ‘긍정 평가가 부정의 2배’”였다는 내용이다. “강 변호사가 위원회 활동에 ‘합격점’을 줬다”거나 “준법경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단정적 평가까지 나왔다.

▲16일자 뉴시스 보도.
▲16일자 뉴시스 보도.

30여개의 매체는 헤럴드경제, 아주경제, 시장경제, 파이낸셜뉴스, 이투데이, 더팩트,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매일경제, 이데일리, 더구루, 디지털타임스, 더퍼블릭, 글로벌경제신문, 문화일보, 주간한국, 매일일보, 위키리크스한국, 데일리안, 미디어펜, 아시아경제, 머니S, 뉴스웨이, 뉴데일리, 전자신문, 파이낸셜뉴스, 뉴스1 등이다.

▲강 전 재판관은 삼성준감위에 대해 대부분 부정 평가를 했는데 긍정 평가를 했다는 식의 보도를 한 매체들. 정리=손가영 기자.
▲강 전 재판관이 삼성준감위에 대해 긍정 평가를 했다고 보도한 매체들. 정리=손가영 기자.

그러나 이들 보도가 근거한 평가항목 대부분이 실제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전문심리위원이 근거한 심리기준 18개는 뉴시스를 비롯한 다른 언론보도에 실린 내용과 대부분 다르다. 실제 기준의 대항목을 보면 ①감시위 실효성과 지속가능성(7개 항목) ②계열사 준법감시조직 실효성(7개 항목) ③위법행위 예방 및 감시 시스템(2개 항목) ④위법 행위 사후 조치 실효성(1개항목) ⑤사업지원TF(미래전략실 후신격) 관련 (1개 항목) 등이다. 이는 뉴시스 등이 보도한대항목인 ■법령에 따른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평가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평가 ■강화된 준법감시제도의 지속 평가와 다르다. 

대항목에 딸린 개별 평가항목도 거의 달랐다. ‘감시위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부분을 보면 전문위원은 7개 개별 항목을 나누어 심리했다. 순서대로 ⓐ감시위 설치 및 운영 관련 협약 중 7개 관계사 탈퇴 가능성 및 감시위의 조치 여부 ⓑ감시위 예산과 사무국 인력 안정적 확보 가능성 ⓒ위원 구성 독립성, 소액주주나 직원 대표 참여 가능성 ⓓ관계사 추가 참여 가능성, 미참여 계열사 위법행위 시 감시위 협약 가입 요구 여부 ⓔ경영권 승계 관련 범죄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여부 ⓕ계열사 간 인수합병의 법적 위험을 감시위가 평가, 관여할 방안 있는지 등 ⓖ감시위 권고 사항의 실효적 반영 수단 등이다.

▲실제 재판부가 특검, 변호사 양측 보완 의견 종합해 결정한 기준 평가항목. 빨간색 표시는 삼성 준법감시위에 대한 강일원 전 재판관 평가. 뉴시스가 그래픽으로 만든 평가항목과 전혀 다르다. 정리=손가영 기자.
▲실제 재판부가 특검, 변호사 양측 보완 의견 종합해 결정한 기준 평가항목. 빨간색 표시는 삼성 준법감시위에 대한 강일원 전 재판관 평가. 뉴시스가 그래픽으로 만든 평가항목과 전혀 다르다. 정리=손가영 기자.

 

▲뉴시스가 18개 세부 항목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보도했다. 이 항목들은 실제 항목들과 대부분 다르다. 또 뉴시스가 보도한 세부 항목은 삼성전자가 산업부 기자들에게 제공한 자료에 있는 내용이다.
▲뉴시스가 18개 세부 항목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보도했다. 이 항목들은 실제 항목들과 대부분 다르다. 또 뉴시스가 보도한 세부 항목은 삼성전자가 산업부 기자들에게 제공한 자료에 있는 내용이다.

이는 뉴시스를 비롯한 보도에 실린 기준과 매우 다르다. 이들 보도엔 ㉠사건 발생 이전에 이미 관계 법령에서 정한 준법감시제도 시행 여부 ㉡그런데도 경영권 승계 관련 뇌물 등 위법 행위 발생 ㉢관계사와 협약 미가입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증권도 준법감시조직의 위상·독립성 강화하고 인력 보강 ㉣내·외부 제보시스템 강화, 제보 증가 ㉤새로운 유형의 위험 정의,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활동 등 한계 ㉥합병·증거인멸 사건과 관련한 사실조사 미실시, 고발 임원에 대한 소극적 조치 등으로 항목이 구분됐다. 이는 전문심리위원 3인을 포함해 재판부, 특검, 삼성 측 변호인단도 본 적 없는 기준이다.

강 전 재판관의 총평 역시 ‘긍정’이 아니었다. 준법감시위의 보고서 전문을 보면 강 전 재판관은 18개 기준 중 9개가 미흡하고, 7개는 다소 미흡하다고 밝혔고 1개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명시적으로 긍정 평가를 한 항목은 1개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 삼성전자 준법지원인이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조사를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냐’는 항목에 “취했다”고 답한 부분이다.

▲17일자 한국경제 15면. 한국경제는 강 전 재판관이 대부분 항목에 부정평가를 했는데 상당수 항목에 긍정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17일자 한국경제 15면. 한국경제는 강 전 재판관이 대부분 항목에 부정평가를 했는데 상당수 항목에 긍정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17일자 매일경제 15면. 매일경제는 강 전 재판관이 대부분 항목에 부정평가를 했는데 상당수 항목에 긍정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17일자 매일경제 15면. 매일경제는 강 전 재판관이 대부분 항목에 부정평가를 했는데 상당수 항목에 긍정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어떻게 이런 기사들이 보도될 수 있었을까.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삼성전자 홍보 측이 산업부 기자들에게 강 전 대법관이 긍정 평가를 훨씬 더 많이 했다는 내용을 담은 [참고] 자료를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홍보 측은 “[참고] 강일원, 삼성준감위 독립성·실효성·지속성 긍정평가”라는 제목으로 강 전 대법관은 대체로 삼성준법감시위에 대하 낙관적으로 평가했다는 자료를 배포했다. 또 “강일원 변호사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세부 평가”라는 제목을 달고 18개 세부 평가항목에 대한 내용도 담았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삼성전자 홍보 측이 산업부 기자들에게 뿌린 자료는 뉴시스를 비롯한 다른 기사들의 보도 내용과 똑같았다.

윤종덕 삼성전자 전무는 18일 미디어오늘에 “따로 보도자료를 보낸 건 아니다. 먼저 저희 쪽에 문의해준 기자님들이 있다. 우리에게 (공판에서 있었던) 어떤 부분들을 정리해달라고 취재 요청이 많이 왔다. 그런 요청들이 수시로 있는데 대응 차원으로 정리해서 준 것 같다. 자료를 먼저 배포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윤 전무는 또 “저희는 당시(지난 16일) 보고서 원본이 없었다. 경향신문이랑 한겨레는 있었을 것이다. 보고서 공개는 오늘(18일) 됐다”며 “선후 관계를 확실히 해봐야 한다. 뉴시스 보도를 보고 저희 쪽에서 정리해서 산업부 기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한 건지 확인해봐야 한다. 우리 쪽에서 먼저 작성해서 뿌린 건 없다”고 말했다.

▲삼성. ⓒ연합뉴스
▲삼성. ⓒ연합뉴스

앞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지난 7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5명의 파기환송심 8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 3명(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홍순탁 회계사, 김경수 변호사)이 직접 평가 결과를 밝혔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지난 1월9일 삼성 계열사들의 준법 감시 및 통제 기능을 위해 설치된 기구다. 이 기구가 실효성이 있다고 평가될 경우 이 부회장의 감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심리위원들의 판단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부가 추천한 강 전 재판관은 “준법감시조직의 위상이 강화돼 준법지원인이나 준법감시인이 회사의 주요사항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다”면서도 “삼성물산 합병 관련 형사사건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사건과 관련해 준법감시조직에 의한 사실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고발된 임원들에 대한 조치도 소극적인 점 등에 비춰보면 회사 내 준법감시조직에 의한 최고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유보’적으로 평가한 것.

반면 강 전 재판관에 비해 특검 추천 위원인 홍순탁 회계사와 이재용 변호인 측 추천 위원인 김경수 변호사는 명확한 의견을 내놨다. 홍 회계사는 삼성 준법감시위에 대해 ‘부정’, 김 변호사는 ‘긍정’이라는 평가를 냈다.

지난 7일 공판 이후 법조기자들이 쓴 대부분의 기사는 강 전 재판관의 판단을 ‘유보’라 평가했지만, 지난 16일부터 일부 경제지와 통신사 등의 산업부 소속 기자들이 쓰는 기사들에선 ‘긍정’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서울고법은 지난 18일 전문심리위원 보고서 전문을 게시했다. 

한편 오는 21일 오후 2시 열리는 다음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과 특검 측이 전문심리위원 평가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재판부는 지난 7일 결심공판을 하려고 했으나 특검이 별도 기일 지정을 요구했고, 재판부가 이를 수용해 오는 30일 오후 2시 결심공판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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