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31일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KBS 등 21개 지상파방송사업자 162개 방송국의 재허가를 의결하며 의미 있는 재허가 조건을 달았다. 18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재허가 조건에 따르면 방통위는 모든 지상파에 재허가 공통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올해 청주방송 故이재학PD 사태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방송사별 비정규직(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등) 인력 현황 및 근로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재허가 이후 6개월 이내에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고 그 이행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을 공통 재허가 조건으로 부여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던 방송사 비정규직 규모와 임금체계, 불합리한 노동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앞서 방통위는 전문가 12인으로 재허가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지난달 23일부터 8일간 심사를 진행했다. 재허가 심사위원회는 “프리랜서 처우개선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데 제도마련이 부족하다. 방통위도 비정규직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한열 방송정책국장은 “더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KBS제1DTV 등 160개 방송국이 재허가 기준점수 650점을 넘긴 가운데 재허가 미달점수를 받았던 SBS DTV와 KBS제2DTV(수도권)는 조건부 재허가를 받았다. 700점 이상 사업자는 5년, 650점 이상~700점 미만 사업자는 4년의 재허가 기간을 부여한 가운데 방송평가 점수가 낮고 방송법령위반 감점이 많았던 KBS제2DTV에 대해선 3년의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했다. 

앞서 방통위는 KBS제2DTV와 SBS DTV를 상대로 지난 4일 청문 절차를 진행했다. 이날 KBS는 “변경된 방송평가 기준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다. 재방 비율을 낮추겠다”고 밝혔으며 청문위 측은 “KBS2TV가 공영방송으로서 차별성 있는 제작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영방송으로서 공적책무를 더욱 강화하고 정체성 확립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방통위
▲한상혁 방통위원장. ⓒ방통위

 

TY홀딩스의 ‘SBS 사유화’ 철저한 감독 나설 듯 

방송 광고 등 관련 법령 위반이 많고 콘텐츠 투자에 소극적인 대토를 지적받은 SBS 역시 3년의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했다. SBS는 청문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최대주주의 노력이 외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TY홀딩스로 (SBS 지배구조) 변화 이후 우려의 시선이 있으나 소유·경영 분리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방통위는 △TY홀딩스 지배주주(특수관계자 포함) 및 계열사에 유리한 보도, 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방송이 사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할 것 △TY홀딩스 지배주주(특수관계자 포함) 및 계열사 관련 보도, 프로그램, 협찬, 광고 관련 사항을 방송 관련 학회 등 공신력 있는 외부기관에서 평가받고, 평가결과를 매년 4월 말까지 방통위에 제출할 것 등을 재허가 조건으로 부여했다.

또한 △방송사업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계열회사와의 SBS 콘텐츠 수익 배분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SBS 지주회사와 그 계열사 간 이전거래 가격의 타당성에 대해 종사자대표가 포함된 전담기구의 검토를 거칠 것 △SBS와 SBS 최대주주는 SBS의 재무건전성 부실을 초래하거나 미래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SBS 종사자대표와 함께 자회사 개편계획 등을 포함한 SBS지배구조 개편계획을 성실히 협의할 것을 재허가 조건으로 부여했다. 

이 같은 조건을 두고 안형환 방통위 상임위원은 “재무건전성과 관련해 사원대표와 성실히 협의하라는 조건은 우리 위원회가 개입할 만한 내용인지 의문이다. 과도한 행정개입”이라고 주장했다. 김효재 상임위원 또한 “투자계획을 노조와 상의해서 가져오라는 것인데 무리가 있는 조건”이라며 노조를 겨냥해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방통위는 SBS에 2017년 방송통신위원회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노사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 역시 권고했다.

▲12월18일 방통위 전체회의 모습. ⓒ방통위
▲12월18일 방통위 전체회의 모습. ⓒ방통위

 

“지상파, 공적 책무 소극적으로 인식”

재허가 심사위원회는 “(지상파들이)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공적 책무를 소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방송사의 자체적인 자구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만 구체적 계획이 미흡하다”고 총평했다. 

방통위는 KBS MBC SBS EBS에 △협찬 프로그램에서 협찬주가 판매하는 상품이나 용역의 직접적인 효과나 효능을 다루는 경우 프로그램에서 최소 3회 이상 협찬 사실을 고지하되 광고효과를 주지 말 것 △방송 이후 7일 내 프로그램명과 협찬 상품 또는 용역 명칭 등을 방송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이행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할 것을 재허가 조건으로 명시했다.

방통위는 또한 모든 방송사에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제고 및 취재 보도 윤리 위반 방지 등을 위한 윤리강령을 정비하고 내실 있게 운영할 것을 권고했다. 김창룡 상임위원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윤리강령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그런데 KBS는 2004년 이후 16년간 한 번도 윤리강령을 개정하지 않았고, SBS는 앵커 성추행을 비롯해 출입처 중심 보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고 비판한 뒤 “스스로 지키겠다고 한 윤리강령을 스스로 무시해도 아무 문제 없는 현실에는 방통위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김창룡 위원은 “방송윤리강령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보도 제작가이드라인에 대해선 반드시 교육 시켜야 한다. 이 같은 사안이 지켜지지 않으면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안형환 상임위원은 “KBS·MBC·TBS가 끊임없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이들은 상업방송과 차원이 다른 공영방송”이라며 “많은 시청자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효재 상임위원은 “MBC는 보도 공정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시사·보도에서 일방의 입장을 다루지 않고 중립성 공정성 객관성 갖추기 위해 종사자 인식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정성 시비에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는 TBS에 대해 이번 심사에서 벌점이 0점이라는 건 심사제도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김현 부위원장은 “KBS1TV와 2TV는 동전의 양면 같은 사이다. 재허가 기간을 달리하면 두 방송의 심사를 어떻게 할지 우려스럽다. 하나는 4년, 하나는 3년이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며 심사 기간을 동일하게 4년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양한열 방송정책국장이 방통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에 나선 모습. ⓒ방통위
▲양한열 방송정책국장이 방통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에 나선 모습. ⓒ방통위

 

“재승인 제도 등록제로? 방통위원장 발언 취지는…”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이날 “KBS가 다른 방송과 마찬가지로 재허가심사를 받는 게 타당한지 의문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실에 맞는 심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건지, 전반적인 허가제도 검토가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앞서 한 위원장은 16일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종편·보도채널 등에 대해 허가냐 등록이냐도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양한열 방송정책국장은 전체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현재 허가제는 과거 지상파가 1~2개 있을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같은 방식으로 심사·평가하고 있는데 현재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며 “방통위원장 발언의 취지는 미디어 상황이 급변하는 추세에 맞춰 종편과 보도PP를 포함해 전반적인 허가제와 평가제를 검토하자는 취지였다. 지금 당장 종편승인제도를 등록제로 변경하겠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양 국장은 “등록제 변경은 구체적으로 검토 한 바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KBS 허가제 폐지를 포함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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