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방송계 종사자 노동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JTBC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22일째다. 이들은 JTBC 드라마 현장에 ‘3개월 단위 624시간’ 기준의 탄력근로제가 준용되면서 스태프들이 주 52시간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5개 단체는 1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시간 제한 없는 일방적 ‘3개월 탄력근로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한빛센터는 올해 장시간 노동을 토로한 드라마 스태프 제보 5건을 접수했다. ‘사생활’, ‘18어게인’, ‘언더커버’, ‘지금 우리 학교는’, ‘간 떨어지는 동거’ 등의 5개 드라마 스태프들이다. 앞의 3개는 JTBC가 방영했고, 나머지 2개 드라마는 JTBC 산하 계열사가 제작 중이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5개 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전국영화산업노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5개 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한빛센터는 “모든 제보 공통점이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였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제는 노동시간이 유동적인 업종을 고려해 일정 기간 동안의 평균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JTBC가 제작하거나 방영하는 드라마 현장에선 ‘3개월 624시간’ 탄력근로제가 도입됐다. 3개월간 총 노동시간만 규제했다. 624시간은 주당 52시간을 기준으로 12주(3개월)를 곱한 값이다. 한빛센터는 “이에 따라 여전히 스태프들이 하루 18시간까지도 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빛센터는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제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거쳐야만 시행 가능하다. 시행해도 하루 12시간,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JTBC는 이를 모두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직결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용역계약서’를 써서다. 스태프들은 법 위반을 신고하려 해도 노동자성부터 확인받아야 한다. 지난해 KBS 4개 드라마 현장을 근로감독한 고용노동부는 그해 7월 일부 감독급 스태프를 제외한 대부분의 스태프들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1년이 지났지만 근로계약을 맺는 제작사는 아직 찾기 힘들다. 근로계약 체결을 독려하는 방송사도 없다. 

김한별 방송작가지부 부지부장은 “약자의 편에 서고 공정한 방송을 하겠다는 JTBC이지만, 그동안 JTBC 드라마 현장에서 벌어졌던 크고 작은 사고들이 기억난다. 부족한 수면에 장시간 노동하는 상황에서 사고가 안 나길 바란다면 모순”이라며 “JTBC 보도국 작가들은 아직 계약서 한 장 없이 일한다. 노동자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하는 작은 의무들을 다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를 보도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방송계 특성상 노동시간이 유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안병호 영화노조 부위원장은 “영화계는 주 52시간에 맞춰 촬영 일정을 마련하고 근로기준법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화는 되는데 방송은 안 된다? 이 말은 설득력이 없다”며 “방송사들은 핑계를 그만대고 근로기준법을 어떻게 준수할 건지부터 상생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기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드라마 현장은 과로사 등 산재 위험이 높다. 장시간 불규칙 노동에 수면부족, 촬영 현장의 긴장감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요인”이라며 “지난해, 오랜 싸움 끝에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특례업종에서 방송업이 빠졌지만 다시 노동시간 규제 없는 탄력근로제가 도입된다. JTBC 현행 계약서는 스태프 건강권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전국영화산업노조 등 5개 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전국영화산업노조 등 5개 단체는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JTBC은 지난 10일 한빛센터에 공문으로 입장을 밝혔다. JTBC는 “주 52시간제는 매번 다른 환경으로 콘트롤하기 어려운 드라마 제작에서 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효율적인 스케줄 및 제작비 운영, 스태프 용역료 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마련한 게 지금 운영 중인 제작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JTBC는 실제 제작사가 스태프들과 협의한 결과 “드라마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연출진, 기술스태프, 미술스태프 등 모든 제작진에게 이로운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반겼다”며 “JTBC는 촬영일 사이 8시간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주 2일 휴게일도 보장한다”고 반박했다.

JTBC는 또 “절대적인 주 52시간제 적용은 드라마 양과 질 모두에 막대한 지장을 줘 드라마 제작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며 “방송사와 제작사는 장기화한 제작 기간에 따른 제작비 조정, 효율적 일정 운영을 모색하고, 스태프는 용역 시간에 비례한 용역료 감소와 다른 스태프들과의 노동시간·강도 조절에 따른 촬영 시간을 고려하며 모두가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빛센터는 이에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나 경제인총연합회에서 줄기차게 제기하던 논리다. 오랜 시간 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를 양산한 상황에서 임금 체계를 비롯한 노동조건을 고치지 않고 노동시간만 단순히 줄여 이런 계산이 가능한 것”이라며 “드라마 제작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는 위협적 발언을 중단하고 노동권을 위한 법률을 성실히 이행하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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