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 특수고용직, 1인 독립계약자(프리랜서) 등 정규직과 고용 형태는 다르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이른바 ‘비전형 노동’이 다변화하는 가운데, 노동자성을 증명하는 법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자는 지적이 나왔다. 비전형이란 분류부터 특정 형태의 노동만 ‘표준 노동자’로 삼는 편향이 깔렸다는 지적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 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에서 ‘한국식 ABC 테스트’ 도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ABC 테스트는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물류업체 다이나맥스(Dynamex) 배송 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내세운 검증 요건이다. △사용자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로울 것(A) △하는 일이 사용자의 통상 업무가 아닐 것(B) △사용자와 같은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별개의 영업·직업을 소유한 자일 것(C) 등이다. 대법원은 “ABC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독립 사업자’로 볼 수 있다”며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 돌렸다. 

▲12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 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12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 기준 및 비정규직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권 교수는 입증 책임의 전환을 “무엇을 원칙으로 보고, 무엇을 예외로 볼 것인가 문제”라며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근로자라고 입증을 요구하는 건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가정을 전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ABC 테스트는 “일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근로자로 추정되고, 이 추정에 반대하는 당사자가 입증 자료를 제출하라는 방식”이라며 “노동자성 판단의 실질적 쟁점이 ‘종속성이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종속성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자료 제출 책임을 누가 부담하는가’란 점을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종속성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여부를 가리는 핵심 기준이다. 대법원은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계약 형식을 떠나 당사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한 ‘종속 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했는지를 봐야 한다며 종속관계 기준을 크게 8개 쟁점으로 구분했다. △업무 내용을 회사가 정하고 인사규정을 적용받아 회사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지 △회사가 근무 장소와 시간을 정해 구속하는지 △자기 작업 도구를 갖고 제3자를 고용해 일을 시키는 등 독립 사업을 영위하는지 △일을 통한 이윤 창출·손실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는지 등이다.

권 교수는 종속성 의미 또한 사회 변화에 따라 변했다고 짚었다. 과거엔 사용자의 구체적 지휘에 방점을 찍은 ‘인적 종속성’이 강조됐지만 지금 이 기준은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들을 법의 사각지대로 몰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령 관련 소송에서 명시적인 지휘·감독 여부를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다.

▲발제자로 나온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 교수.
▲발제자로 나온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 교수.

 

권 교수는 최근엔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사용자가 일방으로 정한 근로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종속성’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고 밝혔다. 특히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기술 발전으로 사용자들은 노동과정을 직접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그 결과를 평가하고 보상을 정하는 방식으로 노동 과정을 직접 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인적 종속성’ 기준에선 근로자로 보기 어려운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와 관련 “자본주의 여명기에는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 중에 자기 도구를 가져 온 사람도 있고, 맨몸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 거고, 근로자와 비근로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때는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가정이 타당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시대착오적 논리”라고 비판했다. 

ABC 테스트, 방송계 적용해보면…

이와 관련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1일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크라우드노동자’(Crowdworker) 노동자성 인정 판결을 조명했다. 크라우드노동은 플랫폼 노동의 한 종류다. 독일에서도 자영업자로 간주된 이들이 상급 법원에서 법적 노동자로 인정받은 것. 

박 교수는 독일 연방노동법원이 업체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주목했다고 말했다. 종사자가 업무 성과를 내면 포인트가 쌓여 등급이 올라가고, 높은 등급에선 더 다양한 업무와 높은 수수료 등으로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구조다. “독일 법원은 이 체계에서 종사자의 노동이 사실상 사용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적으로 종속돼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석했다”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독일 정부도 지난달 27일 플랫폼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플랫폼경제에서의 공정한 노동’ 방침을 내놨다. 박 교수는 “플랫폼사업자를 고객, 플랫폼 사업자, 플랫폼종사자 등 3자 관계에서 조종 역할을 맡는 ‘노동플랫폼’으로 보고 강한 책임을 부과하겠다 밝혔다”며 “1인 자영업자인 플랫폼 노동자를 연금보험에 가입케 하고, 근로관계에 대한 정황 증거를 제시하면 사업자가 근로관계가 없었다고 증명하게끔 입증 책임도 완화하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도 특수고용직, 독립계약자(프리랜서) 등을 남용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사진은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갈무리.
▲방송도 특수고용직, 독립계약자(프리랜서) 등을 남용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사진은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갈무리.

이 같은 분석은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직을 남용하는 방송계에 시사점을 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50개 공공부문 방송사의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 비율은 전체 인원의 42%였다. 전체 1만5227명 가운데 프리랜서는 15.9%(2659명),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14.5%(2215명), 기간제는 4.2%(665명) 등을 차지했다. 

최근엔 대표적인 특수고용직군인 방송작가들이 노동자성을 확인하는 싸움에 나섰다. 10년 간 MBC에서 일하다가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돼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보도국 작가 2명 사례다. 이들은 형식상 프리랜서였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업무를 관리자 통제를 받으며 했다고 주장한다. 

서울지방노동위는 이들 신청을 모두 각하했다. 판결서엔 작가가 직접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주요하게 담겼다. 인사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고, 사용자로부터 근태 관리나 인사평가도 받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온 홍종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장기적·거시적 관점과 기업의 일자리 창출 측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섬세한 검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특수형태 종사자는 스스로 노무 제공을 선택할 수 있고, 근무시간을 자율로 정하며 업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계약에 따른 수수료 등을 소득원으로 하는 등 근로자와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로 활동한다. 전통적 노동법 적용이 아니라 거래상 불이익 등을 전제로 한 경제법적 측면에서 (보호를) 강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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