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에 대한 온라인 성착취를 근절하려면 온라인 접촉과 물리적 만남에 구분을 두지 않고 온라인을 포함한 그루밍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 비영리단체의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시는 14일 ‘제2의 n번방 사건 방지를 위한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현황과 대응 국제 심포지엄’을 온라인 생중계로 열었다. 각국 비영리단체와 정부기관, 업계는 각국이 아동청소년 성착취 행위와 콘텐츠에 대응하는 현황을 공유했다.
비영리단체 ‘클리아(CLIA)’의 슈와이슈와이 니우 활동가는 이 자리에서 “국제협약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현행법상 아동과의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만남, 또는 그러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물질적 행위를 범죄의 요건으로 규정한다”며 “그러나 접촉 여부와 무관하게, 또는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그루밍을 독자적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등록된 중국 비영리단체 ‘클리아(CLIA)’는 중국과 아시아 내 아동 관련 보호법 개혁 활동을 하고 있다.
슈와이슈와이 활동가는 “국제법 문서를 포함해 다수 국가의 현행법상 온라인 그루밍에 대응하기엔 공통적 취약점이 있다”며 “범죄 요건으로 아동과의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만남, 또는 그러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물질적 행위를 규정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유럽평의회의 란사로테 협약은 2017년 ‘성적 목적으로 아동을 유인하는 행위’로 그루밍 개념과 구성요건을 정의했다. 2011년 시행된 EU 지침 93호도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성적 동의 연령에 달하지 않은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해당 아동을 묘사하는 아동 음란물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슈와이슈와이 활동가는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하게 발전하고 이에 따라 급증하는 온라인 범죄 양상을 고려하면 이 같은 규정은 우려스럽다”며 ‘성착취 및 성학대로부터 아동 보호를 위한 용어지침’을 인용했다. 지침은 “성적 목적의 아동 유인의 정의가 신체적‧직접적 만남을 시도하거나 그것이 발생했을 경우만으로 국한해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오늘날 수많은 그루밍 사례에서 아동은 온라인에서 성적 학대와 착취를 당하며, 이 때 만남은 온라인상의 만남”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클리아가 온라인 그루밍 관련 독자적 법제를 가지지 않은 중국에서 발생한 성범죄 판례 가운데 그루밍 과정이 포함된 사례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해자가 온라인 플랫폼이나 커뮤니티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경우가 총 69건 중 61%에 달했다.
그는 “그루밍 결과로 발생하는 행위가 이미 범죄로 규정돼 있고, 그루밍 범죄의 정확한 발생 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워 이를 범죄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만약 그루밍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게 될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는 “이는 곧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권력 불균형을 낳아 가해자에게 그루밍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 한편 피해자가 피해를 거부하지 못했다는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는 피해자를 벌하고 비난하는 결과로 이어져 아동의 최선의 이익과 상충한다”고 했다.
슈와이슈와이 활동가는 현행 관련 법제의 또다른 취약점으로 ‘성적 동의 연령 제한’을 꼽았다. 그는 “그루밍을 다루는 일부 법제는 성적 동의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행위만 범죄로 규정한다”며 “이는 해당 연령 기준선을 넘었지만 여전히 착취적 상황으로 유혹 또는 조종당할 수 있는 아동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적 목적의 아동 그루밍 관련 법제는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슈와이슈와이 활동가는 “직접적인 성착취와 학대 관련 법제를 갖추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루밍을 규율하는 구체적 제재 조항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그루밍 개념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사후 효과적 이행을 보장하고, 추가적 아동 착취 피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법제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려는 의도와 무관하게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음란물을 보여주거나 아동을 타락시키는 행동도 범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은 행동은 성적 소통에 대한 아동의 거부감을 없애는 그루밍 과정의 중요한 단계이며, 아동 성착취로 이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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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실종착취아동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63개국이 성적인 목적의 온라인 아동 그루밍을 다루는 법제를 갖추고 있다. 133개국은 가지고 있지 않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이 그루밍을 독자적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는 정보통신 기술 관련 법규에 ‘인터넷 이성소개사업을 이용해 아동을 유인하는 행위’(일본)과 2000 정보기술법 세부 조항으로 관련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이 같은 조항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유인하거나 권유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온라인 그루밍’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난 6월 발의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적 유인, 권유 행위’를 △19세 이상의 사람이 성적 목적의 대화를 하거나 해당 대화에 참여시키는 행위 △성교·자위 행위 등을 하도록 유인·권유하는 행위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려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정보통신망을 통해 이런 행위를 한 자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