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2월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가 만든 ‘감염병 보도준칙’에는 “감염병의 규모, 증상, 결과에 대한 과장된 표현은 자제한다”,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간다” 등을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언론에선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어기며 자극적인 보도를 생산했다. 

[관련기사 : 이런 코로나 기사는 ‘TMI’]
[관련기사 : 감염병 보도준칙에서 피하라는 표현, 모두 언론이 사용]

이에 언론계에선 문제의식을 느끼고 감염병 보도준칙을 다시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이 지난 4월말 ‘감염병 보도준칙’을 발표했는데 역시 과장된 표현이나 기사제목에 쓰지 말아야 할 단어로 패닉, 창궐 등을 규정했다. 

▲ 12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 앞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 12월14일 오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 앞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감염병 보도준칙의 문제의식은 감염병 확산을 마치 스포츠경기 중계하듯 전하며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기사를 지양하자는데 있다. 과학·의학에 기반한 보도를 해야하기 때문에 부정확한 정보나 과장된 표현이 아닌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담아야 하고 감염 가능성 등에 대해 출처없는 보도가 아닌 감염병 전문가의 의견을 담자는 취지다. 

최근 3차 대유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코로나에 대한 불안이 커진 가운데 감염병 보도준칙에서 쓰지 말라고 표현한 ‘패닉’ ‘공포’ ‘대란’ 등이 담긴 기사제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감염병 보도준칙에서 자제할 것을 권고한 표현을 사용한 기사제목들
▲ 감염병 보도준칙에서 자제할 것을 권고한 표현을 사용한 기사제목들

 

“15일부터 서울 등교 중단…수도권 확진자 ‘패닉’에 학교도 올스톱”(뉴스핌 13일)
“부산 주말동안 103명 신규 확진 ‘패닉’…극에 달한 공포감”(파이낸셜뉴스 13일)
“청하도 코로나19 확진…가요계 패닉”(이데일리 7일)
“김장모임·요양원 이어 교회까지…충북 제천 덮친 ‘코로나 공포’”(연합뉴스 13일)
“연말 ‘셧다운’ 공포...“왜 호미로 막을걸 가래로 막나””(서울경제 13일)
“코로나 대란에도 국시 불가 고집…내년 의사 2700여명 증발” (한국경제 14일)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지 11개월째이고, 해당 감염병 보도준칙을 만든 지 8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를 따르지 않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14일자 두 신문의 언론보도를 비교해보자. 

국민일보 3면 ‘“연말모임 모두 취소…출퇴근길 자체가 공포” 시민들 패닉’이란 기사는 감염병 보도준칙에서 제목에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한 ‘공포’와 ‘패닉’을 사용했다. 부제에선 “재난영화 속에서 사는 것 같다”는 한 시민의 의견을 썼다. 기사는 “많은 시민들이 ‘코로나 패닉’에 빠져들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로만 구성했다. 보도준칙에서 강조한 예방법이나 어떠한 객관적인 수치 등은 없었다. 사실상 불안을 조장하는 기사로 볼 수 있다. 

같은날 서울신문 3면 ‘“하루 확진 곧 2000명”…3단계·전국민 멈춤 더 늦춰선 안 된다’를 보면 취재원이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 정세균 국무총리,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등 정부 방역당국 관계자나 감염병 전문가들이다. 

▲ 14일자 국민일보 기사(위)와 서울신문 기사
▲ 14일자 국민일보 기사(위)와 서울신문 기사

 

기 교수가 서울신문에 “일일 신규 확진자가 2000명을 넘을 수도 있다”며 “검사를 대대적으로 확대해 양성률을 1% 미만으로 낮추고 국민들도 움직임을 50% 줄인다고 생각하는 게 (3단계 격상보다) 먼저”라고 말했는데 이 부분을 제목으로 뽑았다. 막연하게 불안을 조장하는 표현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위기상황을 강조한 제목이다. 시민들의 방역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막연하게 불안감을 자극하는 국민일보 보도에 비해 낫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도 여러 명에게 교차 검증하고, 여러 견해가 있을 때는 이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다만 다른 언론보도를 보면 기 교수 외에 다른 일부 전문가들도 하루 확진자 2000명대 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또한 감염병 보도준칙을 보면 기사 제목 뿐 아니라 기사 본문에 자극적인 수식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며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던 ‘살인진드기’ 공포”, “사상 최악의 전염병 대재앙을 몰고 온”, “박살난 지역경제” 등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본문에서 이러한 자극적인 수식어를 사용한 기사는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8월 미디어오늘 기고에서 ‘코로나로 어디가 뚫렸다’는 보도를 하지 말자고 지적했다. “국회 뚫렸다”, “경찰청 뚫렸다”, “입법, 사법, 행정 다 뚫렸다” 등의 표현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지금도 사용됐다. 

[관련기사 : 코로나 감염 “뚫렸다” 보도는 하지 말자]

“외상센터도 코로나에 뚫렸다” (MBC 14일)
“‘시흥시청 뚫렸다’ 비서실 2명 확진…임병택 시장은 음성 판정” (경인일보 14일)
“K방역 1000명 뚫렸다…3단계 격상 임박” (국제신문 13일)
“[사설] 신규확진 1030명… 당국 자만에 K방역 둑 구멍 뚫렸다” (세계일보 13일)
“확진자 506명 자택 대기···전세계 자랑했던 'K방역' 구멍 뚫렸다” (서울경제 10일)

이 연구위원은 장재연 아주대 의과대 명예교수의 말을 빌어 “자기 회사나 가족이 감염돼도 ‘OO일보 뚫렸다’, ‘우리집 뚫렸다’고 쓸까? 무슨 스포츠 게임 관람하나? 인간으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감성이나 윤리조차 부족”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감염병 보도준칙은 ‘전문’에서 “추측성 기사나 과장된 기사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감염병을 퇴치하고 피해 확산을 막는데 우리 언론인도 다함께 노력한다”며 “감염병 관련 기사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점을 이해하고 다음과 같이 원칙을 세워 지켜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보도준칙 ‘기본원칙’에서는 “감염병 보도는 해당 병에 취약한 집단을 알려주고, 예방법 및 행동수칙을 우선적, 반복적으로 제공한다”며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의과학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하며, 추측, 과장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검토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불안감이 높은 이때 더욱 감염병 보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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