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일본 기자클럽 가입했던 한국 기자가 본 우리 기자단
일본 기자클럽 가입했던 한국 기자가 본 우리 기자단
일본 외무성 기자단 ‘가스미클럽’ 가입했던 박수택 전 도쿄특파원 “공무원이나 기자 모두 당당해”
외무성 공간제공만, 기자클럽 예산으로 직원까지 고용…기자단 문턱 낮추고 보도관점 세워야

‘일본 기자클럽에서 영향을 받은 독특한 제도’ 

한국의 출입기자단 제도를 비판할 때 자주 따라붙는 말이다. 출입기자단을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출입처 유착이나 편향이 벌어지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이 제도가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을 붙이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하게 한다. 기자클럽은 일본이 제국을 꿈꾸던 1890년경 설립한 이른바 ‘일제 잔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기자클럽 폐쇄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럼에도 일본 기자클럽이 현재 한국의 기자단 폐해의 근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지키려는 기자단의 의지가 기자단의 문제를 일정 부분 막을 수 있어서다. 30여년전 일본 특파원으로 갔다가 한국 언론사로는 최초로 기자클럽에 들어갔던 박수택 전 SBS기자에게 일본 기자클럽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박 전 기자는 1991년 가을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았고 1995년 가을 한국에 돌아왔다. 

박 전 기자가 가입한 기자클럽은 일본 외무성을 출입하는 ‘가스미클럽’이었다. 도쿄에서 관청들이 모여있는 거리명 ‘가스미가세키’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인다. 박 전 기자에 따르면 그는 외국 특파원으로는 6번째, 한국 특파원으로는 최초로 가스미클럽에 가입했다. 

▲ 박수택 전 SBS 기자는 일본의 기자클럽 간사는 철저하게 취재편의 제공역할만 했고, 기자단이 징계하는 건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pixabay
▲ 박수택 전 SBS 기자는 일본의 기자클럽 간사는 철저하게 취재편의 제공역할만 했고, 기자단이 징계하는 건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pixabay

 

일본 언론계도 해외 언론사 차별이 있었다. 박 전 기자는 “가스미클럽에서 외국 기자를 받아주지 않아서 영미권 언론에서 부단히 문제제기를 했다”며 “서양 언론사들이 먼저 가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가스미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그전에는 기자회견장에 안 가고 간접 취재를 했는데 문득 외무성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회비 월 600엔인가 내고 가스미클럽에 가입하면 기자회견과 백브리핑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고 말했다. 특정 요일을 정해 외무성 장관 등이 머무는 안가에서 백브리핑을 하는 좀 더 폐쇄적인 자리도 있었다. 그는 “내밀한 외교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 자리였는데 입 꽉 다물고 있으면 내가 한국 사람인 줄 모르더라”라고 회상했다. 

월 600엔의 저렴한 회비지만 가스미클럽에선 실무를 보는 직원을 두 명 고용했다. 회비를 수금하러 다니는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왕년에 취재했던 원로 언론인들, 언론사 대표나 회장, 국장들도 기자클럽에 회비를 낸다. 1994~95년 당시 기금이 2000만엔 정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이 있어, 한국의 기자단과 다른 모습이다. 

박 전 기자는 가스미클럽이 외무성 공무원들과 기자단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자실 공간만 외무성에서 제공할 뿐이고 기자단 자체 경비, 자료복사비 등 사소하게 들어가는 경비는 다 기자들이 부담했다”며 “외무성 공무원들이나 기자들이나 서로 당당했고, 굽실굽실하는 게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 일본 외무성. 사진=SBS
▲ 일본 외무성. 사진=SBS

 

박 전 기자는 일본에서 경험한 기자클럽의 순기능을 이렇게 말했다. “개별 언론사나 개별 기자는 약할 수 있다. 그러니까 뭉칠 경우 ‘비밀주의’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는 기자단이 좋지 않겠나. 국민들이 알아야 할 사안까지 짬짜미하는 건 안 되지만…” 정부부처나 기업 등 취재원이 부당하게 엠바고를 설정하거나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할 때 기자단이 맞대응할 힘을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기자클럽에선 출입기자 전원이 의견을 모아 ‘보도협정’을 시행하는데 이는 논조를 정하는 게 아니라 용어의 표기방식, 정보공개 수위 등을 규정한다. 특히 엠바고의 경우 1개사라도 반대할 경우 보도협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박 전 기자는 “기자클럽에선 철저하게 취재 편의를 제공할 뿐 요미우리는 우파, 산케이는 극우 등 자신의 논조로 각 언론사 보도방침에 따르면서 담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기자는 한국에 와서 환경부 출입기자를 중심으로 환경기자클럽을 만들고 동료기자들과 ‘국민이 알아야 하는 사안은 서로 공유하자’는 약속도 했다. “우리끼리 농반진반으로 뜻을 같이 했다. 환경부가 정부부처에서도 마이너고, 환경의제는 제대로 주목도 못 받고, 환경부 출입기자들은 사내에서 비주류 취급받는데 우린 환경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느냐. 혼자서 단독보도한 뒤 폼잡지 말고 서로 공유해서 너희 독자와 우리 시청자에게 알리자고 했다.”

한겨레21이 2000년 기자단의 폐해를 지적한 기사 “기자의 천국, 특혜의 밀실”을 보면 박수택 당시 SBS 전국부 차장이 과거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았던 이야기가 나온다. 

“과천정부종합청사, 낮 12시에 이르면 각 부처 건물 뒤편에는 승합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각 부처에서 기자단 소속 기자들의 식사를 ‘모시는’ 광경이다. 기자단 소속 기자들은 제 돈을 내고 점심을 먹는 일이 드물다. 업계나 업체의 이해당사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보험성 접대’를 하는 경우도 적잖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1997년 서울방송 박수택 기자가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으며 이런 관폐를 없애기 위해 각자 돈을 내고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도록 분위기를 확 바꾼 적이 있었다.”(한겨레21 2000년 10월10일자)

박 전 기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1995년 10월 특파원 마치고 돌아와서 복지부 출입을 명 받았다. 당시 정책 관련 브리핑을 하면 담당 국·실장이 기자단과 점심을 같이 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게 없으면 도시락 주문을 받는데 그 도시락을 공보실 예산으로 부담했다. 당시 공보실 예산이 월 200만원인가 했는데 (도시락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들어 도시락만큼은 기자들이 내자고 했다. 의외로 (복지부 출입) 기자들이 좋다면서 기자단 간사를 뽑을 때 내게 표를 던졌다. 물론 고위 당국자와 간담회를 강화하고 현장취재를 원활하게 하도록 교섭력을 높이겠다는 약속도 내걸었다.” 

1989년 11월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기자단은 기자단 간사제를 폐지하고 기자단을 해체했다. 거액의 촌지설로 비판을 받자 스스로 각성하는 차원이었다. 기자단은 금방 재결성했지만 당시 보사부 뿐 아니라 다른 기자단의 촌지문제도 불거져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일본 ‘가스미클럽’에서의 경험과 이러한 국내 언론계 분위기에서 힘을 얻어 시작한 ‘내 돈내고 도시락 먹기’는 한겨레21 보도를 보면 금방 수포로 돌아갔다. 

▲ 박수택 전 SBS 기자. 사진=그것이알고싶다 갈무리
▲ 박수택 전 SBS 기자. 사진=그것이알고싶다 갈무리

 

박 전 기자는 일단 기자들 개개인의 의지를 강조했다.   

“기자실에 있으면 물 먹지 않고 보도자료도 제때 받아볼 수 있으며 다른 기자들이 무슨 취재하는지 귀동냥할 수 있는데 이건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취재방식이다.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따라 기자실 안에서 형성되는 기자실 내 여론이 반영되는 경우도 많다. 기자단 자체가 나쁘다고만 할 게 아니라 기자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라고 본다. 기자단이라는 걸 취재편의 제공 차원으로 보고 정책 당국자 입을 너머 현장에 가봐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법조기자단 문제에는 강하게 비판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8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 전문을 공개했다가 법조기자단에서 1년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고, 최근 ‘판사사찰’ 의혹 문건을 실물사진으로 올려 역시 법조기자단에서 1년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다.

박 전 기자는 “말이 안 된다”며 “스스로 재단하고 판단해 국민들에게 알릴 걸 숨긴 쪽을 징계해야지, 알린 기자를 징계하는 건 담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취재원들이 당근을 던질 때 당연히 마다할 필요는 없고, ‘기자는 깨끗해야 하니까 일절 저녁모임이나 티타임을 안 간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며 “다만 김영란법에 저촉하는 과도한 접대를 거부하고 때론 본보기로 기자가 밥값을 내는 등의 시도가 필요한데 당시 SBS는 취재비를 세게 줬다”고 말했다. 언론사에서도 기자 개인의 취재윤리에만 기대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어 “기자를 이용하고자 하는 취재원들 저의를 간파하고 시민·대중을 위해 보도의 관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법조출입기자들에게 단독보도를 제공하는 것을 ‘정보접대’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정보접대 역시 언론사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서로의 적수(법무부vs검찰)에게 칼을 들이대는 가운데 ‘나는 널 믿어’라는 식의 ‘정보접대’로 (기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며 “언론을 자객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언론은 자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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