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피고인으로 다시 광주에 간 전두환씨의 범죄를 누구보다 꼼꼼히 전달한 건 ‘광주 기자들’이었다. 매 재판 취재는 물론 전씨가 법원에 출석한 날엔 눈을 부릅뜨고 포토라인에 대기했다. 그들에겐 시민들이 할 말을 질문으로 대신 묻고, 답변을 이끌어 낼 책임이 있었다.

전씨가 내리는 승용차에서 법원 입구까진 불과 스무 발자국 거리. 전씨는 대통령 예우는 박탈됐지만 경호만 예외로 유지돼 항상 철통같은 경호원에 둘러싸였다. 기자들은 몸으로 부딪히고 크게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 기자는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실 생각 없느냐”고 3번 연속 묻다가 경호원에게 끌려나갔다. 한 기자는 전씨 길을 짧게 막고 버텨보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전씨의 “이거 왜 이래”라는 반응도 기자들의 ‘공세’ 때문에 나왔다. 당시 KBC광주방송 소속 최선길 기자가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라 물으며 거세게 따라붙으니 전씨가 갑자기 화를 낸 것. 이런 전씨는 재판 내내 졸았다.

법정엔 5·18 민주화운동 유족이 있었다. 그의 반성 없는 모습은 유족의 상처를 후벼팠다. 재판을 취재했던 김철원 광주MBC 기자는 “유족, 유공자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냉정하게 지켜봤다”고 전했다. 지역 기자들은 이 같은 풍경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전두환씨가 11월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고록 형사재판' 1심 선고 공판의 출석을 위해 탑승했던 검은색 승용차가 밀가루와 계란으로 더럽혀졌다. 사진=연합뉴스.
▲전두환씨가 11월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고록 형사재판' 1심 선고 공판의 출석을 위해 탑승했던 검은색 승용차가 밀가루와 계란으로 더럽혀졌다.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차 막혔다!” 선고가 있었던 지난달 30일. 이 말 한마디에 법원 근처 카페에서 기사 쓰던 기자 10여명이 우르르 뛰쳐나갔다. 전씨가 타고 온 에쿠스 차량이 광주지법 앞에서 5·18 유족·유공자 등 단체회원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전씨는 이미 다른 차량을 타고 법원을 떠났으나 “이 차라도 압류해야 해”라는 울부짖음이 거리에서 터져 나왔다. 전씨 소유 에쿠스는 계란과 밀가루 범벅이 됐다.

서충섭 무등일보 기자는 전씨가 광주에 올 때마다 거리 곳곳에서 분노와 슬픔이 터졌다고 전했다. 선고 날이 특히 심했다. 전씨 범죄는 2017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비난한 사자 명예훼손이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김정훈 부장판사)은 유죄를 인정해 전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다.” “전두환을 구속해야 한다.” 집행유예 선고 직후 법정 밖 거리의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고 서 기자는 전했다. “전씨를 다시 못 본다는 절박감에 ‘5월 어머니’(유족)들이 전씨가 탄 승합차를 향해 ‘이 나쁜 놈아, 내 자식 살려내라’라며 울면서 달려 갔지만 경찰에 막혀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날 경찰은 20개 중대를 법원 근처에 배치했다.

서 기자는 “어머니들은 전두환이 떠난 도로에 주저 앉아 즉석 농성도 했고, 상실감과 박탈감에 광주지방경찰청에도 달려갔다”며 “이렇게 모두가 지역 아픔을 저마다 방식으로 분담해 감당한다. 결국 한 사람 때문에 광주 전체 구성원이 고통받는 셈”이라고 밝혔다. 서 기자는 사람의 삶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5·18 유족을 꾸준히 취재했다. 재판 동안엔 법정 밖에서 현장 취재를 담당했다. 그는 목격한 거리 풍경을 기사로 남겼다.

▲광주지법에 출석하는 전두환씨. 사진=연합뉴스TV 갈무리
▲광주지법에 출석하는 전두환씨. 사진=연합뉴스TV 갈무리

 

광주 기자들의 취재 열의가 높았던 이유는 재판의 의미에 있다. 5·18 역사 왜곡 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데다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진실을 규명할 수 있어서다. 또 지역에선 ‘학살자’라고 불리는 전씨에게 질문할 기회이기도 했다. 신대희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 기자는 “언론의 공론화는 사람들 인식에 영향을 줘 중요하다. 광주 기자들은 5·18 사안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르다”며 “특히 5·18은 역사 왜곡이 난무한다. 무엇이 왜곡이고 어디까지 진실이 규명됐는지, 왜곡·혐오세력을 어떻게 막을 건지 등 지역 기자들이 여러모로 고민하고 실천한다”고 말했다.

신 기자는 이번 판결을 “진상규명 동력, 역사 왜곡 근절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헬기 사격 진실이 민·형사상 모두 인정됐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광주시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전투 행위를 했다는 역사를 재입증한 판결”이라며 “진실 앞에 공소시효는 없고, 역사 왜곡 세력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점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다만 형량은 아쉽다”며 “역사 왜곡을 일삼는 지만원씨도 구속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광주 지역 매체의 공통점은 전씨의 호칭이다. ‘전직 대통령’을 대부분 붙이지 않고 전두환씨 혹은 전두환이라고 적는다. 범죄 전력만 봐도 대통령 파면 사유고, 1997년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에서 유죄 선고로 대통령 예우도 박탈됐으니 객관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신 기자는 “호칭은 가치판단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권력 찬탈을 위해 시민을 학살’한 이에겐 씨라는 호칭도 아깝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광주지법에 출석한 전두환씨에게 질문을 하는 기자가 제지당하고 있다. 사진=YTN 갈무리
▲지난 4월 광주지법에 출석한 전두환씨에게 질문을 하는 기자가 제지당하고 있다. 사진=YTN 갈무리

 

왜 방송 뉴스엔 법정 밖의 전씨 모습만 찍혔을까. 광주전남 법조 기자들은 ‘법정 촬영을 허가해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중범죄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 박근혜·이명박씨의 경우처럼 전씨 재판도 그만한 중대 사건이니 법정을 공개할 공익이 인정된다고 광주지법에 수차례 밝혔다. 법원은 촬영 여부는 재판장 결정 권한이고 재판장이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 이익에 반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기자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전씨의 3차례 법정 출석이 영상 기록으로 남지 않은 이유다.

지역 기자들은 향후 과제가 산적하다고 말한다. 신 기자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 여전히 규명할 과제가 많다. 계림동에서 한 공수부대원의 민간인 총격을 시작으로 광주역 발포, 5월21일 전남도청 발포, 무차별 사격 등 일련의 집단 발포가 쭉 이어졌는데 연관성을 규명해야 한다. 암매장 의혹 등도 규명 과제”라고 짚었다.

김철원 기자도 “전씨가 회고록을 2017년에 펴낸 이유를 생각해봤다. 대통령 탄핵, 대선 등이 한창이었던 때”라며 “후대의 역사 왜곡 세력들에게 ‘회고록을 보라. 5·18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역사고, 논란이다. 전두환의 반론도 들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닐까”라고 했다. 김 기자는 “역사를 논란 영역으로 끌고 가려는 기획된 자서전이라 봤다”며 “언론은 이 같은 시도를 무산시키고, 5·18 진실을 기억하고 규명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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