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대주주이자 감독기구인 뉴스통신진흥회(이사장 강기석·이하 진흥회)가 예산 심의를 위한 세부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연합뉴스가 거부했다. 상법상 주식회사로 외부에 세부 경영 자료까지 공개할 의무가 없고 영업비밀 등이 유출된다는 취지다.

내년도 연합뉴스 예산안을 심의 중인 진흥회 예산심의소위원회(이하 예산소위)는 지난달 중순 연합뉴스에 예산안 원본 제출을 요구했다. 10장 남짓의 기존 제출 자료에는 주요 항목별 예산만 나와 있어 실질적 심의를 할 수 없기에 세부 항목 예산까지 공개된 자료를 요구했다. 

연합뉴스는 지난달 26일경 거부 입장이 담긴 의견서를 진흥회에 제출했다. 주식회사의 상법상 지위가 핵심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회사 예산은 내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의결되면 효력이 발생한다는 취지다. 달리 말해 진흥회의 예산 승인 권한보다 상법상 주식회사의 권한을 앞세운 것. 

▲연합뉴스 CI
▲연합뉴스 CI

 

양측은 예산 승인권 해석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진흥회는 뉴스통신진흥회법상 ‘연합뉴스 예산과 결산을 승인할 권한’을 가진다. 예산소위는 예산을 승인하려면 실질적으로 심의가 선행돼야 하므로 예산 승인권에 심의권이 포함됐다고 봤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승인과 심의는 다르고, 진흥회법엔 ‘승인’만 규정돼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진흥회 임시이사회에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연간 320~330억원 가량의 공적자금을 받는 데다 기간통신사라는 법적 지위를 누리는 반면 공적 통제는 거부한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 측은 이와 관련 “연합뉴스는 정부로부터 보조금 형식의 공적자금을 받는 공기업(공공기관)이 아니며,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보조금’이 아니라 정부와의 계약에 따라 정부가 해야 하는 일부 공적 업무를 대신해주고 받는 대가 혹은 정부가 연합뉴스 기사를 소비하는 대가로 제공하는 구독료라고 현행법에 규정돼 있다”고 반박했다. 또 “사업별, 부서별 세부 예산에 대한 내역 제출 요구는 언론사의 독립성과 언론 자유를 침해할 우려와 함께 주식회사인 연합뉴스의 경영상 비밀 침해 등 독립성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다른 공영방송사들의 예산안 공개 실태는 연합뉴스와 차이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관리 감독을 받는 공영방송 KBS와 EBS는 내부 이사회에 예산안 원본을 공개해 심의받는다. 내부 이사진을 방통위가 추천하거나 임명한다. 두 공영방송사는 외부 기구 감독을 받는 연합뉴스와는 공적 통제 방식이 다르다.

상법상 주식회사인 MBC는 세부 내역을 감독기구에 먼저 보고하진 않지만 요청이 있을 시 공개하고 있다. MBC 대주주이자 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의 한 이사는 “특정 예산 항목에 문제가 있거나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으면 세부 내역을 제출해달라고 MBC에 요구한다. MBC는 경영 비밀이 아닌 한 다음 회기에 보고한다. 거부하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오는 9일까지 진흥회에 최종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진흥회는 최근 중재안을 연합뉴스에 제안했다. 예산안 원본을 사무국에 비치하고, 심의 과정에서 예산소위가 검토를 요청할 시 공개하는 안이다. 사무국·예산소위 관계자 모두 보안 유지 각서를 쓰고 열람할 때도 사무국 관계자가 동석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2005년 설립된 진흥회가 연합뉴스에 예산안 세부 내역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4년 동안 진흥회는 연합뉴스가 제출한 예산 자료만 보고 조정을 권고하고 이를 연합뉴스가 보완하면 승인하는 식이었다. 올해 예산소위를 맡은 이사 3명은 감독기구가 세부 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야 실질적 심의가 가능하며 이 방향이 투명성과 공적 통제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강기석 진흥회 이사장은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예산안 세부 내역 제출을 요구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서로 논의를 해가는 사안으로 이해해달라”며 “오는 9일 전에 결정이 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관련 예산 자료를 이미 진흥회에 제출했고, 추가로 요구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출할 방침”이라며 “그러나 모든 예산의 세부 내역까지 진흥회에 제출할 의무는 없다. 현행법에는 진흥회 예산 승인을 받기 위해 연합뉴스가 제출해야 할 자료 범위가 규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다른 공영방송과 비교를 두고 “KBS 이사회는 내부 기구로 의결권이 있지만, 연합뉴스는 내부 이사회에서 예산을 확정하고 진흥회 승인을 받는다. 진흥회는 연합뉴스 업무의 의결기관이 아니라 감독기구”라며 “MBC 경우 내부 이사회가 예산을 의결·확정하며, 방문진은 아예 예산 승인 권한이 없고 기본사업계획서만 제출받는다”고 말했다.

[기사 수정 : 8일 14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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