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종영 소식을 듣고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다.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라는 불편한 단어가 그것이다. ‘레거시’는 죽은 이가 남긴 자산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금의 시대와 단절된 과거를 의미한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한 프로그램을 종영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는 과정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본방 시청률은 낮아지고 넷플릭스, 웨이브, 유튜브 등 OTT의 비실시간 콘텐츠 시청이 더 일상화 된 지금, 하루 20시간 가량의 지상파 실시간 방송 프로그램 편성이 갖는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거실과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OTT가 자신의 경쟁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각사의 전략기획실이나 편성본부에서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그 추천 시스템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이용자 개인에게 최적화시키는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OTT사업자가 수행하는 ‘편성’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레거시 미디어로 불려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다수의 미디어 이용자들이 시공간의 배치를 좌우하여 취향을 생산하는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지금의 시대에 지상파 방송사는 단절된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편성이라는 권력

KBS는 <저널리즘 토크쇼 J>의 갑작스러운 종영에 대해 “일시 종영은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높이고 시청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시로 발생하며, 대내외 여건에 따라 그 결정이 급작스럽게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으로 ‘객관적’인 콘텐츠의 배열과 추천이 이뤄지는 시대에 어떤 지표로 “경쟁력”을 확인하고 “시청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대개 방송사에서 이런 결정이 이뤄질 때는 제작진과 스태프에게 명확히 밝히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쓰는 말이 “대내외 여건”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 이용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편성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제작현장 노동자에게 방송사라는 좁은 공간에서 또 다른 정치이자 권력으로 작동한다. 아침마다 책상에 올려진 전날 본방 시청률이 여전히 중요한 성과지표로 사용되고, 프로그램 개편의 결정권은 소수에 좌우되며, 종영과 신규 편성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콘텐츠의 영향력이 떨어질수록 편성이라는 권력은 더욱 소외된 노동을 만들어 낼 것이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인력구조와 편성규제로 실시간 본방송 편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을 편성에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미디어 사업자들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쓰는 시대에 지상파 방송사 또한 여기에 편승할 이유는 없다. 도리어 다른 사업자와 차별화된 질적인 시청자 반응에 주목하고 데이터가 보여주지 않는 시청자의 또 다른 모습을 찾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방송계에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은 알고리즘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행위로서의 공적 책무

공영방송 KBS가 <저널리즘 토크쇼 J>의 갑작스러운 종영을 결정한 것은 이렇게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들의 공적 책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란 재난방송과 보도의 공정성에만 있지 않다. 외부의 정치적 압력, 내부의 반발, 시청률 성적에도 불구하고 신문, 방송, 포털을 아우르는 저널리즘 비평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방송사는 극히 드물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조중동 등 보수 매체만을 비판한다거나 비판의 지점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저널리즘 토크쇼 J> 자체에 대한 평가와 공영방송 KBS가 저널리즘 비평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무는 구분되어야 한다. 

KBS가 방송에서 자주 쓰는 ‘수신료의 가치’는 콘텐츠의 차별성 뿐 아니라 공적 책무의 ‘수행’에 있다. 수도, 전기, 교통 등 공공서비스는 모두가 사용하는 서비스지만 동시에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공영방송 또한 다르지 않다. 볼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KBS 본방을 보지 않아도 ‘KBS가 어떤 방송을 했는지’는 여전히 주목의 대상이다. 추락하고 있는 언론 신뢰도는 보도 자체보다 무리한 취재, 출입처 기자단의 폐쇄성 등 그 ‘행위’가 알려지며 더욱 가속화 됐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종영 또한 KBS의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유튜브 <J 라이브>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종영을 궁금해 하고 항의하는 무수한 댓글이 달려도 입장문 하나만 냈을 뿐 어떤 분석이나 소통도 없다. 더욱 문제는 시청자와 시민들의 반응에 민감한 제작진과 스태프에게 프로그램의 냉정한 평가를 부탁하기는 커녕 일방적인 종영(계약해지) 통보만 했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란 “무엇을 만드는가”보다 “어떻게 만드는가”에 달려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와 같이 공영방송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그렇다. KBS는 입장문에서 “새로운 모습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프리랜서와 비정규직을 운용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시청자가 어떤 프로그램이 나올지 기대할 이유도 없는 프로그램이라면, 전혀 새롭지 않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영방송 KBS 수신료의 가치란 콘텐츠를 넘어 ‘행위’에서 나온다. 넷플릭스의 편성 권력이 알고리즘에서 나온다면, 공영방송의 편성 권력은 시청자와 노동자에게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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