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지난달 24일 오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배제하자 윤석열 총장은 ‘효력정지’를 법원에 요청하며 맞섰다. 앞서 1월 검찰 인사, 5월 검언유착 논란, 10월 라임수사와 ‘지휘감독권’을 두고 대립한 두 기관장은 이번 ‘집행정지’ 명령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두 인물로 부상했다.

‘추미애’ ‘윤석열’ 보도 11월 정점

‘이슈 블랙홀’ 현상은 언론 보도량 급증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서비스를 통해 54개 언론사에서 ‘윤석열’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를 지난 1년(2019년 12월~2020년 11월) 동안 분석한 결과 11월에 수직 상승하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11월 ‘윤석열’ 키워드 기사 수는 8842건에 달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계기로 5000건을 넘어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11월 들어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추미애’ 키워드로 검색할 경우 지난 11월 관련 기사가 8782건에 달해 지난 9월 자녀 의혹 때와 비슷한 정도의 주목을 받았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12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윤 총장은 지난달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 배제 명령으로 출근하지 못하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의 직무 배제 명령 효력 임시 중단 결정이 나오자마자 청사로 출근했다. ⓒ 연합뉴스
▲ 윤석열 검찰총장이 12월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윤 총장은 지난달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 배제 명령으로 출근하지 못하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의 직무 배제 명령 효력 임시 중단 결정이 나오자마자 청사로 출근했다. ⓒ 연합뉴스

언론 보도가 가장 집중된 날은 11월25일과 26일이었다. 11월 24일 오후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총장 직무배제를 발표한 직후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된 시점이다. ‘윤석열’과 ‘추미애’ 두 키워드는 11월1일~23일까지만 해도 빅카인즈 54개 언론사 기준 하루 500건 미만의 기사가 작성됐으나 24일부터 급증해 윤석열 키워드 기사는 11월25일 952건, 11월26일 953건을 기록했다. 추미애 키워드 기사 역시 11월25일 893건, 11월26일 887건을 기록해 정점을 찍었다. 

보수성향 신문이 진보성향 신문보다 관련 보도에 적극적이었다. 신문 지면스크랩 프로그램인 아이서퍼를 통해 11월 한 달간 ‘윤석열’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조선일보(157건)가 가장 기사가 많았다. 지면 기사만 집계한 것인데도 하루에 기사가 6개씩 나온 셈이다. 반면 9개 종합일간지 지면 가운데 가장 관련 기사 수가 적은 언론은 한겨레(89건)였고, 그 다음이 경향신문(92건)으로 나타났다.

‘추미애’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는 조선일보(175건), 세계일보(126건), 동아일보(125건) 순으로 기사가 많았고, 100건 미만으로 보도한 언론은 한겨레(88건)와 경향신문(83건) 두 곳이었다.

▲ 빅카인즈 54개 매체의 지난 1년 간 윤석열 키워드 보도량.
▲ 빅카인즈 54개 매체의 지난 1년 간 윤석열 키워드 보도량.
▲ 빅카인즈 54개 매체의 지난 1년 간 추미애 키워드 보도량.
▲ 빅카인즈 54개 매체의 지난 1년 간 추미애 키워드 보도량.

국민의힘-보수신문 한마음, 진보신문은?

보수신문의 논조는 윤석열 총장, 국민의힘과 대동소이하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지난달 25일 사설에서 “추 장관의 감찰지시와 윤 총장 직무정지는 아무 근거도 없다”며 “정작 물러나야 할 사람은 윤 총장이 아니라 직권을 남용한 추 장관”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역시 연일 추미애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신문은 어땠을까. 추미애 장관과 여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데, 경향신문은 한겨레보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강하게 낸 점이 특기할 만하다. 지난달 25일 경향신문은 “명분도 약하고 절차도 아쉬운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란 제목의 사설을 내고 “무엇보다 윤 총장의 징계를 청구할 만큼 의혹의 사실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 11월27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 갈무리.
▲ 11월27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 갈무리.

같은 날 한겨레 사설 제목은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철저한 진상규명을”이었는데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모두 양측에 비판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경향신문은 ‘추미애 장관’ 비판에 무게를 실었다는 점이 차이였다.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사찰 논란’에 대해 보수성향 신문은 윤석열 총장,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사찰이 아니다’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판사분석이 사찰? 미국선 재판에 적극 활용”(11월28일 조선일보) “조국 재판부를 사찰? 검찰 "해당 법관, 조국 담당 아니다"(11월26일 중앙일보) 기사가 대표적이다. 

▲ 25일 경향신문 사설.
▲ 25일 경향신문 사설.

진보성향 신문에선 양측의 논박을 전하며 판단을 유보하거나 ‘사찰은 아니지만 문제적 관행’이라는 취지의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26일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로 “판사 정보 수집 정당하다는 검사... 법무부 ‘사찰 맞다’”를 보도했고, 27일 경향신문도 “판사들 ‘헌정 문란’ ‘의견일 뿐’ 엇갈려..대법원 ‘엄중 주시’” 기사를 냈다. 

이 같은 논조는 ‘직무배제’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1월16일 열린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에서 박영흠 한겨레 열린편집위원은 ‘갈등’ 부각 보도 속에서 한겨레가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윤 총장에게 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둘을 아주 매섭게 비판할수록 이 사안의 본질을 더 부각시킬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 11월27일 한겨레 1면 기사.
▲ 11월27일 한겨레 1면 기사.

‘대결’ 중계, 스피커에 집중된 따옴표

“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초유의 대형 검란” “전국 10여곳 평검사들 검란 움직임”. 각각 11월 26일과 27일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검사들의 온라인 공간을 통한 입장 표명을 ‘검란’이라며 ‘난’에 빗댄 장면은 언론이 이번 국면에서 대립을 조장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빅카인즈에서 조선일보의 ‘윤석열’ 키워드 기사의 연관 키워드(11월25일~11월30일)로 ‘검란’이 뜨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윤석열 대반격” “추미애 마지막 칼 뺐다”(아시아경제) “칼 빼든 추미애”(한국경제) “총공세” “역공” (동아일보) 등 전투적인 용어들이 기사 제목에 쓰이는 일이 잦았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 여당과 야당의 대결 국면에서 대결을 중계하거나 유리한 주장을 끌어다 쓰는 ‘따옴표 저널리즘’ 기사도 끊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검사들의 집단 의견표명을 다루며 “나치 괴벨스 떠올라”라며 극단적인 주장이 담긴 반발을 ‘따옴표’로 제목에 부각했다.정치권에선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찌라시’ 발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미친 말이 농사 망쳐” 등 거친 발언이 기사 제목으로 옮겨졌다.

이런 가운데 11월25일부터 11월30일까지 빅카인즈로 검색한 ‘조중동’ 기사에서 ‘윤석열’ ‘추미애’ 키워드의 ‘연관 키워드’로 ‘진중권’이 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추미애 장관을 가리켜 ‘똘끼’가 있다고 발언한 페이스북 게시글만 포털 다음 기준 27건의 기사로 이어졌다. 같은 기준으로 전국단위 언론 25곳에서 ‘추미애’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채시라’가 연관 키워드로 뜨기도 했다. 진혜원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가 추미애 장관이 채시라와 닮았다고 발언하면서 시작된 논박을 다룬 기사들이 많았는데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내용이다.

▲ 11월25일부터 30일까지 빅카인즈 매체의 ‘추미애 장관’ 보도 연관 키워드. 언론 보도와 연관된 키워드를 집계한다. 진중권과 채시라가 포함돼 있다.
▲ 11월25일부터 30일까지 빅카인즈 매체의 ‘추미애 장관’ 보도 연관 키워드. 언론 보도와 연관된 키워드를 집계한다. 진중권과 채시라가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한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본질인 ‘검찰 개혁’이 실종되고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 싸움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결국 ‘진흙탕 싸움’을 중계 보도하는 식이 돼 버렸다”며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도 매우 피로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총장의 사찰은 분명 부적절하고 문제인데, 그렇다고 추미애 장관의 일련의 액션이 타당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민생’ 주목도 떨어지고 ‘중간’ 설 자리 좁아져

지난달 30일 한겨레 만평 ‘그림판’은 이번 국면에서 대립하는 이웃집들 사이에서 골목길에서 만취한 채 구토하는 청년과 그 일행을 그렸다. 코로나19로 취업이 안 되고, ‘거리 두기’로 알바에서 해고된 청년들이다.

지난달 28일 이후 몇몇 언론은 이번 국면에서 ‘민생 정책’이 실종된 현실을 지적하며 화두를 던졌다. “추-윤 충돌 민생 빨아들이는 블랙홀 돼선 안 된다”(한겨레) “윤석열 징계 정국에 민생 현안 희생 안 된다”(한국일보) “추-윤 정국 속 공정3법 중대재해 민생 입법 흔들림 없어야”(경향신문) 등 ‘사설’로 내며 다른 주요 이슈를 강조한 언론도 있다.

▲ 11월30일 한겨레 그림판.
▲ 11월30일 한겨레 그림판.

양측의 대립이 모든 이슈를 삼키면서 중요한 이슈의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다. 다른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국회에서도 가장 쟁점 사안이 됐다. 기자들은 논란이 옮겨붙은 법제사법위원회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다. 이 갈등 탓에 법사위에서 다른 주요 법안을 못 다룬다는 지적이 있는데 기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상임위를 취재하던 기자들도 법사위 취재에 투입된 상황”이라고 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기명 칼럼을 통해 이번 국면을 가리켜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합의가 사라지고 있다”며 정치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고 사법의 힘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를 ‘언론’에 빗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기자들이 잘하는 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지금까지 쌓여온 진영 간 대립이 추-윤 갈등을 기점으로 폭발했고, 여론 자체가 양극화되면서 언론이 설 자리 자체가 더 좁아진 느낌”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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