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보수만을 강조하는 정당인데 이걸 정리하려면 상당히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출근 직전인 5월2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21대 총선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에서 보수일색, 기득권 중심의 정당 이미지를 빼겠다고 선언했고, 어느덧 취임 6개월이 흘렀다. 최근 김 위원장의 존재감은 줄었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2비대위’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개혁행보에 원내 의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소득, 공정경제3법, 노동문제 
또 김종인 개인기로 그치나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기본소득을 당 정강정책 첫머리에 새기겠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은 진보적 의제로 알려지면서 비대위의 외연확장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를 논의하는 경제혁신특별위원회를 맡은 윤희숙 의원은 기본소득의 핵심인 ‘보편성’을 지우고 선별지급을 주장했다. 

▲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재로 원외 시·도당위원장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재로 원외 시·도당위원장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한 코로나 관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서도 국민의힘은 선별지급을 주장하며 기본소득을 사실상 내던진 행보를 보였다. 최근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 

공정경제3법(상법 일부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며 찬성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정상적인 기업 운영을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3법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반발이 거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코스닥 업계 관계자들과 정책간담회에서 “정부여당이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어서 기업과 경영인들이 어려움과 위험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혁신을 발목잡고 자율성을 훼손시키는 과도한 기업 규제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상법개정안에 맞서 ‘기업 경영권 보호법’을 발의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이슈가 다른 사안을 밀어내면서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여당과 공감대를 형성한 공정경제3법을 더 강하게 주장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이다.  

▲ 10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힘 중앙당사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 10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힘 중앙당사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노동문제는 보수정당의 치명적 한계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택배노동자들과 대화에서 “(택배분야 노동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 바탕으로 국민의힘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하겠다”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보호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굉장한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택배법’으로 부르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과 함께 진보정당과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 내부에선 역시 김 위원장 입장에 침묵하거나 반대 의견을 표명한 상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과잉입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 외에도 호남에 공공의대 설립, 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 범죄행위에 대한 사과 표명 등 사안마다 김 위원장의 확장 전략에 당내 반발 움직임이 있고, 김 위원장도 최근 들어 행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2기 비대위 솔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김 위원장에게 킹메이커 역할을 기대하는 가운데 마땅한 대선주자를 띄우지 못하면서 김 위원장 리더십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민주화를 외치다가 막판에 내쳐진 사례를 떠오르게 하면서 결국 이미지 쇄신용이었다는 전망과 평가가 잊을만하면 한번씩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 리더십은 흔들리고 새로운 구심점을 찾지 못한 틈새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파고들었다. 유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 리더십 자체를 흔들 형편은 아니고 사람을 전부든 일부든 바꿔서 2기 비대위로 당의 총력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꽤 조심스러운 어조로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문제제기한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지난달 30일 조선일보는 조심스럽게 이 이슈를 이어갔다. 6면 하단 “유승민 ‘비대위 재편’ 제안에, 김종인은 묵묵부답”이란 기사에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의 발언이라며 “최근 김 위원장에게 여러 경로로 ‘내년 4월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비대위를 개편하자’는 건의가 올라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비대위를 15명까지 둘 수 있는데 현재 9명인 만큼 중진의원을 추가하자는 제안, 유 전 의원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참여시키자는 제안 등이 있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11월30일 6면 기사
▲ 조선일보 11월30일 6면 기사

 

조선일보 보도로 2기 비대위 이슈가 주목을 받았다. 

이날 오전 펜앤드마이크는 “발톱 드러내는 유승민?…김종인에 ‘비대위 재편’ 압박”이란 제목으로 유 전 의원의 발언을 공격적으로 해석해 보도했다. 이날 오전 비대위회의 이후 기자들과 대화에서 2기 비대위 관련 질문이 나왔고 김 위원장은 “제가 필요할 때 하는 것이지 밖에서 이런 저런 얘기한다고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조선일보는 1일에도 비대위 재편 문제를 이어갔다. “서울, 정권 심판자보다 부동산 해결사 원해”라는 기사에서 한 비대위원의 발언이라며 “선거를 치르려면 이대론 안 된다. 비대위 전원을 교체하든지 일부를 교체하든지, 확대 재편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비대위 내부에서도 현 비대위 체제를 비판한 것이다. 

공천권 없는 원외인사로서 김 위원장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한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초반 초선의원들에게 기대와 신뢰를 얻었다. 당내에서 힘있는 영남권 중진들에게 각종 개혁정책이 밀리는 구도가 반복되자 당내에선 개혁적인 목소리가 줄고 있다. 김 위원장이 흔들리는 것이든, 비토세력이 김 위원장을 흔드는 것이든 문제는 현재 김 위원장을 대체할 리더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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