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과 윤석열 직무정지라는 한 고비로 달려가면서 검찰개혁을 지지하고 염원하는 많은 이들 속에서 진보정당들과 노동운동, 좌파단체들은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냉소적이냐는 원망과 비판의 목소리도 많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런 원망과 비판을 하는 분들은 그 전에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다. 과연 스스로들은 얼마나 진보정당들과 노동운동, 좌파단체들이 노력하고 투쟁해 온 문제들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왔는지 말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비롯한 전태일 3법, 차별금지법, 세월호 진상규명, 낙태죄 폐지, 국가보안법 철폐, 이석기 의원 석방, 사드기지 철거 등이 그것이고, 문재인 정부 3년이 넘어가도록 이 문제들에서는 진전이 매우 더디거나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런 문제에는 관심과 연대를 보내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는 관심과 연대를 바란다면 온당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기관의 힘을 빼는 정치민주적 개혁도 물론 필요하지만, 삶을 개선하고 차별의 구조를 허무는 사회경제적 개혁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자신들도 그 문제들에 무관심하지 않았고 연대해 왔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분명 일부 사실이겠지만, 그것이 충분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랬다면 이 문제들이 이토록 지지부진하고, 또 이 문제들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그런 지지와 연대를 별로 느끼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검찰(언론) 개혁을 주장하고 염원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이 더 큰 목소리로 더 많이 알려져 왔고, 더 큰 세력을 형성해서 정부와 집권당에게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해 온 사람들의 원망과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민중의소리
▲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민중의소리

검찰(언론) 개혁에 대한 진보정당과 노동운동, 좌파단체들의 지지와 연대를 원한다면 그만큼 더더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전태일 3법, 차별금지법 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중대재해가 앗아간 생명과 차별이 낳은 고통에 대해 적극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요구와 쟁점들을 연결시키고 지지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이 상황은 2016년 촛불의 연장으로서, 그 역사적 성과와 한계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거듭 말해 왔지만 촛불은 한국사회 정치적 상부구조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낳았지만 사회경제적 변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촛불이 만들어낸 것은 노동계급 기반의 급진좌파 정부가 아니었고, 다계급적 기반의 중도개혁 정부였다.

모순은 아래로부터 투쟁이 위로부터 제도화로 넘어가면서 구체제 청산의 주도권이 의회, 헌법재판소, 검찰 등으로 넘어간 과정에 있었다.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2016년 촛불광장에서 우리 모두의 핵심 요구중 하나가 ‘검찰개혁’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다음은 누구를 쫓아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광장이 떠나갈 듯하던 ‘김기춘’, ‘우병우’라는 거대한 함성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단지 인적 요소만이 아니라 구체제와 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구조적 본질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이었다. 촛불 민중은 룸살롱에서 뇌물을 주고 받고 함께 성매매도 하면서 끈끈하게 맺어진 검찰-재벌-권력의 카르텔, 검사 전관 변호사가 1년반만에 100억을 수임하는 구조 등의 문제를 똑똑히 인식했다.

그러나 검찰은 개혁의 대상에서 ‘적폐청산의 주역’으로 변신했다. 나아가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칼잡이’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는 주류언론의 눈물겨운 도움이 핵심이었다. 검찰과 주류언론의 콜라보 속에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전국민적 비호감과 밉상으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팬덤의 무리로, 윤석열은 대선 후보 1위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선출되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의 진정한 권력자와 폭력기구들이 거대한 저항에 직면해서 잠시 엎드리고 변신했다가, 틈이 생기면 반격에 나서는 것은 세계사에서 항상 목격되는 바이다. 물론 거듭해서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고 타협하는 선출 권력(문재인 정부)의 무능, 약점, 오류, 한계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점이 있다.

지난해에도 조중동이 정부에게 받은 광고비만 230억 원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경제적 개혁들과 달리 검찰개혁만은 매우 진지하고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랬다면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되고, 정치검사들이 안하무인으로 날뛰고, 공수처가 집권 3년이 지나도록 아직 출범도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 내에도 윤석열 사단과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나마 검찰개혁이 다른 의제들과 달리 좀 더 많이 진전돼 왔다면, 그것은 촛불의 기억과 의미를 잊지 않았던 민중들의 의지와 행동 덕분이었다. 특히 지난해 겨울에 다시 촛불을 들었던 민중들의 행동이 중요했다고 봐야 한다. 검찰개혁 촛불시위의 성격은 물론 복잡했지만, 그것이 이 문제에서도 진행되던 타협과 후퇴를 어느 정도 막아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진보좌파도 더 고민하고 살펴봐야할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좌파의 많은 이들이 촛불과 코로나 이후의 한국사회 대전환을 위해서는 중도개혁 정부를 넘어서 급진좌파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볼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더 광범한 다수를 진보좌파의 비전으로 설득해 내고 지금의 소수 지지층을 넘어서 지지기반을 크게 확장하려는 (다수파)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민주당 지지 기반의 균열과 좌향 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사회경제적 개혁보다는 검찰(언론)개혁에 더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을 폄하하고 비하, 매도하면서 그런 균열과 좌향 이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직무정지를 ‘좀비 대깨문과 문빠들이 추종하는 이 정부가 전체주의적 공포정치로 나아가는 신호탄’이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분석과 규정은 진중권 씨 등의 말만 들어도 충분히 황당하고 피곤하다.

검찰(언론)개혁 열망에 공감하고, 누구보다 앞장서 검찰과 기득권 카르텔에 맞서 싸우면서 그것을 사회경제적 개혁을 위한 요구와 투쟁으로 연결시킬 줄 아는 기예가 필요한 것이다. 진보좌파가 이것에 실패한다면 또다시 열린민주당이나 이재명같은 세력이 등장해서 그 공백을 채워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는 기득권 우파가 다시 부활할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둘째로,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급진좌파 정부의 수립은 단지 선거 승리만으로 끝나는 과정일 리가 없다. 자본주의에서 권력은 단지 선거로만 바뀌지 않고 그 최후의 보루인 국가기구의 ‘변혁’을 필요로 한다. 만약 한국에서 급진좌파 세력이 집권에 다가선다면, 검찰과 군부 등 억압적 국가기구들의 총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멀리 칠레로 갈 것도 없이 최근에 브라질, 볼리비아, 스페인 등에서도 나타난 양상이다. 따라서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약화시키는 과제는 진보좌파에게 결코 ‘저들만의 쟁점과 다툼’일 수가 없다. 산업재해와 노조 투쟁에서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쇠몽둥이를, 기업주들에게 솜방망이를 휘두른 것도 바로 검찰이다.

지금, 판사 사찰이 핵심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서 검찰이 나에 대해 수집한 방대한 정보와 사진을 보고 깜놀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검찰의 이런 관행은 전혀 낯설지 않고 모든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행됐을 거라고 본다. 더구나 검찰은 필요하면 언제든 그 정보를 서랍에서 꺼내 압수, 체포, 언론 플레이, 수사, 기소할 권력을 가졌다. 그나마 판사가 대상이 되니 이슈가 되는 것은 씁쓸한 점이다.

그래서, 윤석열이 조선중앙 사주와 만난 것, 한명숙 사건의 진상규명을 방해한 것에 더 분노하고 주목하게 된다. 이것은 검찰이 여전히 구체제와 기득권 카르텔의 핵심이고 사건 조작과 인권유린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서대필 조작, <PD수첩> 탄압, 유성기업 등 노조 파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용산참사, 김학의 사건, 백남기 부검 시도, 내란음모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당장 떠오르는 검찰에 관해 청산해야 할 범죄적 과거만도 이렇게 줄줄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수많은 간첩조작과 고문, <뉴스타파>가 추적한 금융범죄 카르텔의 일부로서 저지른 비리 등을 빼고도 이렇다.

며칠 전 임은정 검사는 “검찰의 시대는 결국 저물 것이고, 우리 사회는 또다시 나아갈” 것이라고 썼다. 이연주 전검사는 검찰에 있을 때 ‘악취가 진동해서 후각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했다. 이들의 희망이 저 건들거리는 마초적 검찰주의자 윤석열 앞에서 스러지지 않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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