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하는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 27일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은 1993년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하면서 시작됐다. 2000년 방송법에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편성을 의무로 규정했고 현재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은 주당 60분 이상의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에는 시청자를 대표해 방송을 평가하는 시청자평가원이 출연하도록 했다.

▲ 채영길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27일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유튜브 라이브 캡처.
▲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27일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유튜브 라이브 캡처.

채영길 교수는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 17개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방송 시간대별로 분류하면 자정부터 새벽 6시 사이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6개, 오전 6시~9시 이전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7개로 70% 이상(13개 프로그램)이 심야 및 새벽 시간대에 편성됐다. 채영길 교수는 “(심야 시간대의 경우) 잠을 자지 않고 보지 않는 한 시청자가 볼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방송 시간의 경우 ‘주당 60분 편성’이 법으로 규정돼 있으나 본방송이 29분 이하로 편성된 비율만 29.3%에 달했다. 채영길 교수는 “이런 편성이 가능한 이유는 주당 60분을 채우기 위해 재방송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청자 권익을 20분에 담기는 어렵다”고 했다.

▲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방영시간대와 시청자 평가 내용 분석. 사진=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라이브 캡처.
▲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방영시간대와 시청자 평가 내용 분석. 사진=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라이브 캡처.

방송에서 전달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긍정적인 내용 위주였다. 시청자 의견을 분석한 결과 ‘비판적(5.8%)’ ‘매우 비판적(2.9%)’ 등 비판적인 평가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반면 ‘긍정적(26.4%)’ ‘매우 긍정적(23.5%)’ 등 긍정적 의견을 전하는 경우가 부정적 의견에 비해 크게 높은 비율을 보였다.

채영길 교수는 “시청자 목소리는 긍정적일 때만 (방송사에 의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방송사에서 원시부족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여러 문화에 대한 식견을 넓혀주는 내용이 유익했다’는 시청자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보고 소수 문화에 대한 편견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이 자사 홍보 뿐 아니라 문화적 오해까지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에 출연하는 ‘시청자 평가원’의 의견을 분석한 결과 ‘매우 비판적(0%)’ ‘비판적(23.5%)’ ‘긍정적(35.2%)’ ‘매우 긍정적(5.8%)으로 일반 시청자보다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다만, 시청자 평가원이 프로그램에 대해 홍보하는 긍정적 멘트도 적지 않았다. 

▲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갈무리.
▲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갈무리.

채영길 교수는 방송사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소개하며 “공통적으로 시청자 권익을 ‘시청자 목소리’로 상징화해 얘기하는 걸 느꼈다”며 “목소리는 듣는 사람이 채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시청자 권익은 방송법에도 규정돼 있다. 단순 의견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시청자 이익에 합치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한다”며 외부 의견 전달이 아닌 실질적인 의사결정 참여가 가능한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영길 교수는 1993년부터 현재까지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에 대한 언론학계의 부정적인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PR적 관점’ ‘졸속 편성 졸속 제작’ ‘능동적 참여 의지를 지닌 시청자마저 외면’ ‘형식절 실천’ 등의 지적이다. 그는 “27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시청자 프로그램이 지속됐다는 것. 두 번째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어디에도 시청자 권익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현황. 사진=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현황. 사진=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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